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지 못하는 마음

선의 고전 -마조어록(馬祖語錄)

2009-06-23     관리자

󰊸대매산의 매실

대매산(大梅山) 법상(法常)선사가 처음 마조선사를 찾아 뵈었을 때 물었다.

『어떠한 것이 불입니까?』

마조선사가 대답했다.

『즉심시불(卽心是佛)이다.』

법상은 이 말 아래 곧 크게 깨쳤다. 뒷날 대매산에 가서 지냈다. 마조선사는 법상이 대매산에 머문다는 말을 듣고, 곧 사람을 시켜 찾아가 묻게 하였다.

『화상은 마조선사를 뵙고 대체 무엇을 알아 얻었기에 이 산에 머물고 계십니까?』

법상이 말했다.

『마조선사에게서 즉심시불이라는 말을 듣고서 나는 여기에 지내고 있소』

승이 말했다

『마조선사는 근일 불법이 좀 다릅니다.』

법상이 말했다.

『어떻게 달라졌는가요?』

승이 말했다.

『근일에는 비심비불(非心非佛)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법상이 말했다.

『저 노인은 언제 가서나 사람들을 어지럽히는 것이 끝날 것인가. 당신은 설사 비심비불이라도 나는 다만 즉심즉불이요.』

승이 돌아가서 조사에게 이대로 마뢰었다. 마조가 말했다.

『매화가 제대로 익었구나.』

 

󰊹분주무업의 오도

분주우업선사가 마조스님께 참례했다. 마조스님은 선사의 풍채가 당당하고 목소리가 종이 울리는 것과 같은 것을 보고 말했다.

『불당은 당당한데 그 안에 부처가 없구나.』

무업선사는 엎드려 예배하고 물었다.

『저는 삼승(三乘)교학은 대강 그 뜻을 알고 있사오나 선문에서 항상 즉심시불이라고 한다고 듣사온데 그것을 아직 모르겠습니다.』

스님이 말했다.

『다만 알지 못하는 마음이 바로 그것이니 그 밖에 딴 것은 없다.』

무업이 또 물었다.

『어떤 것이 달마조사께서 서쪽에서 비밀이 전해온 심인(心印)입니까?』

마조스님이 대답했다.

『대덕, 지금은 좀 바쁘다. 갔다가 다른 날에 다시 오너라.』

무업스님이 일어서 나가자 마조스님이 「대덕」하고 불렀다. 무업스님이 고개를 돌리자 마조가 말했다.

『이것이 무엇인고?』

「이」에서 무업선사는 곧 깨치고 예배하였다. 이에 마조스님이 말했다.

『이 둔한 놈, 예배해서 무엇하자는 것이냐!』

 

10 석두의 길

등은봉(鄧隱峰)선사가 마조스님에게 하직인사를 드리니 마조스님이 말했다.

『어디로 가는가?』

『석두스님에게 가고자 합니다.』

마조스님이 말했다.

『석두로 거는 길은 미끄러우니라.』

은봉스님이 말했다.

『간목(竿木)이 몸에 있사오니 가서 당하는대로 연기를 해 보겠습니다.』

그리고서 곧 떠났다. 석두스님에게 이르자마자 선상(禪床)을 한 바퀴 돌고 석장(錫杖)을 한 번 구르고 물었다.

『이것이 무슨 종지입니까?』

석두스님이 말했다.

『창천(蒼天), 창천』

은봉스님은 아무 말도 못했다. 돌아와서 이 사실을 마조스님에게 보고 하니 스님이 말했다.

『내 너에게 석두의 길은 미끄럽다고 하지 않더냐?』

 

-주-

*법상스님(752-839)은 속성이 정(鄭)씨이고 회양(褢陽, 호북성(湖北省)사람이다. 어려서 출가하여 형주( 州)옥천사에서 공부하고 마조스님을 만나 즉심시불 법문으로 깨친 것은 본문에 보이는 바와 같다. 정원(貞元) 12년 (796)에 대매산에 들어가 40년을 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러다가 염관제안(塩官齊安)선사의 회하에 있던 스님을 만나 제안선사를 보게 되었다. 그리고 납자를 제접하였는데 회중이 6·7백명이나 되었다고 한다. 신라 가지(迦智)선사는 법상스님의 법을 이었다.

 

*즉심시불(卽心是佛): 즉심즉불,(卽心卽佛) 시심시불이라고도 한다. 문자 그대로 마음이 부처님이라는 말이다. 이 말은 마조선(馬祖禪)의 대명사처럼 되었지만 종래 널리 쓰여 왔고 관무량수경(觀無量壽經)에도 다음과 같은 말씀이 보인다. 「그대들이 마음에 부처를 생각할 때, 이 마음이 곧 32상 80수형호이니 이 마음이 부처이니라」

 

*비심비불(非心非佛): 즉심즉불이 관념화하여 경직화되었을 때 선의 생명력은 잃는다. 이에 대한 조치로서 비심비불이 등장한다. 앞서도 마조스님 말씀에 보이는 것처럼 「그대들 각각 자기 마음에 도달하여야 한다. 내 말을 기억하지 마라.」한 또 다른 표현이다. 대도는 개념에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분주무업(759-820): 성은 두(杜)씨인데 신장은 6척을 넘고 목소리는 대종처럼 울렸다고 한다. 어려서 출가하여 여러 경전과 율을 배웠다. 마조스님께 참예하여 깨친 것은 위에 보는 바와 같다. 여러 명산 성지를 두루 찾고 명리를 피하여 청량산에 머물며 8년 동안 대장경을 읽고 서하(西河, 西山省)에 이르렀다. 주목(州牧)이 청하여 개원사(開元寺)에 머물게 되었는데, 그때 이후 20년을 그 곳에서 교화하였다. 헌종(憲宗)황제가 두 번이나 초청하여도 가지 않았고 목종(穆宗)이 즉위하던 해에도 초청을 받자 「가기는 곧 가지만 아마도 가는 길이 다르리라.」하더니 목욕하고 밤중에 입적했다.

 

*간목수신(竿木隨身): 이것은 인형놀이 극단이 무대에서 공연하는 것에 비유한 것이다. 간목은 대나 나무로 된 인형의 틀이고, 수신 즉 몸에 배여 능숙하다는 뜻인 것 같다.

 

*등은봉: 속성이 등씨다. 생몰연대는 분명하지 않으나 서기 806년에 즉위한 당 헌종(憲宗)을 전후한 때의 스님이다. 그것은 오원제(吳元濟)의 반란 때에 마침 오대산으로 가는 도중 양군간의 싸움을 만났었다. 그 때 서로의 살육을 막고자 양군 사이를 날아 다녀 양군의 전의를 잃게 하여 싸움을 중지시켰다는 것으로 알 수 있다. 오원제의 반란은 815년에 시작되어 817년에 끝났던 것이다. 오대산 금강굴 앞에서 거꾸로 서서 입적한 사실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선상을 돌고: 종사를 찾아가 선상을 돌고 석장을 떨치고 섰다는 것은 수행인으로서 무뢰한 태도이기는 하지만 당시의 선자들은 상대방을 달아 보는 수단으로 자주 썼던 것 같다. 영가 현각선사도 6조 혜능을 처음 찾았을 때 역시 그와 같이 했었다. 이에 육조 말하기를 『사문이란 삼천의 위의와 8만 세행을 갖추어야 하는데 그대는 어디서 와서 아만을 부리는가…」라고 한 대문이 법보단경에 보인다. 마곡(麻谷)선사도 회충(慧忠)국사를 찾아 역시 선상을 돌고 석장을 떨치고 섰다. 그때 회충스님은 말하기를 『그대가 이미 그럴진데 구태여 나를 찾을 길이 없지 않겠는가.』마곡은 또 석장을 떨쳤다. 국사는 꾸짖어 말하기를 『이 여우새끼(野狐精) 나가거라 』한 것이 전등록에 보인다.

 

*창천, 창전: 처량하다. 불쌍하다 하고 꾸짖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