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실록] 가스중독에서 구해준 관음보살

신앙실록

2009-06-30     금하

불법, 그것은 지성의 세계가 아닙니다. 의지의 세계도 아니며, 감성의 세계도 아닙니다.
그것은 모두가 하나를 이룬, 거룩하고 뜨거운 은혜, 즉 현실적 인격에서 오는 감동을 자기 생명으로 느끼는 것입니다.

󰊱 신앙의 이모저모

부처님을 믿는 사람에게는 그 신안 내용에 여러 차별을 볼 수 있습니다. 부처님 가르침을 고도의 철학 완벽한 진리체계로 알고 학문적 확신같은 믿음을 갖는 분도 있습니다. 철학족 신안이라고도 할런지요. 어떤 분은 완벽한 도덕군자형으로 불보살을 받들어 놓고 불보살을 거울 삼아 자신의 행위와 마음가짐과 인격을 도야해 가겠다는 분도 있습니다. 인격도야형이라고 할지요? 또 어떤 분은 부처님을 엄청난 실력을 갖추고 덕성 넘치는 인격으로 생각하고 마음속에 한구서 두려운 생각과 함께 부처님을 믿으며 행을 갖기도 하고 또는 고난을 당하여 기원을 드리기도 하며 자기를 지켜 줄 수호신 같이 믿는 분도 볼 수 있습니다. 이 밖에도 부처님을 부모와 같이 생각하고 금생에 크고 작은 일들, 인생에 있어 자질구레한 사건까지도 친부모처럼 살펴 실뿐만 아니라 과거 생애에도 그러 했고 내생까지도 그러해서 마침내 우리를 안락하게 키워주시고 지혜의 눈을 열어서 바른 행을 닦게 하시고 필경 정토에 나고 성불하는 데까지 붙들어 주시는 영원한 부모님으로 믿는 분도 있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해하는 과정에는 확실히 냉철한 철학적 이성이 지배하는 단계도 있습니다. 또 부처님의 엄격하신 가르침 앞에 연약한 의지와 자칫하면 실족할까 하는 두려움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들 불자들이 갖는 믿음의 바탕에 대하여는 그 느낌과 표현이 사람 따라 다르겠지만 평화 안온 감사 환희 서운, 이런 것ㅇ들이 불자들이 갖는 공통의 모습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것은 지성의 세계가 아닙니다. 의지의 세계도 아닙니다. 감성의 세계가 아닙니다. 그 모두가 하나를 이룬, 거룩하고 뜨거운 은혜, 그것을 부처님이라는 현실적인 인격에서 오는 감동을 자기생명의 것으로 느끼는 것이 아닙니까? 그건 아무래도 좋습니다. 억지로 형용하고자 하지 않습니다. 다만 철학적인 관념적인 이지적인 신앙이라기보다 부처님의 감동어린 인격을 부정하지 않으려는 것뿐입니다.

󰊲 연탄가스의 사연

C스님의 경우를 보아야겠습니다. (이름은 뒤에 밝힙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사촌형님을 찾아 설악산에 온 것이 어쩌다 방학은 다 가고 돌아올 종형은 오지 않고 산에의 정은 깊어가고 그러다가 결국 떠나기로 결정한 밤에 기다리던 종형이 찾아와 드디어 산사람으로 정착하게 됐던 C스님입니다. 군에 소집되어 복무하던 어느 해 겨울 대구 대성사에 하룻밤을 지내던 어느 날, C스님 그만 연탄가스를 먹고 산송장이 됐습니다. 새벽에야 사람들 눈에 띄어 병원에 운반되고 군에 연락되어 육군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지만 십여 일만에 의식만은 회복하였으나 몸은 움직이지 못하고 말도 하지 못하며 초점을 잃은 눈을 껌벅거리는 정도였으니 이는 산송장 아니면 식물인생에 가깝더랍니다. 담당 군의관은 물론 병원장까지 지성을 다한 치료가 계속되었고 미군의 진료까지 동원되어 온갖 치료를 다 해보았습니다. 그렇지만 좀체 호전되지는 않았습니다. 간호원이 먹여주는 밥을 소화하고 몇 달을 지나서 근근이 왼손을 움직이는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러는 동안에 겨울이 가고 봄이 가고 여름도 고비를 넘어선 8월이 되었습니다. 부분적으로 몸은 움직여도 바른 손과 몸의 기동을 하지 못하고 더욱이 의사표시가 불가능하니 차라리 의식도 감정도 없는 상태라면 몰라도 이러고서는 참으로 견디기 어려울 것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모든 분별 다 하고 모든 생각을 다 하면서도 수족이 움직이지 않고 혀가 움직이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마침내 인생을 비관하게 되었습니다.
<내 인생은 이것뿐이다. 부처님 앞에 나와서 곧고 맑은 때 묻지 않고 불자로서 남아로서 떳떳하게 한 생애 살려했더니 나도 이젠 이것으로 끝장이다. 이렇게 많은 사람에게 수고로움을 주고 이런 상태로 육체적 시간의 연장이나 해봐야 무엇 하자는 것인가? 차라리 죽자.> 이런 생각이 굳어지면서 그의 가슴속에서는 뜨거운 것이 뭉클뭉클 울먹거렸고 뜨거운 눈물이 한없이 솟아났습니다. 그러기를 며칠 그는 드디어 결정을 내렸습니다. 이제부터 20일간 관세음보살게 이대로 누운 채라도 기도를 하자.> 이래서 살 것도 생각이 없고 죽음도 생각에 없이 다만 서러운 하소연만이 가슴에 쌓여 날이 차면 결행할 것을 결심했던 것입니다.
그리고는 눈 감고 말없이 누워있는 무서운 날이 흘러갔습니다. 죽는다고 결정을 낸 마당에는 다시 아무 생각이 없더랍니다. 정신을 오로지하여 있는 정신 있는 생각 있는 힘 의지 생명 그 모두를 바쳐 소리 없이 관세음보살 염불만을 계속했답니다. 자는 시간이 되어 잠이 오면 자고 그렇지 않으면 의식이 깨어있는 한 염불로써 생명의식 전부를 충만시켰갔습니다.
밤10시면 안정제가 비급되고 목에 넘기는 것을 확인하고는 간호원은 교체해갔습니다. 그러나 C스님은 간호원 앞에서 목에 넣었던 안정제를 물만 목 넘어로 넘길 뿐 간호원이 나가면 약을 다시 토해내는 요령을 익혔던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안정제 20개가 모이고 21개가 되는 날 저녁 숙명의 순간은 막바지에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저녁 식사 후 그는 여전히 누워있었습니다. 염불을 계속하던 그는 어느덧 잠에 빨려가고 그리고는 꿈의 문은 열리고 있었습니다. 그의 곁에는 아주 인자하신 성인인 듯 이름 모를 친지인듯한 분이 와있어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젊은이, 왜 이렇게 실의에 빠져있는가?“ 그는 꿈속에서나마 심중에 쌓인 호소를 토해냈습니다. 어려서 집을 나와 부처님을 따랐고 이제 중도에 군인이 되어 제대할 날을 기다리고 산문에 복귀하여 새 출발을 기약하였더니 이제 이 모양이 되어 살지도 못하고 죽지도 못하고……가슴에 쌓인 이런 호소를 토해댔습니다. 그랬더니 인자하신 노인은 그의 이마를 만지며 하는 말이 “젊은이, 걱정말아요. 곧 나을터이니까 안심하고 잘 있어요.”하면서 형용할 수 없는 평안한 미소를 던지고는 자리를 뜨는 것이었습니다. 얼마나 기쁘고 위안이 되고 고마웠던지……. C 스님은 노인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뒷모습을 쫓았습니다. 순간 그의 머리에는 <저 분이 관세음보살이다>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순간 바른 손을 번쩍 들어 흔들면서 멀리 사라지는 노인을 향하여 소리소리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을 계속 외쳐댔습니다. 문 밖 저 먼 길 끝에 뒷모습이 살아질 때까지 손을 흔들고 관세음보살을 불렀습니다. 그는 다시 잠 속에 빠져 들었습니다.

󰊳 벙어리가 말하다

그때는 오후 8시가 조금 지난 시간입니다. 저녁 식사 후 언제나처럼 누워 눈을 감고 무엇인가 마음을 모으고 누워있는 환자 곁에서 당번 간호원은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환자는 어느듯 잠들어 있는 듯이 보였습니다.
그러기를 얼마 있다가 별안간 환자가 바른 손을 번쩍 들고 흔들며 입에서 관세음보살을 연거푸 외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바른 손을 움직이지 못하던 환자 말 못하던 환자가 손을 흔들고 소리를 지르니 이 신기함과 놀라움을 보고만 있을 수 없었습니다.
당장 뛰어나가 담당의사에게 말렸고 동료 간호원에게도 알렸습니다.
모두가 놀라 뛰어와 보니 그 때도 여전히 손을 흔들며 관세음보살을 부르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다 그가 다시 조용히 잠드는 것을 보고는 모두들 고개를 갸우뚱대고 돌아갔습니다.
윤환자(병원에서의 호칭)는 얼마 있다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그때부터 그의 손은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약간 더듬거리면서도 혀가 움직여 말이 나오고 있었습니다. 그는 그날 11시를 기하여 결행하기로 하였던 죽음의 결단은 이와 같이해서 무산되었습니다.
그의 회복은 급속하게 빨라졌습니다. 전 병원 내에 윤환자가 살아났다는 소문은 폭탄이라도 터진 것처럼 빠른 속도로 번져가고 놀라움으로 전달되었습니다.

관세음보살 보문품에는 <관세음보살은 중생들의 괴로움과 죽음과 모든 재난에서 능히 믿음직한 의지가 되시며 일체 공덕을 갖추사 자비의 눈으로 모두를 살피신다…>하였으니 여기 대구 육군병원 윤환자의 예에서 다시 명백한 실증을 보여준 것으로 생각됩니다.
(윤환자, 그 스님은 얼마 전까지 경기도 안성 칠장사 주지였으며 현재는 강원도 영월 법흥사 주지로 계시는 윤지원 스님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