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사의 현장] 아동복지시설 경주 대자원

'나누는 기쁨'반야심경으로 하루를 여는 아이들

2009-06-27     사기순

우리를 길러 주시고

키워주신 할아버지  

12월26일 새벽 

우리 모두 잠든 사이에 돌아가셨다

          중략 

할아버지께서 무덤에 들어가실 때

얼굴 한번 보지 못하고 

 

제발 극락세계로 

가셨으면 하는 소원하나 

 

영원한 내 가슴에 있는 꽃 하나 

할아버지 무덤에 꽂고 싶다  

12월 26일 새벽 

 

고(故) 조경규 거사(할아버지)가 평생동안 불공(佛供)하는 마음으로 아이들을 키워온 대자원(大慈圓)을 찾았다. 경주시 노서동 86번지. 부용당 한의원에서 기분 좋게 풍겨 나오는 한약내음을 맡으며 이 집을 들어서자 마자 여러 아이들이 합장하고 반겼다.

아이들의 밝은 웃음, 천진한 표정 속에서 기자는 다소 어리둥절해졌다.  잘못 찾아왔나? 아동복지시설이라기 보다는 어느 가정집 같은 데…

큰 엄마 작은엄마. 삼촌 .언니. 오빠. 동생. 조카가 어우러져 함께 사는 대가족의 모습. 기자는 마치 아이들이 많아 웃음꽃 피울 일도 많은 다복한 가정을 방문한 듯했다.

  

불심(佛心)으로 설립한 불교계 복지기관의 효시 

"저희 대자원은 조경규 거산님께서 지금부터 40여년 전에 설립하셨습니다. 부처님의 대자비로 살아가는 아이들의 꿈동산을 일구기 위해 돌아가시는 그날까지 온 정성을 다하셨지요."라고 사람좋게 생긴 이상대 거사(총무)가 말문을 열었다.

전쟁고아들을 하나 둘씩 먹여주고 재워주며 거 둬 들이다 보니 6~70명으로 불어나게 되어 문을 열게 된 것이 1951년도의 일이었다. 그 당시에 타종교가 운영하는 고아원은 외국 원조를 받아 물질적으로 풍요로웠건만 대자원은 종교가 불교라는 이유 때문에 외국원조를 전혀 받을 수 없었다.

또한 그때만 해도 불교계에서는 사회복지에 눈뜨지 못한 상태였다. 당장 살기 어려워 고아원마다 개종하는 일이 비일비재하였지만 조경규 거사는 불심으로 일관 오로지 약방 수입만으로 대자원 아이들을 길렀다.

"생전에 생불(生佛)이라 칭송 받은 조경규 거사님께서는 아이들 하나하나를 부처님 대하듯 하셨습니다. 부모와 인연이 없어 대자원에 살게 되었지만, 금강경을 독송하면 업장이 소멸되고 앞날이 밝아진다 하여 아이들에게 금강 경 독송을 열심히 시키셨지요" 라고 문사석 씨는 회고했다.

부처님의 자비속에 정법을 배워 올바르게 살아가라는 고 조경규 거사의 간곡한 말씀은 대자원 아이들의 뇌리에 사무쳐 이제껏 큰 힘을 발휘하고 있다. 아침6시에 기상하여 반야심경 독송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저녁 6시30분 이면 예불을 드리면서 하루도 빠짐없이 독송하는 금강경의 공덕으로 무럭무럭 잘 자라고 있는 것이다. 대자원에서 10여년을 근무한 이상란 선생의 말은 자못 신기롭기까지 하다.

" 우리집(대자원)문앞이 바로 찻길인데 여태까지 사고 한번 없이 아이들이 잘 지낼 수 있는 것이 다 부처님의 도우심 아니겠습니까. 3년 전의 일입니다. 한 아이가 이층에서 장난치다가 발을 헛디뎌서 떨어졌어요. 아이 떨어지는 소리를 듣고 이웃집에서 뛰어나올 정도였는데 상처하나 없이 멀쩡한 거에요. 마치 밑에서 누가 받아주기라도 한 것 같았습니다".

 

운문사 학인 스님들의 사랑 받고 자라는 행복한 아이들

"부처님이 항상 미애의 곁에 아니 미애 마음속에 있듯이 스님도 항상 미애곁에 있단다.…  밤에 이불 꼭 덮고 자렴. 감기 조심하고" 「혜련 스님이 미애에게」

"…. 스님, 저희들은 7일날 부산 천마재활원에 갔다 왔어요. 천마재활원의 친구들을 만나고 넓고 푸른 바다를 보고 와서 미애가 마음이 넓어진 느낌이에요. 스님 항상 건강하시고 공부도 열심히 하세요." 「미애가 혜련 스님께」 

대자원 아이들은 스님들을 생각하면 말할 수 없이 행복해진다. 우리 스님은 언제 오실까. 오늘은 편지를 먼저 띄우는 부지런한 아이들도 많다. 대자원 아이들이 1년 중 가장 기쁘고 즐거운 날은 운문사 자비학교에 가는 날 이다.

운문사 자비학교에 가면 스님들이 반겨 주시고 재미있는 놀이도 하고 부처님 이야기도 듣고 맛있는 간식도 먹기 때문이다. 운문사 경내에 들어서면서 "우리 스님 어디계세요?" 커다랗게 찾는 아이들의 신바람 나는 목소리는 꿈과 희망에 넘쳐있다.

 "운문사 스님들과 우리 아이들의 결연은 7년전부터 이뤄지기 시작했어요. 그때 운문사 승가대학 문화 부장이셨던 홍인 스님께서 한약방을 자주 드나드시다가 아이들을 만나게 됐지요".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잦아지면서 스님은 진정으로 아이들을 위한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했다. 아이들에게는 따뜻한 사랑이 필요했다. 아이들을 하나 하나 보살펴 줄 수 있는 길은 무엇인가. 혼자서는 힘이 벅차지만 여럿이는 어떤 어려운 일도 가능하기 마련이다. 도반들에게 이 뜻을 전하자 모두들 한마음이 됐다. 그렇게 맺은 결연 이었다.

승가대학을 졸업 할 때는 바로 밑의 후배 스님에게 아이들과 인연을 맺게 해 오늘날까지 이어온 것이다.  "우리 아이들 표정이 참으로 밝지요? 다 스님들 덕분입니다. 스님들이 때로는 물도 되셨다가 햇빛도 되셨다가… 아이들한테 지극정성이십니다."

아직도 시설아동들을 일반인들이 곱지 않은 눈으로 바라보고 있음을 속상해하는 이상란 선생은 스님들만 생각하면 처진 어깨가 절로 곧추세워진단다. 아이들의 '우리 스님한테 욕보이는 일 하지 말아야지' 하는 생각이 생활속에 드러날 때 그지없이 기쁘단다.

"재작년 봄에 스님들께서 우리 아이들을 위해 '나눔의 기쁨' 장학회(회장:경륜스님)를 만드셨어요. 우리 아이들이 대학을 갈 수도 있게 되었고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에 독립할 때 생활 자립금을 후원해주시고. 일자리를 마련해 주시겠다는 원력이 그저 고마울 따름입니다."

나눔의 기쁨 스스로 실천하는 대자원의 아이들

대자원의 아이들은 나누고 또 나누어도 줄어들지 않는 것이 사랑임을 안다. 아침 저녁 예불을 통해서 전신으로 울려 퍼지는 자비의 물결을 느끼며 살다 보니 상구 보리 하화 중생의 가르침을 몸으로 체득한 것이다. 또한 모든 것이 갖추어진 안락함.

그 나른함보다는 고통속에 맺어진 결실이 값진 것을 안다. 자신들과 똑 같은 대자원에서 자란 선배가 명절날에 찾아왔을 때의 감동, 생일상을 차려주며 격려하는 애틋한 정, 따뜻한 말 또한 잊을 수가 없다. "받을 줄만 아는 게 아니라 베풀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몸소 실천하고 있다.

교도소, 천마재활원, 꽃동네도 방문하고 화성양로원도 찾아갔다. 고전무용도 하고 연극도 하고 노래도 부르면서 외로운 이들과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었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이끼는 마음, 동체대비의 사상을 조금씩 조금씩 실천하며 건강하게 성장하는 대자원 아이들의 미래는 밝고 활기차다.

그런데 부처님의 품안 에서 꿈과 희망을 갖고 자라는 대자원 아이들에게 두 가지 큰 소원이 있다. 병원에 계시는 원장 아버지께서 속히 쾌차 하시는 것과 새로운 원사를 건립하는 것이다. 공부할 독서실도 있고 마음껏 뛰놀  놀이터와 운동장이 있는 부처님 동산을 꿈꾸고 있는 것이다.

사실 여학생 방과 남학생 방이 바로 붙어 있어서 옷도 제대로 입고 벗을 수 없는 불편함 속에서 살아야 한다. 어쩌다 여학생 방을 엿보다가 호되게 야단 맞은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여학생 원사와 남학생원사가 멀찌감치 떨어져 있으면 그런 꾸지람은 듣지 않을 텐데 하는 불평이 슬금 슬금 새어 나오는 것이다. 

처처가 불국토요 일마다 부처님일 아닌 것이 없다. 불사(佛事)중 에서도 가장 소중한 불사가 인간불사요 방생 중에도 가장 귀한 방생이 인간방생 아니던가. 경주 대자원 이라는 좋은 불도량에 지성다해 불공할 불자를 기다리고 있다. 60여명의 부처님 씨앗 들이 성불할 인연 짓는 불사에 참여 하는 것이야말로 진실로 부처 되는 지름길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