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르름을 갖자

보리수 그늘

2009-06-16     관리자

문득, 언제부터인지 나는 자신을 돌아볼 여유도 없이, 제동장치가 없는 자동차처럼 한끝으로만 돌진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이미 가속이 붙은 이 자동차는 다른 차들과의 지켜야 할 거리 간격을 무시하고 무조건 자기만을 위해 달리는 차와 같았다. 멀리서 다가왔다가 휙 지나치는 가로수를 보고 대충 어디쯤 지나가고 있는지 알 수 있을 뿐이다. 이러다간 정말 어디엔가 부딪쳐 대형사고라도 터질 것 같아 아찔하게 현기증이 일곤 한다.

『김형, 오늘 퇴근길에 소주 한잔 어때? 글쎄, 할 일 이 많고 집에도 일찍 들어가야 하는데 그러지 말고 모든 것 다 훌훌 털어버리고 누구 말처럼 마음을 비우고 한잔 하는 거야,』

포장마차 속에서 새어 나온 불빛만 보이는 깊어진 밤거리 속에서 서로 살아온 날들을 되돌아 본 시간이 오랜만에 주어졌다. 그는 대학을 졸업한 후 막 사회에 첫발을 내디였다. 그가 맡은 일을 그동안 배운 것을 토대로 적용시키려 했지만 생각처럼 쉽게 풀리지 않았다. 풀려고 애를 쓰면 쓸수록 오히려 더 얽매여져 갔던 것이다. 이상한 일은 신입사원인 그를 어려울 때면 도와주리라 여겼던 상사나 동료들이 전혀 예상을 뒤엎고 그를 당황케 한 것이다. 김형은 마치 시냇물을 건널 때처럼 느껴졌다. 그 디딤돌은 시냇물을 건너기 위해 꼭 필요한 존재로서가 아닌 한 순간의 이용물로서 쓰고 나면 가치가 없어져 버리는 존재처럼 말이다. 김형은 하루하루가 지날수록 회사라는 조직에 흥미를 잃기 시작했다.

얘기는 깊어가고 포장마차의 밖은 지나는 행인이 드문 깊은 밤이 되었지만, 우리 둘의 얘기만큼 깊은 곳까지는 아직 쫓아오지 못했다. 김형은 거대한 조직사회의 생리를 알지 못했고 그 조직을 그가 수용하기에는 부당한 점이 많았다는 것이다. 측은하게 여겨지는 김형의 어깨를 부축하며 밤거리를 나선다. 그는 거대한 조직사회에서의 어떤 희생물인 것이다. 다시 소생할 수 있는…….

자신이 아무리 훌륭하고 유일무이적인 존재라 과대평가하여도 그 웅장하고 신비로운 대자연 앞에서는 결국 하나의 미물에 지니지 않음을 발견할 때 얼마나 우리는 초라한 존재인가? 조금 높고 낮은 위치에 있다해서 낮은 위치에 있는 사람을 얕보고 짓밟는 세태가 얼마나 어리석은가? 우리는 언제나 그 위치에 있을 수도 없으며, 결국은 한 몸인 것을 모르는 무식의 소리인 것은… 서로 겸허한 자세로 자신을 돌아보자. 가진 자는 못가진 자의 어려움을 알고 배운자는 덜 배운 자의 어리석음을 비웃기보단 그들의 경험을 배우고 높은 지위에 있는 자는 낮은 자리에 있는 자의 고됨을 알도록 노력할 때 우리들의 삶은 일시적인 불협화음이 있을지라도 영원한 조화속에 모두가 내일을 기약하며 행복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공존할 때 우리들 모두의 마음엔 성하의 대자연 녹음보다는 어 짙은 푸르름이 항상 간직될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