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면은 성공을 부른다

빛의 샘/일하는 기쁨

2007-05-23     관리자

  옛말에 큰 부자는 하늘이 내지만 작은 부자는 근면에서 얻을 수 있다고 했다. 사람은 태어나면서 부터 무엇을 하겠다는 천부적 운명론적인 면도 타고 난다고 하나 대부분은 자기가 할 만한 일을 찾아 무엇인가를 개척하지 않으면 안된다. 자기가 할 일을 하지 않고 살아 간다는 것은 사람으로서 사람 노릇을 하지 못하고 살아간다는 것과 같다.

  다만 사람의 탈만 쓰고 세상에 태어 났을 뿐 목적이 없는 허수아비와 같다고 할 것이다. 금수는 목적이 없고 미래도 없다. 그저 배불리 먹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에게는 그런 말이 적용되지 않는다. 먹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목적이 따로 있다. 어떻게 하면 문화를 빚고 진리를 창조 하느냐 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할 수 있을 망정 단순히 먹기 위해서 사는 것은 절대 아니다. 성현들의 말에 의하면 사람은 목숨만 겨우 연명할 수 있도록 하고 그 목적은 진리에 도달하게 하는 것이 근본이 되어야 된다고 하였다.

   목적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물질적인 풍요로움을 얻기 위한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정신적인 풍요로움이 더 종속 가치가 높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것은 성현들의 도(道)에 가까워지게 하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사람의 수명에는 상관하지 않고 일찍 죽든 늦게 죽든 관계할 것 없이 진리의 도에 이르기만 하면 그 죽음에 대한 문제에는 상관없다. 그러기에 공자님은 '아침에 도를 듣고 저녁에 죽더라도 여한이 없다'고 하였던 것이다.

   비록 젊어서 요절 하였지만 진리를 펴보인  예수도 33세에 골고다 언덕 십자가에서 사랑의 열매를 맺게하였고, 인도의 성자 제바보살도 33세에 외도들이 기승을 부릴 때 중도사상을 주장하고 열반에 드셨고, 공자의 제자 안회(顔回)도 30세에 공자 다음가는 성현(三十稱亞聖 )이라고 불렀으며,  안연(顔淵) 이도 32세에 요절하였지만 죽기까지도 진리 추구에 쉼 없이 정진하여 진리의 도에 접근한 선각자였다.

   이런 여러 인물들을 살펴볼 때 사람은 물론 축생들에게도 각기 걸어가는 길(道)이 따로 있게 마련이다. 학생은 학생의 길이 있고 농부는 농부의 길이 있듯이 젊은이는 부지런히 일하는 근면이 주된 의무의 길로서 지식인 대로 노동인은 노동인 대로 각자의 맡은 바 책임을 다하는 자가 사회에 봉사하는 길이며 애국하는 길이기 때문에 주어진 시간에 인색함이 없어야 하는 것이다. 황금같은 시간을 유용하게 활용하는 자만이 대성할 수 있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그러나 지금의 우리 현실은 어떤가? 일하지는 않고 적당히 기회를 얻어 만들어진 부(富 )로서 사치와 호화로운 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반면, 열심히 일하여 얻은 댓가로 개미같이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이 두 부류를 살펴보면 과연 어느 쪽이 인간답게 살고 있는 것일까? 후자가 인간답게 사는 길이라는 것을 알아도 구 길을 택하겠다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것을 정신적인 면보다, 물질적인 면을 추구하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우리는 잘 생각하여야 된다. 영광 뒤에는 잘못하면 좌절이 따르게 된다는 것을 깊이 뉘우치지 않으면 무서운 미래를 맞이하게 된다. 이런 미래를 생각해 볼 때, 있는 자는, 그것도 노력해서 얻은 것이 아니고 시대의 조류에 따라서 얻은 부였다면 더욱더 깊이 반성하고 근면해야 되며 가난한 자는 더욱 시간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열심히 일하여야 할 것이다. 그러면 일을 해서 얻은 부가 얼마나 보람있고 소중한가를 자신이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하루라도 일을 하지 않으면 먹지 말아야 된다' 는 중국의 백장선사의 뜻을 좌우명으로 삼고 이것을 정착 시킨다면 우리의 미래는 밝을 것이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