기업은 수행도량

현대산업사회와 불교

2009-07-01     관리자

 중생건지는 일은 중생있는 곳에서만 가능한
일임이 명확하지 아니한가?

종교에 신앙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자기의 종교적인 수련을 위하여 수행도장을 찾기원한다.평상시에 시장에서 시끄럽게 지내느라고 다분히 세속화되어 버린 자기 마음을 수행도장에 가서 성화(聖化)하고 싶어하는 것은 일종의 종교적인 본능이다. 종교인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힘은 사실 이와같은 도장에서의 수행에서 얻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종교에 귀의한 사람들은 일정한 시간적 간격을 두고 성지에 가서 정진해 주기를 권하는바이다. 그러나 또 한편 생각하여 보면 종교라는 것은 인간을 이익하게 하는 것이 목적인데 종교의 목적이 되고 있는 인간세계를 떠나 먼 곳에서 옳은 길인가? 우리가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인 것같다. 우리 세속에 사는 소위 산업인이라 할지 또는 직장인이라 할지 여러 가지 모양의 생업에 종사하고 있는 재가신도가 종교신앙를 이유로 삼아서 그 가정과 직장을 이탈하게 되는 것을 옳은 일이라고 보아야 하는가?나는 여기에 대하여 양면적인 각도에서 검토해보아야 하리라 믿는다. 그 한가지는 앞에서 본 바와 같이 세속화되어 가고 있는 자기를 성화시켜 속세에서 성스럽게 살아가는 힘<다시 말하면 도력(道力)을 얻기 위한 훈련으로서 일시적인 이탈을 권장하고 또 허용할수 있다. 그러나 종교의 본래적 가치는 그것으로 다 되어지는 것이 아니리라 본다.

불가에서는 ‘중생무변서원도(中生無邊誓願度)’를 외친다.다시 말하면 이 세상에있는 모든 생명있는 존재들을 모두 다 고난으로부터 건져내겠다고 하는 것이 불교의 목적이다. 다시 말하면 불교의 종교적 가치가 실현되는 현장은 바로 중생살이의 현장이다.화엄경 보현행원품에 의하면‘만약에 중생이 없으면 보살은 마침내 종교인들은 속세에서 살아가는 그 순간 순간을 무의하게 보내지 못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각자가 처한 환경이나 제반조건이 순조로울때이거나 역경계일 때이거나를 가리지 않고 그때에 알맞은 종교생활을 하여야 한다.종교생활이란 중생을 이롭게 하는 생활을 말하는 것이다.중생을 이롭게 하는 일을 정성을 바쳐 해 나아가는 가운데 부처님을 모시는 신앙생활이 그 빛을 내게 되는 것이다. 이제 다시 기업사회를 살펴 보기로 하자. 지난달에 본바와 같이 기업은 산업사회에서 물자또는 용역을 공급하여 주는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그 물자와 용역이 국민생활의 유지발전에 필요한 것인 경우 그 공급은 그 자체로서 선(善)이다. 공급에 따른 이득에만 집착하는 경우에는 탐욕의 구렁텅이에 빠지게 되어 자기 멸망을 가져오게 되지만 사회적인 사명을 깊이 인식하고 양질의 물자를 싼값으로 제한없이 공급한다는 뜻을 세우고 그 수요자들의 행복을 원하면서 기업을 경영한다면 기업경영은 그 자체로서 넓게 베푸는 보시행을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기업경영에는 세가지 요소가 있다고 한다. 이것을 3M이라고 하거니와 돈과 사람과물자(Money,Man,Material)관리가 곧 그것이다. 기업은 이 세가지의 요소들을 효율적으로 결합조직하여 활용하여 감으로서 그 사회적 사명을 다하게 된다. 그러나 한걸음 더나나가서 생각하여 보면 돈과 물자는 결국 사람이 관리하는 것이라는 것은 명백한 일이므로 기업경영이란 사람의 관리로 집약될수있는것이다.기업주를 중심으로 하여 수 많은 사람들이 집결하여 기업이념을 실현하기 위한 물자와 돈의 관리를 계속해 나아가고 있는 것이 기업이다. 그러므로 기업주가 물자나 돈의 관리는 틀림없이 잘했다 하더라도 그 기업에 소속되어 있는 종업원 및 그 기업과 깊은 인연이 있는 기업 외부의 인사들과의 사람관계가 원만하지 못하면 그 기업은 성공할수 없는 것이다.다시 말하거니와 기업은 얼핏 보기에는 물자나 돈의 관리가 그 주된 일인듯 보이지만 실에 잊어서는 사람의 관리야말로그전부인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그런데 그사람들이란 누구일까?

그사람들이야말로 바로 종교에서 제도하기로 결정하여 놓은 귀중한 중생들인 것이다. 바로 그 사람들이 없이는 어떠한 수행장도 어떠한 구도자도 정각을 이룰수 없는 지극히 존종되어야 할 중생들인 것이다. 그 중생들이 기업에 모여서 기업을 운영하고 있는 것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 기업이야말로 한갖 이윤추구의 경제적인 조직이라는 낮은 차원에서 파악할 것이 아니라 아주 고차원적 관점에서 이것을 내다 보아야 한다. 중생들이 모인 영역이 바로 기업이며 또 중생들이야 말로 우리 불자들에게 있어서 종교적 수행을 도와주는 존귀한 존재라고 할까 기업은 바로 종교의 수행도장이 아니겠는가?기업에는 수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다 또 젊은사람이 있다. 비교적 온화한 성품의 사람도 있고 거칠은 성품의 사람도 있다 남에게 좋은 인상을 주는 사람도 있고 남을 역정내게 하는 사람도 있다.능력이 출중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남들의 짐이 되어버린 무능력자도 있다. 대범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소심한 사람도 있고, 행복한 사람도 있으며 불행한 사람도 있다. 기업에 모여있는 사람들을 열거하려면 끝이 없을 것이다.그러나 한가지 명확한 사실은 그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이롭게 보이는 사람과 나에게 해롭게 보이는 사람으로 뚜렷이 분리되어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나에게 이로운 사람은 내가 호감으로 대하여 나에게 해로운 사람은 적으로 해한면서 그를 배척하려 마음 먹는다. 그러나 다시 생각하여 보니 보살에게 있어서는 어느 한 중생도 버림받아야 할 중생은 없는 것이다. 어느 한 중생도 내가 싫어하거나 배척할수 있는 중생은 없는 것으로 모두가 나의 수행을 위해 귀중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분들이다.

바로 그 분들이 아니라면 나는 정각을 얻을 수 없다. 보살들은 부처님전에서“중생무변서원도(中生無邊誓願度)중생을다 건지오리다”라고 소리높이 외치고 있다. 중생을 건지는 일은 중생있는 곳에서만 가능한 일임이 명확하지 아니한가?기업에 모여 있는 많은 사람들 그분들은 각기 맡은 직책을 수행하면서 국민 경제 발전을 위하여 공헌하고있다.그 직책을 수행하는 조직을 형성하는데에는 높고 낮음의 위계가 있겠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일을 해 나가기 위한 방편으로 정하여 놓은 것에 불과하다. 그 직급이 무엇이 되었든지간에 그 사람이 회사에 대하여 공헌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 그 사람은 회사의 생산활동에 직접 관여하고 있는 사람이며 그 자체로서’‘보시행’를 하고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와 함께 일하고 있는 동료들에게 대하여는 상호탁마의기회를 주고 있는사람이다. 지극히 귀중한 사람이다. 기업에서는 이와같이 인간존중의 공부가 행하여기게 된다.산업사회에 나아가 있는 우리 불자들에게 있어서 참다운 수행도장이란 어디를 말함일까?바로 이 직장이 그곳이다. 그리고 나의 보살도는 어떻게 닦아 갈까?나에게 맡겨진 일의 수행이 곧 보살도 수행이다. 그리고 나와 만나는 모든 중생들은 바로 나의 정각도장(正覺道場)의 스승들이다. 기업의 인간관계가 이와같이 되어질 때 그 기업의 발전은 당연한 결과가 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