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

나의 인생을 결정한 불교서

2009-06-27     관리자

고등학교 1학년 때니까 꼭 36년 전의 일이다. 문학 쪽에 관심이 있어 어울려 다니던 우리에게 하루는 3학년 선배 한 분이 나타났다. 그때 그 선배가 어째서 하필이면 우리에게 접근하게 됐는지 그런 자세한 기억은 없다.


그러나 그가 우리를 용화사라는 절로 인도하기 위해 순전히 그 목적 하나만으로 접근했던 것도 확실히 기억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대로 아무런 주저도 없이 그의 권유를 받아들인 것도 확실하다.

그러니까 그때의 상황을 '무언가에 씌었었다' 라고 속된 말로 표현하지 않는다면 '어쩔 수 없는 인연' 이었다고밖에 달라 말할 수가 없는 노릇이다.

선배의 권유대로 우리는 일요일을 맞아 우암산 기슭에 터잡고 있는 용화사로 올라갔다. 그리고 우리 신참 세 명은 대학생과 고등학생들이 30여 명쯤 되는 모임의 말석에 끼게 되었다. 말하자면 청년불교회의 법회에 참석하게 된 것이다 넓적한 막대로 손바닥을 딱딱딱 치는 스님.

도저히 알아들을 수도 없는 소리로 웅얼웅얼 소리를 맞춰 하는 암송. 말은 알아 듣겠는데 그 뜻은 아리송하기만한 강의…….  도대체 내가 뭣하러 여기에 왔나 싶어 두 친구를 바라보니 그들 역시 난감한 표정이었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손바닥을 딱딱때린 것은 죽비였고 이상한 가락에 맞춰 암송한 것은 [반야심경] 이었다.

우리는 법회가 끝나고 선배로부터 반야심경이 인쇄된 종이 한 장씩을 받게 되었다. 불경인데 그 안에 불교의 모든 것이 다 들어있는 유명한 경전이니 외우라는 것이었다.

우리는 첫머리에 특별히 큰 글자로 적힌 것을 가리키며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 그러자 선배는 그냥 무조건 외우라고 했다. 뜻도 모르는데 외우면 무슨 소용이 있냐니까 선배는 웃으면서 글 모르는 할머니들도 다 외운다 고만 했다. 

셋이 머리를 맞대고 있는 실력 없는 실력을 다 짜내어 해석해 보려했으나 캄캄 절벽이었다.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 을 ‘마하반약파라밀다심경’ 으로 읽는 주제이니 해석이 될 리 없었다. 그래서 무슨 주술문 이겠거니 하고 착착 접어 주머니에 넣고 말았다.

그리고 1주일이 지나 다시 일요일이 되었는데 절에 같이 가던 친구가 찾아 왔다. 절에 가자는 것이었다. 별로 달갑잖은 반응을 보이자 두세 번만 더 나가보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우리의 법회 참석은 두세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나는 까닭을 지금 생각해도 알 수가 없었다.

어쨌든 그렇게 우리는 석 달인가 넉 달인가 법회에 참석했는데 그무렵 청년회의 모든 회원들에게 무료로 책 한 권씩이 배부되었다. 철필로 원지의 초를 긁어내 글씨를 만들고 그 위에 인쇄잉크를 묻힌 롤러를 굴려 밑에 깔린 종이에 글자가 박히게 해서 만든 등사 본 이었다.

책 제목은 우리가 뜻도 모르고 암송했던 ‘반야심경해설’ 이었다 그런데 그 책은 인쇄 안 된 곳이 많았고 또 오자도 많아 스님의 지시에 따라 써넣고 고치고 하며 강의를 들었다. 그 강의 첫 시간에 우리는 ‘마하’가 ‘한없이 크다’ 는 뜻이며, ‘반야’와 ‘밀다’는 각기 ‘피안’‘도달’ 의 뜻임을 알게 되었다.

‘심경’이 마음 닦는 법을 가르치는 심장같이 중요한 경전을 뜻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렇게 강의가 시작되어 한 권을 다 마쳤을 때 나는 그 형편없는 등사 본이 엄청난 것을 담고 있는 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스님의 강의 내용을 되새기면 몇 번이고 반복해 읽으면 차츰차츰 이해되는 부분이 늘어 날 것이 아닌가 싶어 소중하게 보관했다.

그런데 생각 되로 되지는 않아 그 책을 한번도 펼쳐보지 못한 채 고등학교를 졸업하게 되었다. 그래도 나는 ‘반야심경해설’ 을 서울까지 가지고 왔다 나는 또 불교재단에서 설립한 동국대학과 인연을 맺게 되어 교양필수인 ‘불교문화사’ 와 ‘불교학 개론’ 의 강의를 듣게 되었다. 불교에 대한 나의 관심은 더욱 짙어졌다.

그런데도 그 등사본인 ‘반야심경해설’ 은 다시 읽지 못한 채 대학을 졸업하게 됐으며 군대생활을 마치고 나서 그 책을 찾았으나 어디로 갔는지 찾을 길이 없게 되고 말았다. 그런 채로 세월이 흐르고 그리고 나는 용화사 법회 때마다 암송했던 반야심경까지도 외울 수 없게 되었다.

20년쯤 전 어느 날 청계천 헌책방을 기웃거리다가 윤주일 씨의 ‘반야심경강의’ 라는 4*6판짜리 얇은 책을 발견하게 되었다. 물론 두말 않고 사서 돌아오는 길에 버스 속에서 다 읽었다. 그 뒤에도 [반야심경]에 관한 책이 눈에 띄는 대로 사들여 지금 내 서가에는 역해자가 다른 네 권의 반야심경이 꽂혀 있게 되었다.

살 때마다 읽었으나 고등학교 때의 등사본으로 읽은 것까지 친다면 적어도 다섯 번은 읽은 셈이 된다. 이렇게 말하고 보니 마치 전식득지라도 겨냥하고 있다는 투가 되었는데, 그게 아니라 나도 모르게 반야심경을 보면 그 역해자가 누구든 간에 그냥 사게 되고, 산 책이니 다시 읽게 되었을 뿐이다.

그렇다고 인생의 목적지가 어딘지,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만 하는 것인지에 대해 알게 된 것도 아니다. 그러한 문제의 해답서라고 알려진 반야심경을 다섯 번이나 읽었는데도 나의 삶은 참으로 엉망진창인 것이다.

아마도 내 속에 부처님의 말씀을 냉큼 받아들이지 못하게 하는. 또한 그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도록 훼방하는 무슨 균 같은 것이 우글우글한 모양이다.그러나 그나마도 다행인 것은 그 독서 때문에 부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고 싶은 마음이 아주 없어지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그 증거는 불서를 취급하는 서점 앞을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 때문에 내 서가에 한 권. 두권… 불서가 늘어나고 있다. 그 책들을 지금 당장에 읽어버리지 못한다 할지라도 언젠가는 단정히 앉아서 차근차근 읽어나갈 수 있는 날이 있을 것이라고 나는 믿기로 했다.

무엄하게도 불력을 자력에 비유한다면. 지금의 나는 그 자장권의 제일 먼 가에서 바르르 떨고 있는 아주 미세한 쇳가루라는 생각을 갖게도 되는데 내가 그 자리를 얻게 된 것도 실은 반야심경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서두에 얘기했던 그 볼품없는 등사본의 ‘반야심경해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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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수: 39년 청주 생 61년 조선일보 신춘문예로 문단에 데뷔하였으며, 63년 동국대학교 국문과 을 졸업했다. 현대문학상 한국일보 문학상 한국문학작가상 등을 수상하였으며, 현재 한국문협이사, 국제PEN클럽 한국본부회원, 소설가협운영위원 한양여전 교수로 있다. 저서[성흔][환상의 성] [서러운 꽃] 등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