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영험] 죽은 남편 살려낸 염불 -불영사와 환생전-

신앙영험 실화

2009-06-22     제운 스님

    1. 신묘한 도량 佛影寺

  동해안 맑은 물이 천고를 이어가며 파도치는 울진기슭. 지금은 경상북도라 하지만 그 푸른 물 새하얀 바다에는 예나 지금도 영원히 출렁댄다. 여기 울진으로 쏟는 물을 거슬러 서쪽으로 약 20킬로를 더듬어 올라가면 울울창창한 숲과 굽이쳐 흐르는 물과 산이 힘있게 감아 돌아간 웅장한 중심에 큰절이 벌어져 있으니 이곳이 불영사다. 지리가들은 이곳을 산태극 수태극이라 하여 명당으로 이르는 곳이지만 사실 불영사에는 명당에 어울리는 신비한 영험의 역사를 이어오고 있다. 지금도 불영사에 공부인이 끊이지 않고 그 깊은 산중에 기도의 염불소리가 끊일 날이 없는 것은 역시 이절 창건이래의 현상이리라. 지금 이 도량 대웅전 곁에는 환생전(還生殿) 옛터의 팻말이 있다. 그리고 영원히 이 절의 신성과 두터운 부처님의 가호를 말해주듯 3층의 무영탑이 천년의 역사를 말해 준다. 여기서는 우선 환생전에 얽힌 유래 한토막만 소개하는데 그친다.

    2. 울진현령이 죽다.

  때는 고려시대 말이었다. 울진현령(군수)이 갑자기 전염병으로 죽었다. 현령은 부임한 지 겨우 석 달이 되었는데 졸지에 죽은 것이다. 현령의 부인은 남편의 죽음을 보자 기절하고 말았다. 주의사람들은 모두가 쌍초상이 났다고 떠들어댔다. 현령부인으로서는 정말 원통한 남편의 죽음이었다. 정말 기절할 수밖에 없는 사연이 있었던 것이다.
  현령의 이름은 백극제(白克齊) 원래 가난한 선비로서 재산이라곤 송곳 꽃을 땅도 없었고 오직 글을 읽어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하는 것만이 천직으로 알고 글만 읽고 있었다. 그러니 먹을 것이 있을 리 없다. 아내의 삯바느질과 품삯으로 호구를 이어가는 실정이었다. 그러한 뼈를 깍는 고생 끝에 드디어 과거에 급제하였고 그 첫 출사로 울진사또가 된 것이다. 그렇게 해서 얻는 사또가 석달만에 죽은 것이다. 이 어찌 원통함을 말할 수 있을 것인가 사또부인은 사뭇 한참동안 죽었다가 의원의 극진한 간호로 숨이 돌아왔다. 그리고 나서 한참 동안을 통곡을 통곡하더니 무슨 생각이 들었는 듯 관속들을 불렀다.
『이 근처에 영험 있는 절이 없는가?』
『예, 이 고을 서쪽에 불영사라는 절이 있사온데 그 절에 모신 부처님이 영험하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이 말을 들은 부인은 즉시 상여를 준비하게 하고 사또의 영구를 불영사로 모시라고 하였다. 이 말을 들은 관속들은 놀라 말하기를
『절에는 기도를 하러 가거나 죽은 사람의 재를 올리러 가는 곳이지 영구를 모시고 가는 곳이 아닙니다. 마님 진정 하십시오』하였다. 그러나 부인은 막무가내였다.
『하라는 대로 하라. 무슨 말이 많으냐?』하며 호통 치는 바람에 하는 수없이 사또의 상여를 메고 불영사로 향하였다. 모두들 사또부인이정신이 돌았다고 생각하였다. 서로 수근대면서 죽은 송장을 어쩌자고 절로 메고 간단 말인가 하며 빈정대고 슬렁댔다. 그렇지만 워낙 엄한 사또부인의 본부인지라 드디어 상여는 불영사 문 앞에 다달랐다.
  절에서는 야단이 났다. 『상여를 절로 메고 들어오다니!』하며 스님들이 완강히 막는다. 그러나 사또부인의 호통 앞에는 어쩔 수 없이 절문을 여는 수밖에 없었다. 상여는 절 문 앞에 놓아두고 시체가 담긴 관만이 절 앞 법당마당 탑 앞에 내려놓았다.

    3. 10세 원결이 풀리다

  사또부인에게는 맺힌 한을 풀 수 없었던 것이다. 그처럼 고행해서 어떻게 얻은 오늘이 사또인가. 죽었다고 포기할 수는 도저히 없었던 것이다. 부처님 앞에 나아가 엎드려 절하면서 울면서 염불하고 울면서 축원하였다.
『부처님이시여, 저의 가장이 억울하게 죽었습니다. 결코 천명에 못 죽었습니다. 유행병 귀신에 걸려 횡사하였습니다. 부처님 대자대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저의 가장을 다시 살려 주옵소서.』 지극한 정성이라기보다 너무나 그 기도는 애절하였다. 그의 정성담긴 관세음보살 염불소리는 법당에 가득했고 온 도량에 퍼져갔다. 스님들도 처음에는 말리여 하다가 그의 정성과 그의 측은한 사정에 끌려 모두들 함께 나와 목탁을 치며 염불을 계속하였다. 그러기를 밤낮으로 사흘이 지나서 사또부인은 염불중에 기이한 현상을 보았다. 그것은 아마도 염불 중 삼매 속의 일인지도 모른다. 부인 앞에는 붉은 머리를 풀어헤친 한 형상이 나타났다. 부인은 곧 귀신인걸 알았다. 부인에게 말하기를 『나는 과거세부터 당신 남편의 원수였다. 세세생생 따라 다니며 너의 남편이 잘되는 꼴만 보면 기어코 잡아갔다. 그런데 이번에는 사정이 달랐다. 부처님의 자비하신 광명이 비쳤으므로 나는 과거세에 맺은 원한이 다 풀였다. 나도 마음 놓고 이제 떠난다. 다시는 따라다니지 않을 것이다. 안심하고 잘들 살아라.』
  이 말을 남기고 붉은 귀신은 바람처럼 달아나고 말았다. 그것은 순간의 일이었다. 부인이 정신이 들어보니 부처님 얼굴에 서는 사뭇 따뜻한 광명이 그를 지켜보고 있었다. 부인은 불현듯 법당 밖으로 뛰어나가 급히 서둘러 관 뚜껑을 열러 보았다. 그의 남편이 막 정신이 들어 말똥말똥 눈을 뜨고 있는 것이 아닌가. 살아난 남편을 부둥켜안고 부인은 목을 놓아 통곡하였다. 이런 것을 기쁨의 통곡이라 하는 것일까? 사또도 수일간의 죽음을 회상하고 부처님의 은혜와 부인의 지극한 정성에 감격하였다.

    4 영원한 환생광명

  사또는 자기다 다시 살아들게 해준 법당을 다시 살려준 법당이하 하여 환생전(還生殿)이라 편액을 붙였고 그때에 재생의 환희를 잔치했던 요사에 환희료(散喜寮)라는 편액을 달았다. 그리고 금자로 법화경을 써서 부처님께 공양하고 절에 봉안케 하였다.
  이 일이 정해지자 사또부인은 나라에서 열녀상이 내렸고 불영사는 영험 있는 도량으로 더욱 그 이름이 높아갔다. 백극제는 다시 살아나 나이 90세까지 살았다.
  이 이야기는 옛날이야기가 아니다 더욱이 허망한 전설은 결코 아니다. 인간이 현세가 있는 만큼 전생이 있고 후생이 있으며 그 사이에 악연도 있고 선연도 있다. 악연으로 인한 악과는 부처님의 대자비 광명을 만나서 깨끗이 해소되는 것이다.
  저때의 부처님의 대자비 광명이 어찌 저때의 것이랴. 영원한 부처님의 자비신력이시며 불영사 창건 이래 1300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끊이지 않은 광명이며 또한 먼 미래로 이어지는 영원한 광명인 것이다. 그러니 저때의 백극제가 어찌 한 사람뿐일까.
  오늘도 또 미래에도 죽음과 고난을 없애주며 환희와 용기를 우리에게 부어주는 영원한 감로의 근원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