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꽃마을 동화] 수천재태자 이야기

연꽃마을동화

2009-06-10     광덕 스님

옛날, 먼 옛날에, 왕자 3형제가 작은 나라 하나씩을 맡아서 다스리며 정답게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첫째 왕자의 신하 가운데에 아주 불충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매우 포악하고 무도하여 군대를 모아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깊이 믿던 신하가 큰 군대를 일으켜 갑자기 쳐들어 왔으므로 첫째 왕자의 나라와 둘째 왕자 나라는 어이없이 점령당하고 말았습니다. 셋째 왕자 나라에도 순식간에 적군이 쳐들어와 성은 포위당했습니다. 오랜 평화 속에서, 준비 없는 가운데 당한 변란이므로 역시 견디지 못하고 임금님 일가는 성을 비우고 이웃나라로 피신하게 되었습니다. 셋째 왕자는 성품이 매우 착하고 인물도 잘 생겼고 말할 때마다 밝은 웃음이 풍겼으며 평소에 어진 정치를 하였으므로 나라 사람들이 매우 따랐습니다. 그러나 갑자기 당한 이번 변란에는 어쩔 수 없었던 것입니다. 셋째 임금님에게는 수천재라는 태자가 있었습니다. 나이 7살인데 역시 아버지를 따라 피난길을 나섰습니다. 이웃나라에 이르자면 큰 사막과 높은 산을 지나야 했습니다. 길이 둘이 있었는데 한쪽은 한 달만에 가는 길이고 한쪽 길은 돌아가는 길이므로 이웃 나라까지에는 두 달이 걸렸습니다. 임금님은 너무 당황하여 길을 잘못 들어 두 달만에 가는 길을 가고 있었습니다. 양식은 한 달만에 다 떨어지니 함께 가던 사람들이 모두 굶주리고 지쳐서 하나 둘 쓰러졌고 마침내 임금님 내외분과 수천재태자만이 남았습니다. 시장해도 참고 물을 마시며 또는 풀뿌리를 캐어 먹으며 산을 넘고 또 걸었습니다. 마침내 더는 갈 수 없는 최후의 고비까지 왔습니다. 왕후가 임금님 앞에 엎드려 말씀 드렸습니다.

『임금님과 태자는 어떻게 해서라도 이웃나라에 가셔야 합니다. 그래서 다시 군대를 일으켜 왕국을 회복하여야 합니다. 그러나 이 지경이 되었으니 나를 잡아 잡수시고 태자와 길을 재촉하십시오.』

임금님도 눈물을 흘렸습니다. 이를 본 태자가 울음을 멈추고 말씀 드렸습니다.

『아바마마, 그렇게 할 수는 없습니다. 어머니가 계셔야 나라를 지탱할 수 있습니다. 조금만 참으십시오. 그러면 제가 산토끼를 잡아 오겠습니다.』그리고 산모퉁이를 돌아갔습니다. 수천재태자는 마음 속에 결심한 바가 있었습니다.

「내가 이렇게 수척한 것을 보니 곧 죽을 것이다. 내 몸을 아바마마를 위해서 바치자. 아바마마가 살아 계셔야 할아버지의 나라를 찾을 수 있고 오래 지켜 나갈 것이다.」그렇게 생각하고 칼을 빼어 자기 몸을 베었습니다. 그리고 곧 아바마마에게 달려가서

『토끼고기입니다. 어서 드십시오. 그리고 힘을 내어 어서 떠나십시오.』하였습니다.

임금님 내외는 토끼 고기인줄만 알고 그 고기를 먹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살펴보니 태자가 자기 몸의 살을 베어낸 것임을 알았습니다. 태자는 상처도 심하고 기운도 없어 더 살 수 없게 되었습니다. 임금님 내외는 뜨거운 눈물을 삼키며 어린 아들을 길에 놔두고 발걸음을 재촉했습니다. 임금님 마음에는 「내가 죽어서는 아니 된다. 어떻게 해서라도 반드시 나라를 회복하여야 한다. 그래서 부모와 형제와 백성들을 다시 편안하게 하여야 한다.」라는 생각만이 가득 찼습니다. 이웃나라 임금님은 평소에 존경하는 사이였으므로 기쁘게 맞이하였습니다. 그리고

『군대를 넉넉히 드릴 터이니 쉬어서 힘을 회복하시고 다시 나라를 찾도록 하십시오.』하고 격려하여 주었습니다.

임금님은 마음 놓고 쉴 겨를이 없었습니다. 곧 군사를 거느리고 본국에 쳐들어갔습니다. 그리고는 지금은 죽었을 태자를 생각하고 뼈라도 거둬 탑을 세우려고 군대를 거느리고 태자가 죽었을 길을 찾아갔습니다.

수천태자는 효성이 극진하였을 뿐만 아니라 나이가 어리면서도 한 몸을 버려서 할아버지 나라를 찾겠다는 큰 뜻을 가졌던 것은 앞서도 말한 바입니다. 태자는 또한 자비한 마음이 컸고 오는 세상에 부처님이 되어서 온 세상 사람들을 평화하고 행복스럽게 해주는 것이 소원이었습니다. 아바마마가 눈물을 흘리며 길을 떠난 다음에 태자는 지쳐서 나무 그늘에 누워 있었습니다. 오직 뼈만 앙상하게 남았고 상처가 난 몸에는 파리와 모기떼가 모여 들었습니다. 그러나 태자는 조금도 후회하거나 고통스러워하거나 아무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어짜피 죽는다. 이 몸을 깎아서 부모님께 봉양하였고 할아버지 나라를 되찾게 하는데 자그마한 일을 했다. 이제 남은 피와 살은 어차피 썩어 가는 것이 아니냐. 파리야 오너라. 모기야 오너라. 나의 남은 피 한 방울까지라도 너희들이 즐겁게 먹고 배부르도록 하라. 나는 내세에 부처님 나라에 태어난다. 너희들도 같이 태어나자.』

태자의 마음은 사뭇 평화롭고 기쁜 마음에 차 있었습니다. 그런데 별안간 구름이 모여들고 천지가 흔들렸습니다. 그러더니 갑자기 큰 호랑이떼가 으르렁 대며 몰려 왔습니다. 이것은 수천재태자의 자비스러운 마음과 참는 마음을 갸륵하게 여기고 그 뜻을 다시 분명히 시험해 보고자 하는 재석천왕의 신통력에서 온 것이었습니다. 태자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호랑이들에게 외쳤습니다.

『호랑이야! 오너라. 나에게 남은 것이 이 뼈대뿐이다. 이제 나는 진리의 나라에 태어날 것이다.』

참으로 거룩한 광경이었습니다. 수천태자의 이 말이 떨어지자 천지는 갑자기 밝아지더니 호랑이도 온데 간데없고 갑자기 제석천왕이 많은 하늘사람을 거느리고 태자 앞에 나타났습니다. 하늘사람들은 손에손에 약을 들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태자의 몸을 약물로 씻어 주고 또 약을 발라 주었습니다. 그러는 사이 태자의 몸은 씻은 듯이 나아졌고 원래대로 완전한 몸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석천왕이 친히 감로차를 따라서 태자에게 권했습니다. 감로차를 마시고 나니 태자는 심신이 상쾌하고 날을 것 같았습니다. 제석천왕이 말하였습니다.

『태자시여, 장하십니다. 천상에 나기를 원하신다면 모시고 가겠습니다.』

태자는 대답하였습니다.

『고마운 말씀이오나 나는 하늘나라의 즐거움을 원하지 않습니다. 어디서든 부처님 도를 닦아 이루어서 고난에 빠진 모든 사람들을 구제하는 것이 소원입니다.』

『거룩하십니다. 태자시여! 부디 큰 뜻 이루소서. 그리고 이 세간사람, 하늘나라 사람 모두를 구해 주소서.』

말을 마치자, 제석천왕과 하늘 사람들은 몸을 굽혀 존경을 표하고 상서구름을 타고 사라졌습니다.

그때에 이웃나라에 군사를 빌어 나라를 회복한 대왕이 태자의 시체를 거두려고 행군하여 그 자리에 다다랐습니다.

평소대로의 단정한 몸으로 나무 밑에 앉아 염불하고있는 태자를 발견하였습니다. 임금님을 따라온 군사들도 울었습니다.

산도 나무도 골짜기도 복받쳐 오르는 감동으로 흔들리는 듯 울었습니다. 임금님은 태자가 겪은 그동안의 일을 자세히 듣고 병사들과 함께 엎드려 인사드렸습니다. 새들도 모여들어 노래 불렀고 짐승들도 모여들어 춤을 추었습니다. 그리고 하늘에서는 은은히 풍악 소리가 울려 퍼지며 그 사이에 노랫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거룩하시다. 수천재태자여! 정성다한 훌륭한 보시가 나라를 구하고 만사람을 살렸구나. 진리를 구하는 뜻은 그 모두를 마침내 이루리라.』

임금님은 나라를 회복하고 형님의 나라들도 모두 회복하고 다시 어진 정치를 베풀어 평화롭고 튼튼한 나라를 이루었습니다.

모든 백성들이 임금님의 높은 덕과 수천재태자의 보살 마음을 길이길이 칭송하였습니다. 여기 수천재태자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머나먼 과거 생 가운데의 한 모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