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를 먹이는 법

*선의 고전-마조어록(馬祖語錄)⑥

2009-06-13     관리자

 

 

󰊱마조와 달구경

한번은 서당(西堂)·백장(百丈)·남전(南泉) 세 사람이 마조를 모시고 달구경을 하는데 마조스님이 말했다. 「바로 이런 때 어떠한가」 서당이 대답했다. 「공양하기 좋습니다.」백장이 말했다. 「수행하기 좋습니다. 」남전은 아무 말없이 소매를 떨치고 가버렸다. 마조스님이 말씀했다. 「경(經)은 지장(地藏)의 것이고, 선의 회해(懷海)의 것이다. 다만 보원(普願)만이 홀로 물외(物外)에 초연하구나!」(서당은 이름이 지장이고, 백장이 이름은 회해며, 남전의 이름은 보현이다.)

 

󰊲남전의 통안

남전이 대중을 위해서 죽공양을 돌리고 있는데 조사가 물었다.「통안에 있는 것이 무엇인가.」남전이 대답했다. 「이 노인이 입을 다문 채로 그런 말을 하는구나.」마조는 아무말이 없었다.

 

󰊳목숨을 버릴 곳

백장이 물었다. 「어떤 것이 불법에 근본되는 뜻입니까.」마조가 대답했다. 「바로 네가 신명(身命)을 버리곳이다.」

 

󰊴대주의 입도

대주(大珠)가 처음 마조께 참예할 때다. 조사가 물었다. 「어디서 왔는고」「월주(越州) 대운사(大雲寺)에서 왔습니다.」조사가 또 물었다.「여기와서 무엇을 하자는 것인가.」「불법을 구하러 왔습니다.」조사가 말했다.「자기 집안의 보배창고는 돌보지 않고, 집을 버려두고 돌아다니기만 해서 무엇을 하자는 것인가. 나에게는 한 물건도 없다. 무슨 불법을 구한단 말인가.」

대주가 절을 하고 물었다. 「어떤 것이 이 회해의 자기집 보배창고입니까.」조사가 말했다. 「지금 나에게 묻는 것이 그것이 그대의 보배창고다. 일체가 구족하여 아무런 모자람 없이 사용하자면 네 마음대로다. 어째서 밖을 향하여 찾아 헤매랴.」

대주는 이 말 아래 자기 본심을 깨닫고서 뛸듯이 기뻐하며 감사하고 예배했다. 그후 스님을 섬기기를 6년 뒤에 자기 절에 돌아가 돈오입도요문론(頓悟入道要門論)1권을 지었다. 마조스님은 그것을 읽고 대중에게 말했다. 「월주에 크게 빛나고 밝은 큰 구슬이 있다. 그 빛은 일체에 막힘없이 자제한다.」

 

󰊵3인 밀담은 안된다

륵담법회선사가 마조스님에게 물었다. 「어떤 것이 서천(西天)에서 동토에 오신 달마조사의 뜻입니까.」조사가 대답했다.「조용히 해라. 가까이 오너라.」법회가 가까이 가니 마조가 한번 쥐어박고 말했다. 「여섯 귀가 함께 모의해서는 안된다. 내일 오너라.」법회가 다음날 또한 법당에 들어가서 말했다.「청하옵건대, 화상이여 가르쳐 주소서.」마조가 말했다. 「저기가 있거라. 내가 상당(上堂)할 때에 나오너라. 그때에 밝혀 주리라.」법회가 곧 깨닫고 말했다. 「대중스님들이 증명해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그리고서 법당을 한 바퀴 돌고 가버렸다.

 

󰊶유건의 좌선

륵담유건(惟建)선사가 하루는 법당뒤에서 좌선하고 있었다. 마조스님이 이것을 보고, 유건스님이 귀를 두 번 입으로 불었다. 유건이 정(定)에서 나와 마조인 것을 보고 다시 정(定)에 들었다. 마조가 방장에 돌아가 시자를 시켜 차 한잔을 가져다 유건에게 주게 하였다. 유건은 돌아보지도 않고 곧 승당으로 돌아갔다.

 

󰊷석공과의 만남

석공(石鞏) 회장(慧藏)선사는 원래 사냥을 업으로 하고 있었고, 스님을 만나는 것을 싫어했다. 마침 사슴떼를 쫓다가 마조의 암자 앞을 지나게 됐다. 마조가 나와 마중하니 회장이 물었다. 「화상이여 사슴이 지나가는 것을 보았습니까.」마조가 대답했다.「당신은 누구요.」「사냥군입니다.」마조가 말했다. 「당신은 활을 잘 쏘는가.」「잘 쏩니다.」「당신은 살 하나로 몇 마리를 미치는가.」「살 하나로 한 마리를 마침니다. 」마조가 말했다. 「당신은 잘 쏠줄 모르는군.」「스님도 활을 잘 쏩니까.」「잘 쏜다.」「스님은 살 하나로 몇 마리를 마침니까」「살하나로 한 무리를 마친다.」「저것들도 또한 산 물건입니다. 어째서 한 무리를 모두 쏠 것까지 있습니까.」

마조가 말했다. 「그대가 이미 그런 줄을 안다면 어째서 스스로를 쏘지 않는가.」「저에게 스스로를 쏘라고 하지만 손을 댈 곳이 없습니다.」마조가 말했다.「이사람, 무시겁래의 무명번뇌가 오늘 단번에 쉬었구먼!」회장이 즉시에 활과 화살을 꺾어버리고 스스로 머리를 깍고 마조에게 나아가 출가했다.

하루는 주방에서 취사 일을 하고 있는데 마조가 물었다. 「무엇을 하고 있는가.」「소를 먹이고 있습니다.」마조가 말했다. 「어떻게 소를 먹이는가.」「한번 풀밭에 들어가면 곧 코뚜레를 잡아 끌어냅니다.」마조가 말했다. 「너는 참으로 소를 잘 먹인다.」

 

*서당(738-817); 성은 료(廖)씨, 지장은 호다. 남강군(南康郡)애소 태어나, 13세때 마조스님을 찾아가 섬기고 7년만에 법을 받았다. 마조스님의 입적후에 많은 대중을 교화하여 마조스님 생존때와 같았다고 한다. 당(唐) 헌종 12년 80세에 병없이 제자들을 불러 고하고 입적했다. 마조 입적후 초기에는 서당이 가장 중요한 위치에 있었는 것으로 보인다. 그 후 백장스님의 제자들이 활약하여 마조 문화에 이대사(二大士)가 뚜렸해졌다. 서당스님은 우리한국불교에 큰 영향을 끼쳤다. 신라의 도의(道義) ·홍척(洪陟)·혜철(惠徹)국사가 각각 가지산 보림사(寶林寺)·실상산 실상사(實相寺)·동리산 태안사(泰安寺)를 열어 이른바 구산(九山)선문을 열었던 것이다.

 

*백장(749-814); 이름은 회해(懷海)이고, 복건성(福建省)사람이다. 처음에 경전을 깊이 공부하고 그 후 마조를 섬겨 법을 받았는데, 마조 입적후에는 마조탑 곁에 머물었다. 이어 강서성(江西省) 대웅산(大雄山)에 들어가 법을 선양했다. 서당이 입적하기 3년전인 원하 9년에 66세로 입적했다. 백장스님에 관하여 무엇보다 특기할 것은 총림의 규법을 세우고 청규를 제정하여 총림을 확립시킨 일일 것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선원을 율원에 속해 있었다. 「일일불작 일일불식(一日不作 一日不食)」이라는 그의 말은 널리 회자하는 말이다.

 

*남전(784-834); 이름은 보원이고, 속성은 왕(王)씨. 처음에 율· 능가· 화엄· 삼론 등을 연구하다가 뒤에 마조에 참여하여 심인(心印)을 받았다. 그후 남전산에 들어가 선원을 짓고 스스로 소를 치고 밭을 개간하며 자칭 왕로사(王老師)라 하며 지냈는데 30년을 산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차차 명성을 떨치고 많은 학도가 모였는데 그 문화에 유명한 조주(趙州)스님이 있다. 87세에 입적했다.

 

*통; 예부터 종문에는 「통 밑을 뺏다」는 말이 있다. 통이란 번뇌망상이 가득한 통, 말하자면 무명칠통이라는 말과 같은 말이다. 지금 여기서 마조스님은 「통안에 있는 것은 무엇인가.」하고 묻고 있다. 비상한 무게를 가진 말이다.

 

*대주;(생몰연대가 분명치 않다) 이름은 혜해(慧海) 복건성(福建省)사람. 성은 주(朱)씨다. 대운사에서 출가 득도하고 마조에게 와서 법을 받고 6년간 수행하다가 다시 대운사에 돌아가 일생을 마친 듯하다.

 

*륵담스림:(생몰연대를 알 수 없다.) 여섯귀가 함께 모의해서는 안된다는 말은 세 사람이 모의해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세삼이 모의해서는 반드시 누설되어 일이 안된다는 뜻이다. 여기서는 마조와 법회와 달마의 3사람이 밀담해서는 밀어가 되지 않으니 너는 달마에게 직접 들르라는 뜻인듯.

 

*살하나로 한 무리를 잡는다 한 것은 「나는 말 한 마디로 대중의 마음을 꿰뚫는다」는 뜻일 것이다. 이에 대하여 살 하나로 사슴 한 무리를 모두 잡는다는 것이 지나치다는 화자의 말에는 목숨있는 동물에 대한 연민이 숨어있다. 마조는 이에 대하여 자기 자신 무명번뇌를 향하여 활을 쏘라고 하는 듯, 회장은 쏠 곳이 없는 것을 알게 되니 마침내 일을 마친 것이다.

 

*소를 먹인다; 이에 대하여 유교경(遺敎經)에 다음과 같이 보인다. 너희들, 비구들 이미 능히 계에 머물거든 마땅히 오근(五根)을 다스려, 방일하여 오욕에 들지 않도록 해라. 비유하면 소를 먹이는 사람이막대기를 잡고 잘 돌보아 함부로 곡식을 침범하지 않도록 하는 것과 같다.

여기에서 보는 것처럼 오근·오욕의 번뇌를 다스리는 것을 소를 치고 길들이는 것으로 비유했다. 선문 십우도(十牛圖)에도 이런 사정을 잘 보여 준다. 여기서는 취사하는 일을 그대로 소치는 것으로 말하고 있다. 또 풀밭에 들어간다는 것은 번뇌를 비유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