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관계와 생활

권두수상

2007-05-23     관리자

  최근 총체적 난국의 한 요인으로 지목되고 있는 ' 위법한 노동쟁의'에 효율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정부는 공권력을 때맞춰 투입 시키고 있다.

  이는 설령 적법한 쟁의라 하더라도 당해 기업뿐 아니라 연대협력 관계에 있는 기업에게 막대한 손실을 초래하므로 날로 심화되는 국제경쟁과 보호무역의 장벽 그리고 시장 개방압력 등 주변상황을 감안할 때 불가피한 조치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공권력의 개입만으로는 근로자의 손상되기 쉬인 여린 감정이나 사업주의로 저상된 기업의욕이 치유되지 않는다 .  여기에 노사문제에 대처하는 공권력의 한계, 곧 정치권력의 한계를 엿볼 수 있다.  노사간의 묵은 감정적 앙금의 제거나 근로자의 손상된 여린 감정의 치유 그리고 저상된 기업의욕의 고취 등은 종교영역의 문제다.

  그러나 " 모든 악(惡)을 짓지 말고 , 널리 선(善)을 받들어 행하여야 마음이 스스로 맑아져서 비로소 부처님의 가르침을 알게 된다(諸惡莫作 衆善奉行 自淨其心 始知佛法 --대개 마지막 구절은 是諸佛敎(이것이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이다)로 인용하고 있음)" 했으나, 기업이윤을 교묘히 은폐하거나 분배의 공정을 내세워 이기심을 감춘 채 다투고 있는 노사간에는 부처님의 말씀도 '쇠귀에 경 읽기' 가 될 지도 모른다.

  그리고 우리의 현실은 착하기 보다 이롭기를 바라는  물결이 강하여 도덕률이 붕괴된 상황이어서 법규의 준수를 거부한 채 투기. 부정. 비리 등을 마다않고 이익추구에 과감한 부류자가 속출하고 있다.

  이기심을 충족하기 위한 온갖 몸부림이 민주화라는 이름으로 분출되는 등 스스로를 돌이켜 부끄러워 할 줄도 모르는 상황하에서 굳이 사용자나 근로자더러 법규를 준수하라고 할 처지도 못 되었다.

 하물며 쟁의 중에 있는 기업의 사업주더러 도덕률의 근저가 되는 종교규범, 예컨대 부처님의 말씀을 빌어 인욕(忍辱)하라거나 임금 인상 부분을 보시(布施)하는 셈치라고 할 형편은 더더구나 아니었다 .

  그러나 근간에 부동산 투기 억제책과 공직자의 기강확립을 위한 문책인사, 그리고 노사간에 법규의 공평한 적용 등 그간 민주화 열기로 사회전반에 걸친 들뜬 분위기가 진정될 전망이다. 무역적자와 실업률의 증가 등  주변여건의 변화로 노동쟁의 등 각종 민주화 욕구의 분출 역시 자제 움직임이 역력하다. 오늘의 총체적 난국에 대한 위기감으로 위정자는 물론 국민도 과거를 돌이켜 반성의 시간을 갖게 된 듯하다.

  스스로 반성하는 시간은 ' 제악막작 중선봉행(諸惡莫作 衆善奉行)'과 맞잡이로 우리의 마음을 맑혀주는 바라서 이제금 부처님의 말씀에 귀기울임직하다고 사료되어 노사관계에 관한 부처님의 가르침과 그 의의를 살펴보고자 한다.

  [육방예경(六方禮經)]에 이르시길 " 주인은 종(從)을 돌봄에 있어 남녀 구분없이 다섯가지 행할 바가 있으니 1.음식과 옷을 주고 2. 병이 나면 의사를 불러 치료를 해주며 3.함부로 때리지 않아야 하고 4. 사유물(私有物)을 빼앗지 않으며 5. 물건을 평등히 나누어 주는 것 등이다" 하셨고, 또한 [선생자경(善生子經)]에서는 1. 힘에 알맞게 일을 시키고 2. 제 때에 옷과 음식을 주며 3. 때때로 식사를 함께 하고 4. 심신을 청정히 하고 행위를 삼가토록 교육시키며 5. 병이 나면 쉬게 하도록 일깨우고 있다.

  물론 석가모니부처님 당시엔 오늘날과 같은 자본주의 생산 방식하의 노사관계는 없었다. 그러나 부처님의 가르침은 자본주의 생성 당시의 자본전제적 노사관계가 온정적. 완화적. 민주적 노사관계로 발전하는 모든 과정에 걸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단적으로 말해서 앞서 제시된 부처님의 가르침은 오늘날 선진산업국의 노동법을 계수한 우리나라의 법령에 수용되어 있다. 예켄대 우리나라의 현행 근로기준법에 의하면 1. 근로자에 대한 폭행금지규정(제7조)은 [육방예경]의 세번째 가르침의 법적 반영이라 할 수 있고 2.근로시간의 제한과 적절한 휴식을 주도록 규정한 '근로시간과 휴식' 의 첫째 가르침과 그리고 3. 보건(제6장)과 재해보상(제8장)에 관한 규정은 [육방예경]의 둘째, [선생자경]의 다섯째 가르침과 연계시킴직하다 4. 부분적이긴 하나 기능습득(제7장)과 각종 직무교육은[선생자경]의 넷째 항목과 5. 임금체불을 규제한 조항(제 36조 등)은 첫째 가르침과 다르지 않고 6. 균등처우규정(제5조)과 남녀고용 평등법의 정신은 [육방예경]의 다섯째 가르침 그대로라 하겠다.

  즉 봉건적 주종관계하에서 주인이 지켜야 할 종교규범이 오늘날 민주적 노사관계하의 사용자가 지켜야 할 법률상 의무와 다르지 않다 함이다.

  달리 말하면 사용자가 근로기준법 등 노동관계법을 지키면 이는 곧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어 지녀 받들어 행함(信守奉行)이 되는 셈이다.

  따라서 이들 법령의 준수는 곧 성불(成佛)하기 위한 수행을 성실히함과 같다 할 것이다. 나아가 미꾸라지나 자라등 물고기류를 살려보내는 방생(放生)보다는 이 지구상에 전쟁을 예방하여 무고한 인명이 살상되는 것을 막아 주거나 창의적 기업활동을 통하여 빈곤과 좌절의 고통으로 서서히 시들어 가는 많은 실업자들에게 취업의 문을 넓혀 줌이 더욱 바람직한 방생이고 사업주들이야 말로 참다운 방생의 선업(善業)을 닦는 현대적 의미의 보살(菩薩)이라 할 것이다.

  복전(福田)으로 받들어 존중됨이 마땅하거늘 이들을 존중하기는 커녕 쟁의과정에서 감금 . 폭행함은 이 무슨 파렴치한 폭거인가?  부처 이루기가 세수하다가 코만지기처럼 쉬운 일이라 하나 코를 만지면서 코만지는 줄 모르듯이 사업주들이 세간의 볍령을 준수함이 곧 부처 이루는 수행인줄 모르고 탈법적 행동을 통해 [선생자경]이나 [육방예경]등 부처님의 가르침을 어기면서 목불(木佛)아에 엎드려 부처되고자 하니 이 일을 어찌 할꼬 !

  기업경영이 곧 방생의 선업을 실천하는 보살행이거늘 어찌 근로자에게 정당한 몫의 임금을 주지 않는 도업(盜業)을 지으려는지?  바로 곁에 동업중생이자 빈궁전(貧窮田)곧 복전(福田)인 근로자를 두고 따로이 깊은 산골을 더듬어 '성자의 짐을 나르는 나귀' 같은 화상(和尙)만을 복전으로 받드니 이를 어찌할꼬!

어물전 망신시키는 꼴뚜기 같은 몇몇 기업인이 착한 방생업을 제껴두고  서민의 내집마련 꿈을 앗아가는 살생(殺生)과 같은 부동산 투기를 했다하니 ........

  이제 지난 사연에 대한 탄식을 거두고 산업평화를 이룩하자면 사업주는 법령을 준수함이 곧 부처임 법을 수행하여 성불하는 길임을 깊이 깨달아 근로자에 앞서 모범을 보여야 한다.

  나아가 근로 대중의 여린 삶을 풍요롭게 하는 기업활동이 곧 방생의 선업을 닦는 보살도이니 성심성의껏 올바른 기업활동을 전개하면 이 또한 부처되는 지름길임을 믿어 의심치 말지어다.

    생활불교가 예서 더한 진전 있기를 바라며 사부대중은 오늘날과 같은 어려운 여건하에서도 방생의 선업을 꾸준히 닦고 있는 사업주들을 인욕보살로 알고 이들 사업주를 복전으로 삼아 받들어 공경함으로써 이들의 기업의욕을 고취시켜줌은 물론 스스로의 깨달음 또한 증장되길 기원한다.

   근로자 역시 부처님께서 [선생자경]과 [육방예경]을 통해 일깨워 주신 가르침을 근로현장에서 생활화 하여 이를 부처 이루는 방편으로 삼아 주길 기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