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아포교의 필요성

불교와 여성

2009-06-29     관리자
  서너살 짜리 가운데에도 스님을 뵈면 뛰어와 합장인사를 할 줄 아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스님이 무서워 피하는 아이도 있다.
  이렇게 특별한 계기도 없이 부지불식간에 특정 종교인이 되기도 하고 또 아무리 노력해도 종교를 갖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더구나 무엇이 그 많은 종교 가운데에서도 특정 종교를 자기 마음의 지주로 자리 잡게 하는가? 이러한 문제는 포교를 해야 할 종단에서나 자기 자녀가 커서 신앙심을 갖고 생활하기를 원하는 부모라면 알아 두어야 할 기본지식이 되겠다.
  이러한 취지에서 이번에는 종교의식발달의 초기 과정을 살펴보기로 하자.
  정신분석학자들에 의하면 인간이 갖는 초월자에 대한 관념은 앞서 언급한 바 있듯이 유아기 때 어머니와의 관계를 중심으로 발달한다.
  어머니와의 관계에서 형성되는 신뢰감 발달이 종교 관념의 뿌리가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때문에 어떠한 이유에서든지 부모나 그 대리자를 따르지 못했던 아이들 즉 인간에 대한 불심감이 형성된 어린이는 자라서 성직자를 믿기도 어렵고 부처님도 존경하지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일반적인 아이들은 부모에게 전적으로 의지할 때 자기의 부모는 무엇이든지 다 할 수 있고, 다 알고 있다고 믿고 따른다.
  그들이 점차 자라면서 보다 많은 경험을 쌓고 성장해 감에 따라 부모가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하게 마련이다.
「귀신은 어디서 사는가?」 「애기는 어디서 오는가?」 「돌아가신 할아버지는 왜 올 수 없는가?」 「천사는 남자인가, 여자인가?」 「극락세계는 하늘에 있는가?」 등.
  이러한 질문들을 통해 부모를 최고의 존재, 궁극적인 존재로 알던 감정이 사라지기 시작하고 부모보다 더 높은 어떤 것이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이런 느낌은 처음에는 희미하나 점차 분명해지는데 이 때 주의의 어른들, 즉 부모나 유아원 선생님들의 지도와 영향에 의해 종교에 대한 개념이 급속히 자리잡히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종교에 대한 개념이 형성되는 과정 속에서 작용하는 용인을 분석해 보면 연장자의 행위로부터 받는 간접적 영향과 직접적 교육을 들 수 있는데 이중 가장 중요하고도 지속적인 요인은 간접적 영향이라는 것이 일치된 연구내용이다.
  즉 모방에 의해 어릴 때부터 몸에 익힌 습기(習氣)가 교리의 우수성보다 더 중요하게 작용한다는 뜻이다.
  어머니가 법당에 들어가 절을 하고 염주를 굴리면 아기도 절을 따라서 하기 마련이다. 아버지가 스님을 반갑데 모시면 아이도 「스님은 좋은 분」 「아버지보다 더 훌륭하신 분」으로 감지하기 마련이다.
어릴 때의 종교행동은 이렇게 모방에 의하기 때문에 엄밀한 의미에서 종교적인 행동이라기보다 사회적인 행동이다.
  즉 어른이 시키니까 행하는 옷 입기나 웃어른에게 인사하는 행위와 똑같은 일상적인 습관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은 사회적인 행위이지만 종교적인 행동 습관이 부지불식간에 아이들의 마음에 미치는 영향은 지대하다는 점이다.
  더구나 이러한 행동이 감각을 통해서 종교적으로 받아들여질 때 가장 미묘하고 오래 지속되고 침투력이 강하다.
  즉 종교의 교리나 계율에 대해 가르치는 것 보다 어른들이 운명을 좌우하는 힘에 대한 외경(畏敬)의 태도를 취한다는지, 아이들이 종교적인 감정이 표출되는 행동을 모방함으로써 생각하고 스스로 놀라워하면서 느끼게 되는 편이 수많은 엄숙한 종교적인 말을 배우는 것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어른들이 행동과 말에서 숭배와 종교적인 감정의 표현을 느끼지 못할 때 아이들의 종교도 표면적으로 끝날 가능성이 많다.
  이렇게 볼 때 종교교육은 지적으로 시킬 것이 아니라 정서적으로 행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니까 사찰에서나 불교 유아교육기관에서 종교교육을 시키고자 할 때 행사 때나 한 번씩 스님이 오셔서 설법을 하신다든지 받야심경을 외우게 한다든지 하는 것도 적은 영향을 줄 수 있겠지만 이러한 행위보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담당교사가 스님에 대해, 또 부처님에 대해 존중하는 태도를 취함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렇게 주위 어른들로부터의 간접적 영향이 가장 중요한 용인이고 그 다음은 직접적 교육을 들 수 있다. 직접 교리의 우수성을 설명하거나 체험케 함으로써 신앙심의 씨앗을 뿌릴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경우에 주의해야 할 점은 어른에게 알맞은 종교는 아이들에게 전혀 무의미하다는 점이다. 더구나 어린 시기의 독단적인 교리훈련은 성인이 되었을 때 쉽사리 무너져 버리기 쉽다.
  아이들의 연령에 알맞게 그들의 호기심에 호소해야 한다. 즉 그들은 사건이나 사람에 흥미가 많기 때문에 이야기로 구성하여 들려주는 것이 효과적이다.
  관세음보살의 가피력이 담긴 그림동화를 통해서 인과응보의 철칙을 이해시킨다든지 연극을 통해 구도자와 일치감을 느껴본다든지 우선 흥미와 재미를 갖고 대할 수 있어야 한다.
  불교의 그 많은 비유경을 활용하면 지루하고 난해한 법문보다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내용들은 유아기 종교 체험의 중요성과 그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방법을 알게 한다. 불교계에서   그동안 인연소치 만을 앞세워 유아에 대한 무관심했음을 반성해야 한다.
  유아들을 위한 흥미로운 교구개발은 몇 년 뒤 종단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기독교에서 유아교육의 붐이 일기 시작한 원인도 유아기 종교 체험의 중요성을 인식하면서부터이다.
  기독교 교육원이는 책에 의하면 미국 교회 교인의 85%가 어린시절 주일학교를 거친 이들이라 한다.
선교사나 교역자의 95%가 어린시절 주일학교 출신이라는 점도 위의 내용을 증명한다. 그래서 어린이 주일학교가 교회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교회가 주일하교에 크게 의지하고 있음을 인식한다.
  그래서 미국 감리교회에서도 만일 어린이 주교사업을 교회에서 없애버린다면 감리교회는 15년 이내에 교인 수가 반으로 줄어들 것이고 30년 이내에 감리교회는 실제적으로 없어지는 것이나 다름없어진다고 외친다.
  이렇게 교회존속의 필요에 의해서 어린이 선교활동을 활발히 전개하고 투자한다.
  물론 한 종교의 포교방법이 반드시 모든 종교에 합당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유아기 종교 경험의 중요성을 인식해야 하는 것은 이제 시대적인 소명이다.
  아이들에게 종교적인 굴레를 씌우자는 것이 안라 종교를 가질 수 있는 인간으로 자랄 수 있도록 도와줌은 종단이나 부모가 담당해야 할 역할인 것이다.
  어린 유아시적부터 부처님의 복전(福田)에서 기쁘게 뛰놀고 스님들과 함께 웃는 아이들이 뛰놀고 스님들과 함께 웃는 아이들이 훗날 불교계를 이끌어 갈 일꾼이 될 것은 뻔한 일이다.
  우리가 더 이상 지체 말고 지금 바로 착수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분명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