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비극일지라도

빛의 샘●해는 져도

2009-06-11     관리자
 
이제 또 시간의 마디에 섰다.  과연 그것이 지혜로운 일이었는지 모르겠으나 인간은 매우 오래 전부터 신의 뜻을 닮겠다며 임의로 시간을 자르기 시작했다.
해가 지고 달이 뜨는 것을 잣대 삼아, 겨울이 가고 봄이 오는 것을 기준 삼아 시간을 나누었다.  나누어 놓고선 그 마디마디에 별명 붙이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4월은 잔인한 달이라느니, 토요일은 기분 좋은 날이라느니, 생애 잊지 못할 그 해는 1991년 이었다느니…….
현행의 60년을 1년으로 끊어 놓았더라면 그도 좋을 법 했으나, 애초에 그렇지 못했기에 우리는 번거롭게도 365일 만에 한 번씩 생일을 쇠야 하는 불편을 겪는다.  그렇게만 되었다면 우리는 지금처럼 경박하게 송구영신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동서고금의 약속대로 4계절이 끝나는 1년의 마디에 서 있다.
1년을 그리 짧게 끊은 이유는 4계절이 순환하여 봄에서 겨울까지 한 주기가 끝나기 때문일 것이지만, 4계절로는 성에 차지 않아 8계절을 한 주기로 본다면 그도 가능한 일이기에 완벽한 이유로 보기는 어렵고, 저 희랍의 시지프처럼 산에서 굴러오는 돌을 또 다시 꼭대기로 가져가겠다는 의지의 기인했을 확률이 높다.
아시다시피 시지프의 바위 굴리기야말로 신이 인간에게 내린 가장 극악한 형벌이다.  바위를 산꼭대기로 끌고 올라가면 둥근 바위의 무게로 인해 다시 굴러 내려오고 시지프는 쉴 틈도 없이 다시 산꼭대기로 가져가야 한다.
아무런 이익도 없이 시지프가 그런 중노동형을 받게 된 이유는 신의 비밀을 누설, 혹은 신을 명시, 혹은 신이 예정한 죽음을 증오해서, 혹은 인간다운 본성에 충실해 신의 노염을 샀다는 등 여러 가지지만 시지프가 신을 멸시하여 신으로부터 가혹한 형벌을 받은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러한 시지프 신화는 우리 인생의 한 전형을 제시하고도 남음이 있다.  인간은 신의 뜻에 순응하여 자연의 순환을 따라 계절과 시간의 마디를 정하였지만 그것은 이미 형벌을 자초한 것이었다.
신의 간교한 꽴에 빠져든 것이다.  보라, 시지프가 돌을 다시 던진 것과 우리가 정초 새 부대에 새 술을 담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시지프가 굴린 돌이 다시 눈앞으로 굴러온 것과 한 해의 끝인 지금이 무엇이 다른가.
한 푼 소득 없는 시지프의 무익한 노동의 악순환과 매년 매해 봄을 맞고 겨울을 보내 60년 70년을 살아 공수래 했듯 공수거하는 우리네 인생과 무엇이 다른가.
허나 우리가 1년을 네 계절 열두 달로만 짧게 잡아 매년 새 봄을 맞길 자초한 것은 오히려 신을 앞선 영리한 계교일 수도 있었다.
우리는 인생의 값어치를 늘 옛 과오에 대한 청산과 새로운 도전에 두고 있었던 것이다.  설사 우리 어깨위로 다시금 그 곤고(困苦)한 돌덩어리가 내려와 앉는다 하더라도 새롭게 시작해 보고자 시도하는 것이다.
해가 진다.
해가 떠오를 때부터, 중천을 거쳐 기울기 시작했을 때도 나는, 우리는 열심히 살았다.  충실히 살았다.  그러나 미진했다.  우리의 욕심에 이르기에는 많이 미흡했다.
그렇다.  우리는 우리의 그 무한한 욕심을 위해 일 년을 그리 짧게 끊어놓은 것이다.  해를 보내면서 마음 한 귀퉁이에 그러한 부족감이 없다면, 욕심이 크지 않다면 새해에 던진 돌은 중턱에까지밖에 못가서 굴러오기 시작한다.
부족감과 우리들의 그 욕심이 한 해를 시작할 충전에너지의 양으로 확산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한 계산이 허욕이며 공허이며 그래서 비극이라 해도 우리는 어쩔 수 없다.
알베르 까뮈는 그 인간의 시지프를 일러 이렇게 말한다.
‘반항아 시지프는 끝없이 악순환 되는 자신의 비참한 상황에 대해 전모를 알고 있었다.  그는 괴로웠지만, 그의 괴로움을 이루었을 그 통찰이 동시에 그의 승리를 완성시킨다.’
비록 비극일지라도 우리는 의연히 미흡한 이 해를 보내고 새해에는 그 무거운 돌을 치고서 산을 오른다.  그 처연한 도전이 이미 승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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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년 전남 벌교에서 태어났으며 198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소설 당선으로 문단에 등단했다.  주요 작품으로[폭설][흐르는 물][쑥대머리][내 안에 갇힌 우물 하나]등 다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