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수기] 나의 유아독존唯我獨尊 시말始末(下)

2009-06-23     배봉한

8] 나무 유아독존 법문이여

그 다음 3번째 목요일이 다가왔다. 기다리던 날이다. 의기양양 시간을 맞추어 법회에 나갔다. 이날도 큰 스님 법문이 있었다. 나는 염불이고 합창이고 관심이 없었다. 법문에만 신경을 집중시켰다. 그때는 부처님 오신 날이 가까운 날이어서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는 법문이었다. 부처님은 진리이시며 부처님이 세간에 나신 것은 중생들을 깨닫게 하기 위함이고, 깨닫는다는 것은 진리 본성을 깨닫는 것이며, 진리본성은 바로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는 것이었다. 이것이 부처님이 오신 뜻이며 성불을 증거하는 말씀이고 본성진리를 활용하면 일체에 걸림이 없는 위대한 일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하는 말씀이었다. 나는 이제까지도 유아독존이라는 말을 알고 있었다. 그 뜻인즉 안하무인격인 인간상을 뜻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법문을 듣고 보니 그런 것이 아니었다. 지극히 존엄하고 지극히 낮고, 지극히 평등하고, 지극히 자유스러운 자기 완성의 길을 말해주는 것이었다. 나는 법문을 듣는 순간 「아! 바로 이거다.」하는 생각이 번갯불처럼 스쳤다. 내가 50평생을 지녀 오고 나를 지탱해 온 유아독존병이 순간에 사그러지고 무너졌다. 나는 나고, 이제까지의 유아독존은 망상이었다. 그런데 지금도 여전히 나는 나인데 천상천하 유아독존 법문으로 내가 바뀌었다. 나는 내 신심의 근본을 이것으로 삼기로 결심했다.

나의 감동은 용기로 바뀌었으며 자신으로 바뀌었다. 새로운 희망과 말할 수 없는 힘이 솟아 나는 것 같았다. 나는 용기를 내어 자신(慈信)부회장님께 간청하여 큰 스님에게서 책과 격려를 받았는데 나는 고개를 숙이고 스님께 절하면서 속으로 삼보님께 귀의할 것을 굳게굳게 맹세하고 있었다.

다음 주 법회 날은 회장님 시간이었다. 불교를 믿으면 표정이 밝아지고 자신감에 넘치고 매사에 적극적이며 어려움에 막힘없이 전진한다는 내용이었다. 그 뜻을 알만 하였다. 먼저 번 법회에서 인간본성은 불성이라는 것을 배웠기 때문이다. 불성을 믿고 사는 사람에게 어찌 불안, 좌절이 있을 것인가 하는 데서 회장님 말씀에 힘 안들이고 공감을 하게 되었다. 그 다음 법회 때는 송석구박사님 법문이었는데 불법을 믿는 자부심, 긍지에 대한 말씀이었다.

앞서도 말한 바이지만 나는 불법 가까이 있으면서도 불법을 외면하고 살아왔다. 밝은 햇빛을 등지고 어두운 길만 찾아다니면서 헐떡여 왔던 것이다. 나는 법문을 들으면서 이제까지의 50평생이 마치 어둠속을 손을 휘저으면서 살아온 느낌이 들었다. 나는 내 속의 모두를 드러내어 부처님 앞에 참회하였다. 가슴에 무거운 짐을 부린 것 같기도 하고 속이 시원하기도 했다. 가슴 속이 홀가분해지며 눈물이 흘렀다. 내가 좀 더 일찍 삼보에 귀의하였던들 오늘과 같은 참회의 눈물은 적게 흘렸을 것이다. 나는 스스로 다짐했다. 지금도 늦지 않았다. 남보다 더 공부하고 힘써 공부하자. 부처님의 유아독존 법문을 생활의 근본으로 삼고 밝고 꿋꿋하게 살아 가리라, 다짐하였다. 삼보전에 거듭 합장하고 서원하면서 「나중에 난 뿔이 우뚝하다」는 속담을 실증하고 말것이라 결심했다.

9] 내가 바뀌고부터

삼보께 귀의한 지 벌써 1년이 되었다. 그동안 정기법회를 한번도 빠진 적이 없다. 남들이 보기에는 「초발심 시절은 다 저런 것이다」고 할지 모르지만 나의 믿음은 영원히 변함없을 것을 여기에 다시 다짐하고 공언한다. 「법회에 나가자. 법회에 나가는 것이 최상의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다.」라는 확신과 백 가지 다른 일들을 물리칠 용기가 필요하다. 이 지혜의 선택과 용단이 없으면 조금만 틈이 있어도 구실이 생겨 법회에 빠지게 되는 것을 나는 경계한다. 법회에 나가는 것이 나의 인생수업이고 나의 불도수업이고 나의 기도며 나의 불사참여며 나의 복덕사업이기도 한 것을 굳게 믿는다. 지난 동안이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불법을 만나서 많은 것을 배웠고 정말 나는 많이도 바뀌었다. 언제나 삼보께 감사하는 이 마음이 나를 완전히 바꿔 놓지 않았는가 생각한다. 나를 알고 지내는 사람들은 모두 다 나를 너무나 많이 바뀌었다고들 한다. 내가 바뀐 것을 가장 좋아하는 사람은 바로 아내이다.

내가 지난 해 3월 처음으로 법회에 발을 디딜 때만 해도 아내는 나의 믿음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나의 성격이 너무나 비종교적이라는 것을 아내는 알만큼 알고 있으니 그러는 것도 당연했다. 그러나 내가 매일 독경하고 예불하고 참선하고 그리고 생활태도가 바뀌는 것을 보고 놀라는 눈치였다. 그리고 이 망나니 중생에게 횃불을 밝혀 주신 부처님과 법회와 큰스님께 감사하고 또 나에게 감사한다면서 눈물을 흘린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둘째로 기뻐하는 사람은 회사 종업원들이다. 「그렇게도 불신하고, 욕 잘하고 고함치던 폭군 사장, 어쩌면 저렇게도 바뀌는가, 정말 기이한 일이다.」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나의 일방통행적 성향이 사업에 있어서나 생활에 있어서나 폭군적이었다. 더욱이 병이 낫지 않고 온몸이 불안하니 포악성은 더욱 더해 갔던 것이다. 종업원들은 나의 불호령 밑에서 고생을 많이 했다. 그러던 내가 법회에 나오면서부터 우선 표정부터 바뀌었으니 좋아 할 수 밖에 없지 않는가, 이제까지의 찡그리던 상은 어디 가고 싱글벙글이다. 어둡던 이맛살은 환하고 욕설만 나오던 입에서는 농담과 웃음이 튀어나오니 사람이 정말 바뀐 것을 우리 종업원들은 제일 먼저 알아 주었다. 종전의 몇 배를 노력하고 부지런히 일해 주었다. 성실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전 사원이 화합단결하여 뛴 결과 지난해에 매출 외형액이 82년도의 2배로 신장하였다. 관할 세무서에서 이 사실을 확인하고는 놀라와 했다. 누구나 다 아는 그 극심했던 불경기 속에서 두 배의 신장력을 올렸으니…

10] 정말 급한 일에서

금년 신정에 큰 스님께 세배 드리고 다음 날부터 4일간 설악산과 낙산사 등 동해지역 순례길에 나섰다. 두 딸도 데리고 떠났다. 아침 9시에 서울 동대문역, 옛날 덕수상고 자리를 출발한 설악산행 정기 관광버스를 탔다. 어린 시절 소풍 가는 때처럼 아침부터 서둘러 준비를 하다보니 정작 해야 할 준비를 잊었다. 이것은 결코 다른 사람이 대신 할 수 없는 중대사인 바로 용변이다. 버스가 출발하자마자 사태를 호소했다. 「아, 이거 야단 났구나. 참기 어려운데.」 나는 급한 생각이 들었다. 안내양에게 다음 정차하는 곳이 어디냐고 물었더니 강원도 홍천이라고 한다. 「이것참, 보통 낭패가 아닌걸…」생각하면서 언제나 하는 버릇이지만 호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염주에 손이 갔다. 머리도 식히고 독경도 하고 버스 여행의 무사운행을 빌겸 나는 마하반야바라밀을 열심히 염송했다. 그러나 좀 있으니 설사 마저 곁들인 생리현상은 도저히 참기 어려웠다. 버스가 팔당 입구에 접어들기에 안내양에게 잠깐 쉬어갈 수 없느냐고 간청해 보았다. 대답은 얄미우리만치 퉁명스러웠다. 한사람의 용무 때문에 차를 멈출 수는 없다는 말이다. 2시간이면 홍천에 도착하니 참으라 한다. 사태는 별 수 없이 버스안에서 창피한 꼴을 보게 되었다. 견디다 못해 운전 기사에게 사정해 보기로 하였다. 그 사람은 좀 다르겠지 하고 기대를 해 보았다. 그러나 운전기사 양반은 안내양보다 한 술 더 했다.

「버스 타기 전에 준비를 할 것이지. 이 차는 자가용이 아니요.」하면서 설교까지 덧붙인다. 정말 앞이 캄캄하고 온 몸은 굳어지는 것 같았다. 이때는 벌써 바라밀송이고 뭐고 최후의 경지에 도달했다. 그러는 사이 버스는 팔당댐 산모퉁이를 돌고 있었다. 그런데 별안간 차가 멈추는 것이다. 웬일일까? 아마도 운전기사 양반이 나의 몰골이 불쌍해서 멈춰주는 것이구나 생각하고 다급히 차에서 내려 급한 용무를 마쳤다. 나는 차에 오르면서 안내양에게 고개 숙여 고맙다고 인사를 하니 안내양이 웃으면서 『그게 아니에요.』라고 말한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분명 나를 위해서 차를 멈춰 주었는데 의아하게 생각하면서 나는 차 앞에 눈길을 돌렸다. 거기에서는 우리 버스의 운전기사와 순찰 싸이카를 탄 교통경찰관이 서로 삿대질을 하면서 입씨름을 하고 있지 않는가. 전후 사정을 알아 보니 우리가 탄 버스가 커브길에서 중앙선을 침범했으니 교통경찰은 딱지를 뗀다는 것이고 운전기사는 그런 일 없다하며 서로 맞서고 있는 참이었다. 그래서 고함소리에 삿대질을 해가며 다투더니, 이 아귀다툼도 내가 차에 오르자 조용히 끝났다. 물론 운전기사는 딱지를 떼지 않아도 되었고 교통경찰관과 악수를 나누고 헤어졌다. 그 덕분에 나만 위기일발 생리적 위험에서 벗어나게 된 것이다. 경찰관도 운전기사의 고집도 공으로 돌아가고 나의 중대문제만 깨끗이 해결하고 난 이사건…생각할 수록 신기하다.

이런 급박한 사태는 고통이 문제가 아니고 돈이 문제가 아닌 정말 절박한 문제다. 나는 이 일이 부처님의 자비하신 은덕이었다는 것을 확신한다. 크고 작은 수많은 일을 원만히 해결해 온 과거에 비추어 이번 일도 분명 부처님의 자비하신 가호력이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딸들은 『아버지는 정말 신통력을 가지셨어요.』하면서 모녀간에 한바탕 웃어 댔다.

11] 맺는 말

부처님 광명이 온 누리를 감싸고 나의 모든 일을 진리로써 이끌어 주시는 기묘한 이 현실을 무엇으로 감사하고 칭송할 수 있으랴. 나는 고집스럽던 유아독존으로 해서 이제 정말 천상천하 유아독존 법문을 만나게 되었으니 온 천지가 감사하고 온 이웃에 감사 할 뿐이다. 반야의 횃불을 밝혀 우리를 둘러싼 온갖 어둠을 밝혀 부처님의 대자비법문으로 인생과 역사를 가꾸어 가자는 것이 오늘의 나의 염원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