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보조국사의 근본사상

특집II

2009-06-30     고형곤

…오늘 우리가 서 있는 현재라는 자리는 동떨어진 지금이 아니다.
기나 긴 과거의 역사를 그 속에 담고, 오늘을 꿈틀대며 내일을 지향한다.
… 오늘을 창조하는 동력이 그 곳에 뿌리는 고려 보조국사다. (편집자 주)

보조국사의 근본사상을 흔히는 (1)정혜등지문(定慧等持門) (2) 원돈신해문(圓頓信解門) (3) 경절문(徑截門) 으로 나누는 것을 상례로 한다. 그러나 이 세 부문으로써 보조국사의 근본사상을 특징짓는 데에는 약간의 이의가 제기된다.
무릇 한 사람의 근본사상을 내세우려면 그것은 방법론에 있어서나 또는 이 방법론에 의하여 도득(到得)한 영야(領野)에 있어서 다른 사람들에게서 일찍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면이 지적되어야만 한다. 이 관접에서 볼 때 그의 정혜정지(定慧定持)는 선문제조사(禪門諸祖師)에 공통적인 것으로서 이미 법보단경에서 <定慧一體不是二定是慧體 慧是定用……卽是定慧等學>이라고 강조되었었고 또 경절문 역시 선문에서 일반적으로 숭상하는 방편으로서 보조의 간화결의론(看話決疑論)도 별달리 새로운 것을 제시한 것은 없다. 그러므로 보조국사에게 돌릴 수 있는 근본사상이라고 친다면 그것은 마땅히 원돈신해문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원돈신해문은 지해신입(知解信入)으로서의 입문의 방편을 강조한 방법론과 이방편에 의하여 도득한 선교화회(禪敎和會)의 원돈일승문(圓頓一乘門)을 거양(擧揚)한다. 물론 지해신입문에서는 규봉종밀의 영향이 크고 원돈문에 있어서도 이 통현의 화엄신론의 영향이 절대적으로 큰바가 없지는 않다. 그러나 절요입사기(節要入私記)등에서 보다시피 보조는 자기 나름의 비판적 입장에서 받아들였을 뿐만 아니라 규봉종밀의 사상은 중국동토 특히 선문에서 전통적으로 착근을 하지 못했고 이 통현의 화엄신론도 해동조계종에서와 같이 교선화회의 실을 걷우지는 못했다. 해동조계종의 선문이 전통적으로 선교화회를 계승하여 내려왔고 또 지해입문도 결코 소홀하지 않고 있는 것은 오로지 보조국사의 근본사상에서 온 것임을 우리는 근대에 이르기까지의 이 땅의 선사어록들 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그러므로 보조국사의 근본사상을 (1)지해신입문(知解信入門) (2) 원돈일승문(圓頓一乘門)으로 나누어 이하 개략 서술하여 보기로 한다.

󰊱 지해신입문(知解信入門)

법집별행록절요(法集別行錄節要) 서문에 <당금에 선을 한답시고 하는 사람들을 보건대 일단은 문자에 의해서 장차 지향할 방향을 대종 잡지도 않은 채, 단번에 은밀히 심전한다는 것만을 위주로 하므로 혹은 부질없이 졸고 있거나 또 정신착란을 일으키는 수가 있다. 그러므로 내 말하노니 모름지기 경론의 진실한 가르침을 독료하여 그 어디로 들어가서 그 어떻게 증득해야 할 것인가를 명확하게 이해하고 난 뒤에 이것을 자심경에 헛되이 힘을 허비하지 않을 것이니라.>하고, 또 이어서 그러나<지해는 신해입문의 방편으로서만 그 의의가 있을 뿐인 고로 선의 근원과 그 오입의 문이 그 어디에 있는가(應知自心念念常有佛成正覺)를 지해에 의하여 명확하게 결택한 뒤에는 이 지해를 일체 버리고 망언절려(妄言絶慮)의 허심탄회한 자기의 심경에서 몸소 증득하여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행자들 중에는 흔히는 경론의 논리적 주석에만 늘어붙고 사사무애 연기법계(事事無碍 緣起法界)의 불과지해(佛果智海)를 이론적 대상으로 설명하려고 애쓰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므로 이 논문의 말후에서는 본분종사의 일초직입(一超直入)으로 바로 끊어들어가는 구중현(句中玄)의 선요를 들어 이론적으로 따지려는 병폐를 깨끗이 세척해 버리고 몸소 체득하여 탕탕지(蕩蕩地)의 동용지재(動用自在)에로 나서게 하노라⌋고 친절 정녕하게도 타이른다.

요컨대 보조국사의 접화방편(接化方便)은 (1) 일단은 지해에 의하여 범부인 자기도 여래와 다를 것 없이 보광명지(普光明智)를 본구(本具)하고 있고, 따라서 자기가 살고 있는 이 현실적 세계도 전도망상만 버리고 나면 그곳이 비로자나과지불(毗盧遮那果智佛)의 사사무애연기법계(事事無碍 緣起法界)라는 것을 굳게 믿는 신념을 가지게한 뒤 (2)구자무불성화(拘子無佛性話) 등 경절문 화두를 일심불란 참구한 끝에 도저히 이론으로서는 이해가 가지 않는 막다른 골목(心無所之)에서 망언절려하고 현애살수(縣崖撒手)의 번신(翻身)을 하는 분지일발(憤地一發)의 체험을 해야한다. 이리하여 정식(情識)을 깨끗이 씻어버린 뒤 이 허심탄회한 나의 심경에서 본구(本具)한 보광명지로서 그때그때 수연수작물래즉조(隨緣酬酌物來卽照)의 동용중(動用中)에 나서도록 한다.

그러므로 보조는 별행록절요에서 규봉 종밀의 별행록과는 달리 순서를 밝혀서 하택신회의 선지(禪旨)를 앞세우면서 <이제 내가 별행록의 순서와는 달리 하택신회의 지해를 앞에 놓은 까닭은 다름아니라 먼저 자심은 본래에선 여래심과 다른 것 없이 미오(迷悟)간에 그 어느 때이건 버리고 얻고 할 것 없이 미오의 차별의식 없이 무념코 일여하게 동용하는 것이라는 것을 깨친 뒤에 제종사(諸宗師)의 선요를 두루 보아서 그 선지가 어디에 있는가를 이해하는 것은 입문에 있어서 (학인을 접화하는 방편으로서?) 매우 효율적인 까닭이다. 만일 먼저 그 근원을 알지도 못하고 이것저것의 종지들을 뒤적거려 그 문구들의 의미에만 집착하고 보면 과연 어느 것이 옳은 것인지 갈피를 잡지 못하게 될 것인즉 어느 하가에 일체 만법의 근원인 자기일념에 귀착할 날이 있겠는가?>라고 한다.

그리고 이는 오늘날 수행하는 사람들은 이론적으로 이해하지 않고서는 승복하지 않는 고로 모름지기 견문과 이해를 거쳐야만 비로소 그 근원에 도득할 수 있는 까닭이다. 그러나 이 증득에 들어선 마당엔 이때까지에 의지했던 문해(聞解)는 투철하게 벗어내어 버리고 망언절려로서 몸소 그것에 일치계합해야 한다. 그러하기 위해서는 정전백수지(庭前栢樹子) 마삼근(麻三斤) 구자무불성(拘子無佛性)등 화두를 참구하여 홀연히 일구하에 단적으로 투철하게 증득하여야만 그대에 비로소 가히 사사무애연기법계에 들어가 여실하게 보고 듣고 여실하게 약동하게 될 것이니라>한 것이다.

󰊲 원돈일승문(圓頓一乘門)

금군완찬(金君緩撰) 보조국사비문에 의하면 승과에 입선한 뒤 창평 청원사에 주석했을 때 법보 단경의 <감각 지각을 통하여 우리는 시비, 선악, 호혐, 생불의 별별 세계를 보되 그것들은 모두 중생과 부처에 다 같이 본구하는 부동지 근본지(不動智 根本智)의 변화에 불과하니라>고 한 대목에 이르러 희열을 느끼었고 대정(大定)25년乙未에 하구산 보문사에서 화엄경을 읽던 차 이 장자의 화엄신론을 얻어 샅샅히 독료한 결과 앞서 가졌던 견해가 한층 더 밝아져서 그 뒤엔 원돈관문에 골몰했고 승안(承安)2년 戊午 봄에 지리산 상무주암에 은거할 때 대혜보각선사 어록에 <선은 고요한 데에만 있는 것이 아니요 그렇다고 시장터에 있는 것도 아니며 의식주 일상생활이 그대로 선이 아니려니와 또 이론으로 따지고 밝히어지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정처한처 일용응연처 사량분별처(靜處閑處 日用應緣處 思量分別處)를 떠나지 말고 그것에 즉해서 곰곰이 생각해 보라! 이때 몰득 깨침을 얻어 바야흐로 이것이 다름 아닌 나 자신에 본래부터 구유(具有)한 진실이라는 것을 알지니라.>고 한 대목에 동감을 하고 나서 <보문사 이래 십여 년 동안 적체(積滯)와 같이 늘 꺼림직 하던 것이 없어지고 당장에 안락해졌노라>고 피력을 했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보조국사가 홀연 개안한 곳, 궁극적으로 도득한 곳은 별다른 세계가 아니라 뭇 중생들이 살고 있는 바로 이 현실적 세계로되 중생들이 살고 있는 그 자세에서 본 그대로의 현실적 세계가 아니라 그것에 不卽不離한 참구에서 문득 개안(開眼)한 눈으로 본 이 현실적 세게인 것이다. 그리고 이때의 현실적 세계는 방지시옥리사(方知是屋裏事)나 자신에 갖춰있는 심경 이외에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또한 깨달은 것이다. 또 화엄론절요서에서 보조 자신이 몸소 한 말을 보건대 <대정 을사년 가을에 하구산 보문사에 은거하여 항상 선문의 즉심즉불(卽心卽佛)에 잠심해 왔으나 종시 화엄교중의 悟入之門이 과연 어떠한 것인가를 알기 위하여 화엄교주에게 물어 봤으나<사사무애의(事事無碍) 불지경계를 내다보지 않고 한갓 자심만 파고드는 것은 원흉무애의 佛果를 잃게 되는 것이다>라는 교주의 대답에 이의를 품고 불경 중에서 선문(心宗)에 일치 하는 문구가 있지는 않은가고 찾아보기를 3년, 화엄경출현품의 <여래의 지혜가 중생 몸 가운데도 고루 갖춰 있다>는 대목에 이르러 부지불각 간에 책을 머리에 얹고 감사하는 나머지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최초에 그 어디로부터 신입(信入)해야 하는가가 미상하던 중 십신초주장(十信初住章)에 말하기를 신심지초(信心之初)에 문수보살은 (1)자심이 본래엔 자정무구(自淨無垢)한 법게라는 것 (2) 자신심의 분별지도 본택엔 주객대립에서의 대상의식을 가지지 않는 부동지불(不動智佛)이라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심은(3) 정과 사를 일일이 잘도 간택하는 묘혜(妙慧)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대번에 깨쳤다고 하고 또 범부들로서 이 십신위(十信位)에 들어서기가 매우 어려운 까닭은 오로지 자심이 곧 부처님의 부동지불(不動智佛)이라는 것을 긍정하려 들지 않고 스스로 자굴자퇴 하는 데에 있다>고 한 대목에 이르러<세존이 말로서 설법한 것이 교(敎)요, 조사들이 마음속에 비전해온 것이 곧 선(禪)이니, 부처님의 말씀과 조사들의 마음이 어찌 서로 어긋나는 일이 있겠는가!> 불어(佛語)와 심종(心宗)이 일치계동하는 것을 나는 여기에서 발견했노라⌋고 하고 이어<수선(修禪)하는 사람은 먼저 문자어구의 뜻에 거리낌 없이 조도(祖道)에 의하여 자신심이 본래 묘용(妙用)을 지닌 부동지불이라는 것을 철저히 믿고 그 다음엔 논문에 의하여 우리의 심의 체용(體用)이 다름 아닌 법계의 성상(性相0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결론을 지었다. 이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현전의 세계의 본체와 그 현상이 곧 우리에게 본래부터 구유한 자신심의 본체와 그 묘용에 일치하는 것이라는 뜻으로서 화엄교종의 원융무애한 연기사법의 법계(圓)를 자심경내(自心鏡內)에서 돈증(頓)하는 것을 궁극적인 진리로 본 것이다. 그러므로 보조의 이 종지를 원돈관행문(圓頓觀行門)이라고 한다.

간화결의론에서도 그는<선문에도 은밀하게 부촉함을 감내하지 못하는 중하근의 무리가 있어서 언어를 여의고 심연상(心緣相)을 일체 배제하여 무념무사의 한갓 적적한 암갱(暗坑)속에 몰입하고 목전에 현전하는 현실적 세계를 못 본 채 소외하려 든다. 이것은 바로 대혜종고 선사가<한찰라의 사념만 일어나도 고개를 쌀쌀 흔들어서 불식(佛拭)하여 버리려고 애쓰는 것도 또한 일체심 의식의 돈절(頓絶)만을 유일의 선인 양 집착하는 자들의 소행이다>라고 하여 일념불생(一念不生)이언절상(離言絶相)의 일분이성(一分理性)에만 집착하는 돈교를 경계한다. 그리하여 그는 무명(無明),행(行), 식(識),……취(取), 유(有),생(生),노사(老死)의 12인연으로 연기하는 중생번뇌 미혹의 세게인 이 현실적 세계를 부정하려들지 않는다. <환화(幻華)와 같이 일어났다 사라졌다 하는 12인연 중생미혹의 세계라 할지라도 따지고 보면 그것들이 자성을 가지고 독자적으로 실재하는 것이 아니고 중생과 불에게 꼭 같이 본래부터 구유한 보광명지에서 일어나는 것인 고로> 만일 이 자신심인 본광명지에서 그때그때 동용한다면<무시이래로 중생의 무명에서 일어났던 번뇌미혹의 현실적 세계도 대번에 여래 보광명지에서 빚어지는 사사무애연기법계인 불과지해가 되는 까닭이다.<후생산업과 공업기술이 모두 여래와 중생에게 구유한 보광명지의 동용에서 일어나는 것>이며<모든 부처치고 이 지(智)의 나타남이 아닌 것이 없고 모든 중생도 이 지의 나타남이 아닌 것이 없다.>그런고로 자심보광명지 양동허공법계(自心普光明智 量同虛空法界)—우리의 자신심인 보광명지의 둘레와 일체 현실 및 비현실적 세계의 둘레는 일치한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망언절려(妄言絶廬)로써 정식(情識)(객관적 실재를 의식 지향하는) 만 버리고 나면 동연명백(洞然明白)하게 현전하는 사사무애연기법계로서의 이 현실적 세계를 적극적으로 긍정하기는 하되 불과지해(佛果智海)로서의 이 사사무애연기법계인 이 현실적 세계는 화엄교종의 행포문(行布門)에서 주장하듯이 십 천억 겁 년의 수행정진 끝에 증득될까 말까하는 객관적으로 실재하는 세계로 보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그는“만일 화엄교종과 같이 이 현실적 세계를 객관적 실재로 여기는 정식(情識)을 버리지 못한다면 그 어느 세월에 이 생불원융(生佛圓融)의 이 경게에 들어설 수가 있겠는가”라고 한다. 그리고 청량징관(淸凉澄觀)조사의 과해이념이심전(果海離念而心傳)이란 말을 인증하면서 선문의 이념상전(離念相傳)은 연기법계를 일심 상에서 한 찰라에 몰득 증득하는 것이라고 한다.

“한 찰라에 문득 나의 시선을 자심성에 돌이키어 일체 정식을 버리고 나 자신의 심경에서 四聖六凡의 의보(依報)인 산하국토와 정보(正報)인 신심등 사사법법(事事法法)이 한결같이 환하게 현전하여 무애연기법계를 여기에서 보게 된다⌋고 하고 또 간화결의론에서도 <동산수상행(東山水上行) 또는 구자무불성화(狗子無佛性話)등 도무지 문리(文理)가 닿지않고 이치로는 따질 수가 없는 화두에 부딛쳐 옴낫 뛰지 못할 찰라 문득 개안되는 나의 심경에서 연기법계가 훤칠하게 환해진다>고 한다. 이것으로 볼진대 그는 대혜종고의 간화선에 깊이 동조하되 대혜종고의 간화선과는 다른 하나의 새로운 경지에 도달한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 있는 것을 짐작할 수가 있다.

이와 꼭 같은 분지일발(憤地一發)의 심경에서도 대혜종고는“장 제형거사는 천품이 대담한지라 다른 사람에게 비교하면 만분중 9999분까지를 이미 살펴 얻은 바 있으되 다만 분지일발에 문득 깨치는 남은 1분에는 아직 도득하지 못한 것이 유감이로다. 무릇 사대부들은 손발 둘 곳을 모르는 막다른 골목에 부딛쳤을 때 바로 이때가 바야흐로 눈뜰 수 있는 호시절인 줄은 모르고 그저 이론으로 이렇게 저렇게 설명하려들고 말로써 이렇게 저렇게 납득하려고 애를 쓰니 참 착각도 이만저만이 아니로다“라고 했다. 이와 같이 대혜종고는 분지일발에 있어서 정식제각(情識除却)을 강조할 따름 보조의 그것에 있어서와 같이 정식을 버린 뒤에 <일심법계 도연명백>이라던가 또는 연기법계를 於斯可見矣등의 표현은 하지를 않았다. 대혜종고는 일언하에 승당할 뿐 머리털끝만큼이라도 머뭇거리고 다지려드는 간격이 있어서는 아니 된다.

그때엔 활발지 자유자재의 동용이 멈춰지고 그만 주객대립의 관념론에 떨어지고 만다. 애서 그것을 붙잡으려고 집념하지를 말고 단적으로 몸소 그것이 되어서 일용응연처(日用應緣處)에서 그저 이렇게 수연응연하는 수월한 태도로 살아나갈 때 바로 이 성력처(省力處)가 득력처(得力處)라“고 하고, 또 그는 말하기를 ”제발 이 생각 저 생각 애쓰지도 말고 또 그런 생각은 하지 않으려고 애쓰지도 말아라. 그저 24시간 일상생활에서 아무런 거리낌 없고 지체 없이 단적으로 동용자재의 임마행(恁麽行)을 하라“고 한다. 이것이 대혜의 선이다. 이것은 지저현금용저 일개사야무(只這現今用底 一箇事也無)를 표방하는 임제종의 선지이다. 일언이폐지하고 대혜서장에서는 화엄원교(圓敎)의 원흉무애 연기법계 등등의 화엄종의 냄새는 일체 찾아볼 수가 없다. 이 점이 바로 보조국사의 선, 나아가서는 니 전통을 이은 한국 조계종선이 대혜선 내지 임제종 선과는 다른 대목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보조 내지 해동 조계종의 선문은 화엄교종을 염매(鹽梅)한 선교화회의 원돈일승(圓頓一乘)을 그 특색으로 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