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광다실] 20호 불광다실

2009-06-29     관리자

♣ 하늘에는 태양이 눈부시게 쏟아지고 지상에는 신록이 철철 흘러넘친다. 6월이야말로 청풍의 계절이니. 하늘과 땅이 온통 생명의 충만을 구가하는 찬란한 계절—.
그러나 우리에게는 이 6월이 너무나 비극적인 기억으로 되살아나는 것이다. 바로 6⦁25의 달이기 때문이다.
6⦁25, 우리 겨레의 마음 속 깊이 영원히 지워질 수 없는 상처를 안겨준 그날로부터 벌써 26년이 된다. 이 수난의 6월을 우리는 어떻게 맞고 있는가. 고난이 고통스러운 것으로만 처리되고 기억될 수 있을까. 우리들은 6⦁25가 민족 최대의 수낭이기도 하겠지만 이것을 시련으로 삼아 겨레의 바탕을 굳히고 우리의 허점을 반성하며 항구적 발전의 계기를 마련할 사건으로 받아져야 할 것이다. 실지 우리들은 조국이 얼마나 중요한가. 조국을 지키는 신성한 민족정신이 얼마나 소중한가. 그릇된 사상이 얼마나 해독이 심한가. 우리의 일상생활이 나 하나만이 아니요, 실은 너무나 뼈아프게 느꼈던 것이다. 처참하리만치 몸부림친 지난 26년은 오늘날 잿더미 위에 오늘의 안정과 번영을 이룩해 놓았다. 오늘날의 우리의 상황이 결코 완전한 의미의 안정이나 번영으로 보는 건 아니지만 저때의 폐허와 상흔과 오늘을 비교할 때 그 누가 오늘의 성장되고 굴할 줄 모르게 일어선 조국의 모습을 긍정의 눈으로 보지 않을 수 있을까.
우리는 고난에서 지혜를 배우고 자기의 지금과 과거를 반성하고 그르침 없는 미래를 설계하면 새로운 용기와 의지를 불붙인다. 우리는 실지 그리하였으니 결코 고난이 우리를 좌절시키지 못했다. 고난에서 배우고 실패에서 배우고 슬픔에서 배우고 그리하여, 즐거움에서 보니 고난에서 더 큰 성장을 얻는 것이다.
환경여건의 부자유와 육체에 가해진 고난은 이것이 오히려 지혜를 주고 마음을 살찌우는 길을 통하게 한다. 하지만 물질적 육체적 환경의 풍요는 우리의 정신을 바르고 깨끗하고 슬기롭고 굳세게 키워가는 데에 큰 위험을 가져다주는 수가 잇다. 물질이 가치의척도가 되고, 환락, 육체적, 감각적 향락이 행복이 되고, 나태와 무기력의 안개가 인간 머리 위에 깔려가는 것이다. 이러한 위험이 오늘날 우리 주변에 퍼지기 시작하는 것을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약간의 안정과 성장을 이룩한 반면 인간정신의 바탕을 되돌아보는 반조가 결여된 곳에서 오는 것이 아닌가. 건전한 정신 왕성한 생기, 참된 자아의 신앙이 야말로 인간을 참된 인간으로 성장 시키고 세계의 안정과 번영을 심어주는 근원인 것이다. 오늘6⦁25를 당하여 우리는 자신을 맑은 눈으로 되돌아보는 계기를 삼자. 그리고 참된 자기를 어기고 곁길로 내닫고 있지 않나 냉철히 살펴보자. 우리는 나 혼자만이 아니다. 가족과 함께 있다. 온 겨레와 조국과 함께 있다. 우리의 생명은 불보살의 거룩한 정토에 근원했고,⌈우리의 마음에는 무한의 지혜와 자비와 청정과 위덕이 필요한 만큼 공급된다. 이 날을 다시 확인하고 우리의 주변을 되돌아보면 조국의 미래를 그리고 세계를 향하여 꿋꿋하게 걸어가는 민족의 정예인 ⌈우리⌋를 그려보자. 이것이 6⦁25를 만난 우리의 서원이 되리라 믿어진다.⌋


♣ 유유히 흐르는 한강 겨레의 젖줄이며 맑고 푸르게 유유히 흘러간다. 이 흐름 위에 기록된 겨레의 애환은 그것이 오늘로 결산되어 지금의 우리에게 닿아 있다. 이 애환의 긴 역사의 주인이 되어 겨레의 역사를 보존하며 신성하게 키우며 영광된 조국을 지켜온 수많은 별들 그 별들을 우리는 순국선열이라 한다. 그리고 그 별들이 차지한 하늘을 우리는 한강기슭 동작동에 갖고 있다. 우리는 이 빛나는 민족의 별과 영원히 흐를 한강의 물을 대하면서 무엇을 생각하는가. 첫째는 영원한 나의 조국이다. 다음은 영원한 조국을 지켜온 선열의 빛나는 정신이다. 다음은 이를 계승하여 조국의 영광을 보태고 미래영겁으로 전할 우리의 책임이다. 동작동 순국선열을 생각하면서 우리는 영원히 우리 가슴속에 참된 민족적 자아를 불러일으키며 우리의 정신을 가다듬어주는 순국선열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 거룩한 조국의 별에게 머리 숙이자. 끝없는 감사를 드리며 불보살의 자비 광명의 길이 그와 함께 빛남을 기원하자. 이것은 6월6일 현충일을 당한 광실자(光室子)만의 외침은 아닐 것이다.


♣ 근일에 청소년문제가 유독 우리의 관심 속에 확대되어 간다. 오월의 대기처럼 싱싱하게 퍼져가는 우리들의 3세들이 제대로의 빛깔과 활기를 갖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 문제인 것이다. 지난 오월 달은 청소년의 달이라하여 한층 청소년의 지도와 청소년을 키우기 위한 사회여건 조성을 위해서 많은 행사를 했다. 하지만 우리의 청소년에게 오늘날 퍼져가고 있는 문제점은 그것이 그리 복잡한 것은 아니라 생각된다. 우리의 청소년은 정신적 육체적 소질이 원래로 건전하다. 빛을 향하여 도약하려는 생동하는 힘이 넘친다.조국과 세계를 향한 이상은 하늘보다 푸르다. 다만 오늘날 문제 삼아야할 것은 저들이 서야할 정신적 터전이 문제인 것이다. 가정과 학교와 사회에서 배우고 익힌 지식과 기능은 넘치도록 풍성하지만 저들이 서있는 정신바탕에 끊임없는 동요와 무정견이 흐르고 있는 것이다. 물질위주 금전만능 육체유일의 유물주의의 그림자가 저를 청순한 의식세계에 끊임없이 부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웃도 형제도 자기 아닌 남이라는 이기적 개인주의 사고방식이 저들을 물들여가고 있는 것이다. 나와 부모와 형제가 한 몸이며 이웃과 겨레가 나의 생명에서 하나를 이루고 있다는 의식은 점점 케케묵은 공동론으로 배격을 당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이기적 개인주의와 물질적 감각주의 풍조가 끝없이 해맑은 저들의 얼굴을 어둡게 하고 발랄한 저들의 성장을 퇴폐와 나약으로 비뚤리게 하고 있다. 물론 이렇게 된 데에는 그 나름대로의 깊은 이유가 있는 것을 안다.
무엇보다 산업화 공업화 사회가 가져온 가치관의 변동과 가족제도의 파괴다. 그러나 우리의 청소년을 밝고 슬기롭고 참되게 키우는 일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일이다. 그리고 이러한 청소년의 문제를 해결할 근원적인 관건은 가정에 있음을 말해준다.
그리고 참으로 슬기로운 우리의 청소년을 키우기 위하여는 가정을 이루는 부모에게 첫째 책임감이 있고 부모교육은 청소년 교육에 앞서 시행되어야 할 중요점이라는 것을 말해 주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