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장사 마애석가여래좌상 (茸長寺 磨崖釋迦如來坐像)

*한국의 불상설명(73)

2009-06-15     관리자

통일신라(8세기 중엽)
높이 132cm
경북 월성군 내남면
용장리 용장사


경주 남산에서 남쪽 용장마을로 길게 뻗어내린 골짜기를 용장계(茸長溪)라 한다. 일제 때 이 계곡의 절터에서 용장사(茸長寺)란 글자가 새겨진 기와<瓦當>가 발굴되어 그런 이름을 얻었다.
용장사는 조선 중엽에 김시습(金時習)이 말년을 보내면서 한국 소설의 효시라고 할 금오신화(金鰲新話)를 쓴 곳으로 전해오고 있어 이때까지는 용장사가 법등(法燈)을 이어 왔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삼국유사에 ‘유가종(瑜伽宗)의 조(組) 대현(大賢)스님이 남산 용장사에 살고 있었다. 그 절에는 석조 장육(丈六)미륵상이 있었는데 대현스님이 늘 이 미륵불을 돌며 예배하니 불상도 또한 대현스님을 따라 얼굴을 돌렸다. <三國遺事 卷第4 義解第五 賢瑜伽條>’는 내용이 있다.
지금 용장사 뒤에는 3층 석탑과 원형불대좌가 있는데 원형불대좌 위에 머리<佛頭>를 잃은 석불좌상(石佛坐像)이 있다. 이 불상의 원형대좌가 빙글빙글 돌아가는 느낌을 주고 있어. 대형스님을 따라 돌았다는 미륵불이 바로 이 석불이 아닐까 추정된다. 바로 이 석불 옆 동쪽 암벽에 마애여래좌상이 새겨져 있다. 마애석불로는 거의 완벽할 만큼 균형잡힌 불상이다. 연화대좌 위에 가부좌 하고 성도인(成道印)을 맺은 모습의 이 석가여래 좌상은 눈, 코, 입이 알맞게 균제된 단아한 얼굴이 퍽 인상적이다. 목의 삼도(三道)는 분명하고 어깨는 넓고 당당하나 부드러운 곡선으로 처리되었고 얇은 법의를 자연스럽게 걸쳤는데, 옷주름을 가는 평행선으로 음각 하는 등 마치 인도상을 연상케 한다. 또 광배는 거신광(擧身光)인데 두광과 신광을 구분하여 발산되는 후광을 나타내었다.
고운 몸매 자연스런 옷주름의 표현, 단아한 얼굴에 번지는 잔잔한 미소는 천년 세월 풍화를 견디며 오늘도 참배자의 가슴을 밝혀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