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을 이기는 마음

선심시심

2009-06-15     관리자

 세상은 불행한 이들의 것이 아닌라 행복한 이들의 것이고, 세상은 병자들의 것이 아니라 건강한 이들의 것이며, 세상은 죽은 이들의 것이 아니라 살이 있는 이들의 것이다. 그러기에 불행한 사람들은 슬프고, 병든 사람들은 괴로우며, 죽은 이들은 말이 없다. 그 중에도 병지들의 괴로움은 그 어느 경우보다 크다. 병이야말로 불행의 근우너이며 죽음의 길로 인도하는 안내자이기 때문이다. 실로 병은 인간에게 고통과 우울을 주고, 경제적인 어려움을 받게 하며, 가족들의 근심을 일으켜 온 가정에 어두운 그늘을 드리우게 한다.

그러나 병은 육체의 장애일 뿐 마음과 의지의 장애는 아니다. 그러므로 병자는 병의 시련을 통하여 오히려 정신적인 강자가 될 수 있고, 그러므로써 더욱 더 성숙한 삶을 영위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하여 병자는 먼저 병을 미워하지 말아야 한다. 스승 조지훈 선생은 생래로 병약하였고, 지병으로 병마에 시달리며 많은 세월을 병상에서 보냈다. 그러나 그이처럼 짧은 생애를 건강하게 살다간 이도 드물다. 그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남긴 '병에게'라는 시는 이러한 점을 잘 보여준다.

..............................

자네는 언제나 우울한 방문객

어두운 음계를 밟으며

불길한 그림자를 이끌어 오지만

자네는 나의 오랜 친구이기에

나는 자네를 잊어버리고 있었던 그동안을 뉘우치게 되네

..............................

 병을 의인화하여 "자네"라 부르며 정다운 친구로 대하고 있는 이 시에서, 조지훈은 병을 초극하는 높은 정신적 경지를 보여주고 있다. 불교적 사생관으로 달관한 그 이기에 병을 두려워하고 미워하기 이전에 병을 자기화하는 여유를 보이고 있다. 병을 고치는 것은 물론 의술이요 약이겠지만, 그것보다도 중요한 것은 병자의 정신적 건강과 강인한 의지다. 실로 정신의 병은 육체의 병보다 훨씬 위험하고 무섭다. 육체적으로 건강한 사람들이그렇지 못한 사람들보다 불건전한 정신을 가지고 있는 경우는 수없이 많다. 다음으로 병자는 병을 무서워하지 말아야 한다. 조지훈의 시는 다음과 같이 이어진다.

..............................

생에의  집착과 미련은 없어도

이 생은 그지없이 아름답고

지옥의 형벌이야 있다손 치더라도

죽는 것 그다지 두렵지 않노니...............................

 죽음에 대한 그의 높은 정신이 잘 나타나 있다. 병은 미워하거나 무서워한다 해서 물러가는 것이 아니며, 죽음 또한 싫어하고 두렵다 하여 오지 않는것이 아니다. 어찌 보면 병은 자연의 섭리이며, 병자는 여기에 적응한 사람이다. 그러므로 병과의 만남은 곧 인연의 소치이다. 따라서 병과 인간과의 관계는 숙명적이다. 실로 병마에 시달리는 사람은 물론 건강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늙어 죽을 때는 병들어 죽는다. 세상에 줒지않는 사람은 없으며, 죽음은 병자라 하여 빨리 오는 것도 아니다.

하이네는 "인생은 병이요, 세계는 병원이며, 죽음은 의사다."라 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사람들은 병원에서 가정에서 병마에 시달리고 있고, 건강한 듯 걸어다니는 도시의 인파 속에도 병자는 얼마든지 있다. 그러기에 석가모니께서도 출가 전의 사문유관(四門遊觀)을 통하여 병자의 고통을 보고 인생의 참뜻을 깨달았고, 불교에서 말하는 사고(四苦)에도 생노사(生老死)와 함께 병(病)이 자리하고 있다.

다시 말하거니와 병자는 병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병자는 그 병상의 오랜 사색의 시간을 통하여 더욱 자아에 대한 성찰을 통한 극기(克己)의 정신을 길러야 한다. 실로 병상은 좁지만 생각하는 세계는 넓다. 그 길고 깊은 사색의 심연에서 병자는 누구보다도 건전하고 강인한 정신을 길러야 한다. 그리고 병을 미워하거나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조지훈의 시는 다음과 같이 병에게 정다운 말을 건네며 끝을 맺고 있다.

..............................

자네는 나늬 정다운 벗

그리고 내가 공경하는 친구

자네가 무슨 말을 해도 나는 노하지 않네

......................(중략)..............................

잘 가게 이 친구

생각내키거든

언제든지 찾아 주게나

차를 끓여 마시며

우리 다시 인생을 얘기해 보세그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