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양생사상養 生 思 想

해외논단

2009-06-28     관리자

󰊱중국의 신선도

어느 민족이나 그 민족 고유의 의학론이 있다. 동시에 그것은 제각기의 민족 고유의 신앙과 깊이 연관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적어도 근대과학이 성립할 때까지는 의학과 종교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생각된다. 중국에서 의학과 깊은 연결을 갖는 것은 도교(道敎)이다. 여기서는 극히 개략적 설명을 하고자 한다.

도교와 같은 말로 도가(道家)라는 말이 있다. 이것은 노자(老子), 장자(莊子)처럼 자연 무위도를 주장한 사상가를 가르킨다. 이 도가에서 말하는 「도」는 도교에서는 신격화 되어 원시천존(元始天尊)이라는 최고신이 된다. 이것은 태원(太元)보다 앞서서 생긴 가장 높은 존재라는 뜻이리라.

「도는 一을 낳고, 一은 二를 낳고, 二는 三을 낳고 三은 만물을 낳는다.」(노자도덕경)한 것처럼, 도는 모든 존재의 근원이고, 또한 「만물은 유에서 나고 유는 무에서 난다.」한 것처럼, 이 도는 무의 영역에 속하여 이름지울 수 없는 것이다.

원시천존 다음에 위치한 신은「원시천왕」인데 이것은 음양(陰陽)의 두 기운(二氣)이 아직 나뉘지 않은 혼돈 상태에서, 천지도 일월도 형상이 없는 그런 때에 천지의 정기를 받아서 이루어졌다. 그 밖에 온갖 신이 있어 체계성을 이루지 않은, 채로 있다. 그 중에는 신농(神農.藥房), 로반(魯班, 木工) 두강(杜康, 酒造)과 같은 직능신도 있으나, 이들은 뒷날 동업조합들이 만들어 낸 것이리라. 이런 종교는 언제쯤 성립되었을까. 원래 중국인은 종교에 대하여 부정적 민족이라는 편견을 오랜 동안 가져왔다. 그러나 실은 토속적․ 민간적 제사 신앙은 사뭇 오랜 동안 행하여졌던 것이다.

서력 기원적 3세기경에 주로 산동반도 근처에 초능력을 가진 불로장생하는 신선의 세계를 동경하고 구하는 생각이 이루어져 있었다. 그래서 불로불사하기 위하여 연금(鍊金), 연단(煉丹), 행기(行氣), 도인(導引), 안마(按摩), 벽곡(辟穀) 등 가지가지 방법이 나타났다. 또한 민간에는 오래전부터 주수(呪水)나 호부(護符), 주(呪)같은 주술적 치료법 내지 재난을 피하는 법이 전해 왔다. 이 밖에 여러 가지 전법이 행하여져서 그런 방법을 통달하여 존경받는 사람들이 방사(方士)라든가, 술사(術士) 라고 불리운 사람들이다.

오늘날 도교하고 불리우는 종교조직은 신선설과 민간의 주술, 점법 등이 섞어서 3․ 4세기 경 후한말(後漢末)에서 삼국시대에 걸쳐 서서히 형성된 것이다. 그 중 최초로 등장한 것이 2세기 중반에 촉(蜀, 四川省)의 장능(張陵)이 일으킨 오두미도(五斗米道)이고, 이와 거의 같은 무렵에 장록(張鹿)이 태평도(太平道)를 폈다. 이 두줄기는 뒷날 합류하여 천사도(天師道)라는 교단이 되지만 5세기 반부터 6세기에 걸쳐 상청파(上淸派)교단에 의하여 도교의 경전가 의례가 정비되었다. 같은 때에 북위의 구겸지(寇謙之)가 나와 국가 종교로서 신천사도를 확립하였다.

남북조 통일 후에도 수(隋),당(唐),이 모두 도교를 존숭하였고, 특히 당 왕실에서는 노자를 왕실의 원조(遠祖)로 존숭하였으며, 전국에 도관을 설치하고 과거과목에 노자 도덕경을 과하리 만치 대대 천자가 도교를 숭배했다. 당대에는 단약(丹藥)의 제법 연단술이 크게 발달하였고, 오늘날에 전해지는 자료들도 오랜 것은 대개 당대에 만들어진 것이다.

오늘날 중국에서 또는 대만에서 행해지고 있는 도교는 송(宋)대인 12세기 경에 시작된 전진교(全眞敎)와 앞서 말한 천사도 계통인 정일교(正一敎)와 무당산을 본거로 하는 무당도(武當道) 등이 유력하지만, 그 중에서 특히 전진교는 몸안에서 금단(金丹)을 연성하여 이로써 불로장생하는 설(說)의 영향을 크게 받고 있다. 이것은 오늘날 선도(仙道)라 하여 대만에서 크게 연구되고 실천되고 있다.

 

󰊲기(氣)와 조기(調氣)

중국의 의술과 양생술에 대하여 말한 전제로써 이상에 도교에 관하여 긴 설명을 하였는데, 그 이유는 종래 중국의학 연구자들은 도교와 의학과의 깊은 연결에 대하여 관심을 두지 않고, 한편에 도교연구는 주로 교리․ 경전․ 의례에 관심을 두고, 역시 도교가 가지는 의학적, 양생술적 측면에는 무관심한 오늘의 실정 때문이다. 도교는 그 중심사상이 불로장생을 동경하여, 한편에 치병, 피재(避災)를 포함한 양생술이고 이것을 실행하는 수단으로 여러가지 기법이 있어, 도교가 발전하여 왔다. 이처럼 도교는 완전히 현세구제적이다.

중국의 양생술을 지탱하고 있는 사상은 「기(氣)」관념이다. 또한 기를 몸안에 순환시키는 통로로서 경락(經絡)의 관념이다. 중국에서는 예부터 오늘날까지 「기」의 작용은 중시되어, 오늘날에도 「기공(氣功)」과 같은 호흡법과 명상법을 함께하는 신체운동이 성행하고 있다.

「기(氣)」사상을 세운 사상가는 노자와 장자, 즉 도가이다. 저들의 생각에 의하여 기를 자유자재로 운용하는 능력을 갖게 되면 신인(神人)이나 진인(眞人)으로 불리우는 초능력자가 된다. 「장자」에도 이런 진인은 「물에 들어가도 젖지 않고 불을 밟아도 뜨겁지 않다」(장자 대종사편)라든가 「바람을 마시고 이슬을 먹으며 운기(雲氣)를 타고, 비룡(飛龍)을 부리며 사해(四海) 밖에 노닌다.」(장자 소요유편) 라고 설명하고 있다. 「기」란 말할 것도 없이 우주에 충만한 것이며, 우리들이 들이쉬고 토하며 몸 안에 충만하고 생명의 근원이 되는 것이다. 이런 기를 자유로이 통제한다는 것은 몸 안에 가득한 기와 우주에 차있는 기가 원래 연속되어 일체가 되어 있는 것일진대, 우주적 생명력과 인간적 생명력을 함께 지배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혹은 양자를 감응시킬 수 있다 하여도 좋으리라.

그렇다면 도가가 말하는 「기」의 조작이란 어떻게 하는 것일까. 노자 도덕경에는「신(神)을 기르면 죽지 않는다. 이것을 현빈(玄牝)이라 한다. 현빈의 문은 천지의 뿌리다. 면면히 이어지는 것처럼 힘써 행하라」하고 있다. 이 글은 조기법(調氣法) 호흡법)을 말한 것으로 해석된다. 신이란 간, 폐, 심, 신, 비 등 오장(五臟)에 있는 오신(五神)으로써 이들 신을 기르면 죽지 않는다. 이 죽지 않는 길은 현빈, 즉 코와 입으로 기가 출입하는 기관에 달려있다. 현빈의 문, 즉 코와 입의 문이란 천지간이 원기를 통하게 한다. 그 통하게 하는 방법, 즉 조기법은 숨이 있는 듯 없는 듯 가늘고 길게 행하여야 한다라고 말하고 있다. 도덕경의 이 해석을 검토하여 보면 황제내경소문(皇帝內經素問)의 기론(氣論)을 바닥에 깔고 있는 것이 주목된다.

이와 같은 호흡법은 「장자」에서도 유명한 심재(心齋)에도 보인다. 「그대 마음을 하나로 하라. 이것을 듣기를 귀로하지 말고 심(心)으로 하라. 심으로써 이것을 듣지 말고 기로써 하라. 듣는 것은 귀에 머물고 심은 부(符, 외계와 부합)에 머문다. 기라 하는 것은 허(虛)하여 물(物)을 기다리는 자다. 다만 도는 허에 모인다. 허한 자는 심재(心齋)니라」(인간 세편). 이것은 조식의 수행법을 설한 것이다. 요컨대 출입하는 호흡(기식)이 외계의 사물을 감각적으로 잡는 기관인 귀로 듣는 단계에서 몸 안에 있는 정신활동을 관장하는 심이 아니면 들을 수 없는 단계에 이르고, 다시 몸 안에 가득차 순환하고 있는 기로써 들을 수 있는 단계에 도달하여야 진인의 경지가 달성된다는 말이다.

종래 장자 연구가는 장자의 심재에 대하여 일종의 정신적 수행법으로만 이해해 왔는데, 나는 조기법이 수행에 대한 기술이고 그것은 일종의 심신론(心身論)이라고 생각한다.

 

󰊳양신과 양형

중국의 전통의학은 병이 나타나기 전에 신체를 조화시키는 것을 첫째로 삼고 있다. 다시 말하면 양생술(養生術)의 중시라고 할 수 있다. 신체의 조화란 「기」의 조화라고 한다.

황제내경영추경(皇帝內徑靈樞經)에는 침구치료에 대하여 보(補)라든가, 사(瀉)라는 침법이 나온다. 이것은 경략을 돌고 있는「기」가 적당한 균형을 갖도록 하는 방법이다. 양생술에서도 기의 조화를 중시한다.

여기서는 우선 양생을 정신과 신체의 두 방면으로 나누어 설명하자. 그것은 양심(養心), 양형(養形)이라 할 수 있다. 그 분류를 표로 보면 다음과 같다.

양형: 도인․ 안마․ 조식 ․행기(行氣)․ 방중(房中)․ 복이(福餌)․ 벽곡

양신: 내관존사(內觀存思)․ 내단(內丹)

이들에 대하여 여기서는 설명할 여유가 없으므로 간단히 말해 두겠다. 도인은 오늘날에 기공과 관계된 건강체조로서 매우 오래 전부터 행하여 왔다. 안마는 오늘날 행해지고 있는 것이고, 조식은 호흡법이다. 시대와 교파에 따라 각각 독자적 방법이 전하여 온다.

행기에 대하여는 폐기(閉氣)하여 몸안에 있는 기를 의식적으로 순환시키는 경우와 몸 밖의 기를 몸안에 순환시키는 경우가 있다. 후자는 일찍부터 발달하여 토고납신(吐故納新), 즉 몸안에 있는 묵은 기운을 토하고 새 기운을 받아들이는 것이 유명한 예다. 현대의 기공에도 의수단전법(意守丹田法)이라 하여 하단전에 마음을 집중하여 거기에 내기(內氣)가 나게 하고, 그것을 다시 상단전으로 돌리는 방법이 있다. 또한 이 행기는 존사내관을 함께 할 때가 있다. 「기」순환하는 것을 상상한다던가 신체 각 부위에 있는 신을 상상하는 것이다.

방중술은 남․여가 교합하는 경우, 정기를 설하지 않고 그것을 상단전에 돌림므로써 건강을 유지, 증진시키는 방법이다. 벽곡은 먹지 않고 초목이나 돌 혹은 그것을 자료로 한 약물을 먹는 것이다. 왜 곡물을 먹지 않는가 하면 장생을 구하자면 장내부를 청정하게 하여 찌꺼기가 머물지 않게 하여야 한다던가, 곡물을 먹으면 장생을 못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벽곡은 음식을 완전히 끊는 것이 아니므로 곡물 대신「포박자(抱朴子)」에는 출(出) 황정(黃精) ․ 우여량환(禹余糧丸)을 하루에 두 번씩 먹는다고 한다. 이처럼 초목․ 광물을 먹는 것은 건강법뿐만 아니라 신선이 되기 위한 수단으로써 탐구된 것으로 보인다.

 

󰊴내단의 법

약이라 해서, 병을 고친다는 관념은 오늘날 상식으로 되어 있지만 중국 고대에는 반드시 그렇지도 않았다. 무엇 보다 약은 독물(毒物)이라는 생각이었다. 다음에 음식도 치료에 한 방법이라는 관념이 오래전부터 있었다. 원래 중국의 전통의학은 예방의학 내지 건강의학을 기초로 하고 있으므로 음식물의 적당한 섭취는 병을 예방한다는 것은 당연한 생각이다. 약에 대하여 고대적 관념으로 신선이 되는 수단으로 생각하는 것도 주의하여야 한다.

4세기 후반 동진(東晋)의 장담(張湛)은 양생요집(養生要集)을 저술했다. 이 저서는 부분적으로 전해진다. 거기에 이런 말이 있다. 「사람 몸이 평화할 때에 오직 힘써 스스로 양생하라. 부질 없이 양을 먹지 마라. 양의 효력은 치우쳐 돕는 바가 있으므로 사람의 장기를 평탄하게 하지 않고 외환을 받기 쉽게 한다. 」약물의 부작용이 장기를 불안전하게 하여 다른 병을 부르므로 무병한 때 약을 먹지 말고 양생에 힘쓰라고 말하고 있다. 양생요집의 구성을 보면, 그의 양생에 대한 가치 서열을 잘 알 수 있다. 10권으로 되어 있는데 의학은 9권째에 놓여 있고, 양신적(養神的) 양생법이 제1․2에 배열되어 있는 점은 주의할 만하다. 그는 초약(草藥)을 제1, 목약(木藥)을 제2, 석약(石藥) 을 제3에 두고 있는 「복약론」에 인용하고 있다. 그가 석약 복용에 경계적인 것을 보여 준다. 이처럼 석약 복용의 경계심은 육조시대에 크게 유행하였다. 그런데도 석약의 복용은 끊이지 않고 당대에 와서는 금단의 복용에서 오는 중독으로 몇사람의 황제가 조사(早死)하기도 했다.

금단(金丹)은 밖에서 만드는 것이 아니고 몸안 단전(丹田) 가운데서 만들며, 광물이나 화력으로 만들지 않고 정(精)․ 신(神)․기(氣)라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으로써 만들고자 하는 방법이 내단(內丹)의 법이라 한다. 이것은 내관존사(內觀存思) 법을 새로이 검토한 데서 시작했다.

내단이라는 말은 남악사대선사입서원문(南嶽四大禪師入誓願文)에 「외단의 힘을 빌어 내단을 닦는다」라고 한 것이 첫 용례일 것이다. 그러나 그 이론적으로 설명할 것은 수대(隋代)의 도사 소원랑(蘇元朗)이다. 그는「신단(神丹)은 마음의 단련에 돌아간다.」하여 외단의방법을 내단으로 전환시켜 <성명쌍수(性命双修) 마음을 닦아 정(精)을 굳혀 기를 기른다.>의 방법에 중심을 두었다. 그것은 구체적으로 첫째는 하단전(下丹田)의 정기를 상승시켜 뇌의 상단전(上丹田)에 집중시키는 것으로써, 이것은 후세에 소주천(小周天)이라는 방법이고, 다음에는 행기태식(行氣胎息)이라 하여, 있는 듯 없는 듯한 미세한 호흡을 하여, 그로써 들어온 기를 몸안에 두루 순환시키는 방법으로 후세의 대주천에 상당한다. 이와 같은 내단법은 외단의 여러가지 해독을 낳는 데에 대한 반성으로 당말오대(唐末五代)이후 성하게 되어, 특히 북송(北宋)의 장백단(張伯端, 984~1082)의 오진편(悟眞篇)에 의하여 기초가 되고 오늘날에 이른다.

(이글은 일본 大法輪 제 54권 6호의 초역이다. 一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