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스님 이야기

연작 소설

2009-06-09     관리자

 저녁 설겆이를 끝내고 거실로 나오던 강여사는 가만히 서서 마당을 내다 보다가 창가로 걸어갔다. 조금씩 푸른빛이 바래가는 잔디위에 달빛이 하얗게 내려앉고 달빛속에서 풀벌레들이 애처롭게 울고 있어서 였다.

 저 조그만 가슴에 무슨 감정이 있다고 저렇게 울고 있지…

 강여사는 달빛속에 잠겨있는 마당을 내다보며 혼자 속으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풀벌레소리는 그것이 울음소리가 아니라 뒷발인가 날개인가를 비비는 소리라고 하지만 비록 그렇다 하더라도 그속에 감정이 없다면 어떻게 저토록 애잔하고 슬픈 소리를 낼 수 있겠는가? 감정, 정말 감정이 라는 것은 뭘까?

 달빛도 풀벌레소리도 마당가에 피어 있는 과꽃도 다 감정이 있는 것 같고 감정이 있기 때문에 자기처럼 가을밤이 깊어지고 있음을 함께 가슴아파 하고 있는 것같았다.

 강여사는 서로서로 감응(感應)하고 있는 일체만물이 절묘한 소리를 내고 있는 커다란 악기처럼 신비하게 느껴졌다.

 "엄마 여기앉아 계세요. 제가 커피 한잔 끓여다 드릴까요?"

 재환이가 뒤에 와서 강여사 허리를 끌어다가 의자에 앉히며 말했다.

 "그럴래? 아니 그냥 물만 끓여와라. 이왕이면 녹차를 마시게."

 "알았어요. 제가 다 할테니 엄만 가만히 앉아 계세요."

 재환이는 한손을 쳐들어 어머니가 일어나지 않도록 당부하며 부엌으로 들어갔다.

 자신이 물을 끓이려 부엌으로 들어간 사이에 어머니가 차와 다기를 가지러 방으로 들어 갈까봐 걱정이 되는 모양이었다.

 강여사는 그런 재환이를 미소를 지으며 바라보고 있었다. 막내라서 늘 어머니의 주위에서 맴돌기도 하지만 재환이한테는 예술가의 기질이라고 할까? 일종의 끼같은 것이 있었다.

 그래서 지금 이순간에도 감상에 젖어 있는 어머니의 감정을 이해하고 차를 끓여 드리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다관에 물붓는 소리와 까스불 켜는 소리가 들리더니 곧이어 안방으로 들어가서는 다기와 작설차 봉지를 들고 나왔다.

 "엄마 잠깐만 기다리세요. 제가 물 갖다 드릴께요."

 재환이는 들고 나온 다기와 찻잔을 강여사 앞에 놓더니 다시 부엌으로 들어 갔다.

그리고 물끓는 시간을 잠시 기다리다가 쟁반에 다관을 담아들고 거실로 나왔다.

 "고맙다, 너도 여기 앉아서 엄마하고 마시자."

 강여사는 미소를 지으며 아들을 쳐다봤다. 자신의 감정을 헤아려 주고 있는 아들이 고맙고 대견하게 느껴져서 였다.

 "아니요. 엄마 혼자 즐기세요"

 재환이는 같이 차마시는 일을 사양하고 제방으로 들어 가려다가 다시 몸을 돌려 강여사를 쳐다보며

 "엄마 불꺼 드릴까요"하고 물었다. 마당을 환하게 비추고 있는 달빛이 그의 눈에도 들어왔던 모양이다.

 "그래라."

 강여사는 다시 미소를 지으며 아들을 쳐다 봤다. 두 개의 현(絃)처럼 아들과 자신이 지금 같은 울림으로 서로의 감정을 전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였다.

 그순간 강여사는 형언할 수 없는 아름다움 같은 것을 느끼고 있었다. 만남의 아름다움이라고 할까? 이생에서 재환이와 자신이 모자의 인연으로 아름답게 만나고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고 고맙게 생각되어 졌다.

 강여사는 차를 만들어서 두손에 받 쳐들고 가만히 마당을 내다 보았다. 불을 껐기 때문에 달빛은 더욱 고요히 마당을 비추고 있었다.

 '꼭 산사(山寺)에 와 있는 것 같네'

 강여사는 달빛이 교교하게 내려 앉아 있는 마당을 바라보며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리고 있었다.

 서울이라고 하지만 강여사 집은 산밑에 있기 때문에 참새, 제비는 물론이고 가끔은 이름을 알 수 없는 산새들도 날아와, 마당에 서 있는 대추나무와 감나무에 앉곤 했다. 하기 때문에 녹차잔을 들고 있는 지금 이순간은 정말 산사에 와 있는 것 같은 정취가 느껴졌다.

 산사의 정취를 느끼고 있다고 생각한 순간 강여사 머리속엔 저녁 때 만난 스님 얼굴이 번개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그러자 뭐라고 딱이 표현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이 밀려와 강여사는 들고 있던 찻잔을 들어 차를 한모금 마시고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

 강여사는 오늘 친구를 만나기 위해 오랫만에 시내에 나갔었다. 가까운 친구라곤 하지만 서로 바쁘게 살다보니 친구를 만나는 일도 쉽지가 않아 반년이나 지나서야 만나게 되었다.

 나이든 여자들이 흔히 그러하듯이 강여사도 친구를 만나서 남편얘기 아이들 키우는 얘기 살림사는 얘기 친구들 얘기 등을 하다가 서로 건강이나 조심하자고 당부를 하면서 헤어졌다.

 평범한 잡담에 불과한 얘기를 나눴지만 친구와 헤어진 강여사는 마음이 가볍고 편안해 졌다. 그건 두사람이 다 솔직했다는 기분 때문이었다.

 결혼초에는 친구들끼리 만나면 무엇인가 경계하고 숨기고 자신을 돋보이게 하려고 애들을 썼지만 이제는 그런 허세들을 부리지 않아서 좋았다. 허세를 부리지 않을 수 있게 된 것은 생활이란 것은 프러스쪽과 마이너스쪽을 털고나면 결국 같다는 것을 안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인생이라는 여정(旅程)에서 중년이라는 고개마루에 올라서고 보면 사다는 것에 있어 특별히 드러내 놓고 자랑할 것도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가리고 숨길 것도 없다는 것을 서로서로 알게 된다.

 하기야 만나면 솔직해 질 수  있고 솔직해질 수 있기 때문에 만나면 편하다. 강여사도 중년의 고개마루에 올라선 후에야 친구만나는 재미를 제대로 누리며 살아가고 있었다.

 오랫만에 친구를 만나서 이런저런 잡담을 나눈 강여사는 즐거운 마음으로 친구와 헤어졌고, 친구와 헤어진 후 광화문 지하도를 지나다가 이왕 나온 김에 책이나 한권 사가야지 하고 교보문고로 들어갔다.

 교보문고는 그야말로 책의 홍수였고 매장안에는 세상이 오늘 종말을 맞는다 해도 나만은 오늘 한권의 책을 읽겠다는 사람들로 가득차 있었다.

 강여사는 책과 책을 읽고 있는 사람들이 뿜어내는 열기에 취하여 안으로 들어가 화엄경을 해설한 책 한권을 샀다.

 불교는 팔만사천경이라는 방대한 경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타종교의 교리책에 비해 그 양이 1할도 안된다는 생각이 들어 쓸쓸해 졌다.

  불교인들은 책을 읽지 않기 때문인지, 아니면 경전을 책으로 풀어줄 사람이 없어서인지는 모르지만 아뭏든 빈약하고 초라한 것만은 사실이었다.

 강여사는 자신이라도 불교관계의 책을 한권이라도 더 사서 읽어야 겠다고 생각하며 밖으로 나왔다. 밖으로 나온 강여사는 광화문 지하도 쪽으로 나가며 맞은 편에서 머리를 깍은 사람이 젊은 여자와 함께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어머 !"

 그 순간 강여사는 자신도 모르게 걸음을 멈추고 서서 마주오는 사람을 가만히 쳐다 보았다.

 아가씨와 함께 오는 사람은 곤색잠바에 검은 바지를 입긴 했지만 그는 틀림없이 자신이 다니는 절의 스님이었다.

 스님임을 확인한 순간 강여사는 가슴이 철렁하는 충격이 느껴졌지만, 얼른 한옆으로 비켜서서 자신의 몸을 숨겼다.

 스님은 한 신도가 충격을 받은 시선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도 모른채 옆에 서 있는 아가씨와 열심히 얘기를 나누며 걸어가고 있었다. 스님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강여사의 감정은 너무도 복잡해져서 진정하기가 어려웠다.

 스님모습이 괘씸하기도 하고, 안스럽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하고, 달려가서 충고를 해주고 싶기도 하고, 사복으로 갈아 입고 아가씨와 함께 걸을 수 밖에 없는 그 절절한 감정이 이해되기도 하고……

 스님의 뒷모습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가지 한참동안 그 자리에 서있던 강여사는 정리되지 않은 복잡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왔다.

 차를 마시며 스님 모습을 떠올리고 있던 강여사는

 '스님은 지금 어디에 계실까?' 하는 의문이 생겼다.

 어디에 계실까? 하는 의문속엔 지금 스님이 계시는 장소가 절이기를 비는 간절한 염원이 포함되어 있었다.

 작년 이맘때 쯤 강여사가 만등불사에 참여하기 위해 절에 갔을 때 그 스님은 행자로 설겆이를 하거나 채소를 씻는 등 궂은 일을 도맡아 하고 있었다.

 안경을 낀 지적으로 보이는 외모이기에 그행자에 대해 여쭤 봤더니 모대학 국문과에 다니다가 입산을 했다고 했다.

 그때 강여사는 행자 생활을 하고 있는 그 스님을 보면서 어려운 용단을 내렸으니 열심히 공부해서 훌륭한 스님이 되기를 속으로 기원했었다. 그것은 스님의 길이라는 것이 얼마나 귀하고 어려운 길인가를 잘알고 있었기 때문에 어렵고 귀한 길을 택한 이상 그 길을 잘 가시도록 빌고 싶었던 것이다.

 강여사는 일년전 절에 가서 행자생활을 하던 스님을 보면서 빌었던 그 기원을 다시 한 번 속으로 빌고 있었다. 스님이 걸어가는 구도의 길은 어려운 길이기 때문에 그 길에는 방황이 따를 수 밖에 없겠지만 그 길은 또한 귀한 길이기도 하니 가능한 빨리 방황을 멈추고 스님 본연의 길로 들어서시도록…

 인생의 허망함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은 구도의 길이라는 것을 강여사는 믿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佛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