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에세이] 어디를 향할 걸음인가

2009-06-25     박상훈

인간으로 태어나 보람된 일거리를 찾는다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도리이다. 그러나 우리의 인생살이를 돌이켜 보면 보람된 일인지 아닌지 그런 것조차 생각할 겨를 없이 돌아가는 것이 우리네 삶이고 보면 ….
그래서 삶속의 보람된 일이 무엇일까? 생각해 보려는 그 마음이 바로 인생의 보람된 일이란 사실 앞에 옷깃을 여미고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지구 밖을 처음 벗어났던 우주인 <가가린>의 첫 음성. < 아! 지구는 장밋빛으로 아름답구나.> 하던 탄성이 우리에게 전해 졌을 때 우리는 상당한 관심을 기울였었다. 그 이전에 부처님께서 설하신 이 지구가 연화장세계라고 역설하신 그 음성은 어디다 두고서 하는 말인가. 아무튼 이 땅덩어리도 우리가 살아갈 만한 가치가 충분히 있는 장소인가보다. 이 대지 위에 태어났다는 사실이 인생의 첫째 보람이 아닐까 생각한다.
둘째는 무한한 가능성을 갖고 태어난 인간이라는 사실이 둘째의 보람일 것이다. 이 두 가지는 인과의 결과(結果)적인 사실이라면 또 다른 인과(因果)의 원인(原因)적인 사실은 무엇일까?
그것은 인간이 살아가는 궁극적 목적은 무엇이며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 하는 인간 존재의 문제가 될 것같다.
이러한 사실에 대하여 여러 가지 교훈서가 있겠지만 오늘은 <금강경>의 설법 중 無我行의 이야기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봄으로써 우리가 끝까지 걸어 나가야 할 이정표로서의 교훈을 되새겨 보자. 나를 나투우고 나의 존재를 의식하지 않는 그 모습 속에 진정 나와 당신의 만남이 있지 않을까?
<참 나> <진 아>의 <나>란 바로 자기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있을 때 자신과 주변은 정화되어지고 빛나지 않겠는가? 당신 속에 나의 참 모습이 빛나고 있을 때 나와 당신이 걸어가는 그 길이 바로 우리를 살찌우는 길이란 사실을 다시 한 번 생각해야 되지 않습니까?
역사니 종교니 예술이니 그 모든 속에서도 진정 빛남이 있었던 것은 바로 그러한 무아행의 선지자가 있었다는 사실이 아닌가? 자기를 내세우고 자기 과시에 급급할 때 허세, 허욕, 욕심이 뒤따르게 마련이다.
우리의 전통문화 속에서 이름다웠던 선지자의 마음을 엿보자.
저! 연꽃 푸른 부처님 세계를 표현하려 했던 고려청자는 있지만 그것은 만든 장인(匠人)의 이름을 우리는 알지 못한다. 석굴암의 부처님을 조각했던 그 석공의 이름은 ….
경주 남산에 산재해 있는 불상들의 자비로움은 넘쳐흐르는데 대체 저것을 만든 그들은 누구일까? 혹자는 그들이 비천한 사회계층의 일원으로 몰아세우려는 이들도 있지만 그것은 그들 이상세계의 표현 아니, 그들 마음의 표현이라면 어찌 장인이, 석공이, 비천하다는 말인가. 나를 나툼이 이러한 전통을 낳았고 또 낳을 것을 생각한다면 우리가 가야 하는 삶의 보람은 명확하다. 자장스님이 최후로 보여주고 간 아상, 중생상 수자사의 상을 여의고 영원속으로 돌아가며 우리에게 일러준 그 도리를 다시 의미하며 인간의 가치는 주장하는 아니라 말없이 행하는데 있다고.(불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