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난 고기들

창작동화

2009-06-08     관리자

 구름 속에 숨어 지내던 해님이 둥근 얼굴을 쏘옥 내밀었습니다. 뜨거운 입김을 후욱 뿜어 땅 위로 내보였습니다. 나무들은 젖은 잎을 햇볕에 말렸습니다. 윤기가 반들반들 나는 잎은 살이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흙탕물이었던 개울물에 햇빛이 스며들어 조약돌이 보석처럼 반짝 거렸습니다. 멀리 솔숲에 가려진 홍련암에서 흘러 내리는 물이었습니다. 홍련암은 나이든 노스님과 자운스님이 계시는 작은 암자로 신도들이 많지를 않아 절은 자꾸 낡아졌습니다. 그러나 물은 꽤 맑았습니다. '풍덩' 개울물에 청개구리가 뛰어 들었다가 바위 위로 기어 올랐습니다.

 까만 눈을 굴리면서 아래턱을 할딱거렸습니다. 더위를 식히느라 물 속에 들어 갔지만 숨이 가쁜가 봅니다. 물 속에는 피라미 소금쟁이 송사리 방게 미꾸라지 버들치 붕어들이 놀고 있었습니다.

 "야 이제 마음껏 헤엄을 치고 놀 수 있겠구나"

 피라미가 들뜬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그렇구나 홍수가 졌을때는 도무지 깜깜해서 앞이 보이지 않았어"

 미꾸라지가 맞장구를 쳤습니다.

 "나는 거센 물살에 휩쓸려서 까딱했으면 죽을뻔 했어!"

 송사리도 한마디 거들었습니다. 물 속에 사는 식구들은 저마다 물이 맑아진 것을 좋아했습니다. 한참동안 개울의 아래 위로 헤엄을 치며 놀았습니다.

 아이들 한 떼가 개울가로 왔습니다. 손에는 삼태기와 그물이 들려져 있었습니다. 어느 아이는 커다란 대야도 들었습니다.

 "야 ! 여기 봐라 ! 고기가 수굴수굴 하다."

 꼬마 하나가 고함을 질렀습니다.

 "그렇군 여기다가 그물을 치자."

 아이들은 바지 가랑이를 걷고는 물속으로 들어 갔습니다. 아래쪽에다 그물을 치고는 위에서부터 돌맹이로 내려 치기 시작했습니다. 텅벙 텅벙하는 소리가 울리고 물이 치솟기 시작했습니다. 개울속은 삽시간에 수라장이 되어 버렸습니다. 물 속에 사는 식구들은 갈팡질팡 어쩔줄을 몰랐습니다.

 "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

 미꾸라지는 재빠르게 바위틈으로 숨어 들며 소리쳤습니다. 피라미 송사리 붕어 소금쟁이 버들치들도 뿔뿔이 헤어져 물풀 사이로 조약돌 밑으로 숨어 들었습니다.

 "에게게 ! 헛탕쳤다."

 아래쪽에서 그물을 지키고 있던 아이가 빈 그물을 치켜들며 말했습니다.

 "한번 더 쫓아보자."

  "그래 그러자."

 큰 아이의 말에 모두 윗쪽으로 몰려가고 그물이 쳐졌습니다. 아이들은 이제 절대로 실수를 하지 않으려고 샅샅이 뒤적이며 물속의 식구들을 아래로 몰았습니다. 고기들이 숨어 있는 물풀을 거둬내고 바위틈은 꼬챙이로 찔렀습니다.돌도 들어 내었습니다.

 "야 이러다가는 모두 죽겠다."

 "어서 도망 가자."

 고기들은 어쩔 수 없이 아래 쪽으로 쫓겨 내려 갔습니다. 거기에는 여러 아이가 그물을 쳐놓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영락없이 걸려 잡히는 수 밖에 없었습니다.

 "야 ! 붕어다."

 한 아이가 손가락 길이만큼 되는 붕어를 잡아 올렸습니다. 결국 붕어는 좁은 대야에 갇혀 버렸습니다.

 "너도 기어이 잡혔구나."

 대야에서 눈물을 찔금거리던 붕어가 금방 잡혀온 미꾸라지를 보고 말했습니다.

 "응 지독한 놈들이야 바위틈에 숨어 있었는데 지렛대를 갖고서 들썩거리는데 배겨낼 수가 없었어 !"

 미꾸라지는 상처를 입어 비늘이 벗겨져 있었습니다. 이어서 버들치도 잡혀오고 송사리도 잡혀 왔습니다.

 "이제 우리는 어떻게 되지?"

  버들치가 슬픈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할 수 없지 나는 추어탕감이 되는 거고 너는 매운탕감이 되는거지……?"

 미꾸라지가 천연덕스럽게 말했습니다.

 "야 그렇게 될지라도 방정스럽게 미리 말하는 것 아니야 !"

 붕어가 핀잔을 주었습니다.

 "나도 좋아서 그러는건 아니었어. 하도 억울해서 농담 삼아 그런것이야."

 미꾸라지도 슬픈 얼굴을 지었습니다.

 "가만 있어 무슨 소리가 들렸어 !"

 가만히 엎드리고 있던 붕어가 말했습니다.

 "그렇군 아주 맑고 인자한 목소리구나."

 "마치 하늘에서 쟁반에 구슬을 굴리는 것같이 들리는구나."

 고기들은 그 소리를 더 들으려고 귀를 기울렸습니다.

 그 소리는 홍련암의 자운 스님이 흔들어대는 요령 소리였습니다.

 아이들은 고기들이 갇혀있는 대야 근처로 몰려 들었습니다.

 "야 오늘 수지 맞았다."

 "그렇군 집에 가져가서 국 끓여 먹자."

 "그럴 것 없어 그냥 고추장에 찍어 먹어도 된다."

 아이들은 각기 한마디씩 지껄이며 군침을 흘렸습니다. 아버지들이 천렵을 하여 잡아 온 고기를 먹어 보았기 때문에 흉내를 내는 것이었습니다. 대야 속에서 이 소리를 듣고 있던 고기들은 그만 질겁을 했습니다. 영낙없이 죽게 되었구나 생각하니 물이 맑다고 뛰쳐나온 것이 후회스러웠습니다. 그러나 이제 어쩔 도리가 없습니다. 여전히 맑은 소리는 계속 들려 왔습니다. 점점 크게 들려 왔습니다.

 이윽고 그 맑은 요령소리는 똑 멎었습니다.

 "얘들아 ! 무얼 하느냐?"

 "아 스님 안녕하십니까."

 "응, 무엇을 하는가 묻질 않았느냐?"

 길을 가던 자운 스님은 아까부터 아이들이 하는 짓을 찬찬히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나무 그늘에 앉아 눈을 감고 불경을 외며 요령을 흔들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은 고기 잡는데만 정신을 쏟아 듣지를 못했습니다. 다만 고기들은 이 요령소리를 듣고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스님이 고기 잡은 것을 야단 칠까봐 가슴을 조리며 우두커니 서 있었습니다.

 "허어 많이도 잡았구나."

 뜻밖에 스님은 그 고기들을 보고 매우 부러워 하는 눈치를 보였습니다.

 "너희들 이걸 어떻게 할 작정이냐?"

 "집에 가져 가서 국 끓여 먹을꺼예요."

 "국을……?"

 "예 아주 맛이 있을 꺼예요."

 "오호 나도 좀 맛을 봤으면 좋겠구나 !"

 "에게게 ! 스님들은 고기를 잡숫지 않는다던데……"

 아이들은 깔깔깔 웃었습니다.

 "그러니까 너희들에게 살짝 말하는 거란다. 그러니 내게 이걸 팔 수 없겠니?"

 "이 고기를 사겠다고요?"

 "그렇지 ! 돈을 많이 줄계 !"

 스님은 주머니에서 동전을 여러개 꺼내어 아이들에게 내밀었습니다.

 아이들은 서로 얼굴을 쳐다 보았습니다. 모두 이게 웬 떡이냐? 어서 팔아 버리자는 눈치였습니다.

 "그래요 스님이 가져 가세요."

 한 아이가 말했습니다.

 "고맙구나 옜다 적지만 받아라 !"

 스님은 아이들에게 돈을 쥐어 주었습니다. 뜻밖에 돈을 받아 쥔 아이들은 싱글벙글했습니다.

 "애들아 !"

 "예 !"

 "앞으로는 사지 않을테니 더 잡지는 말아라. 이 고기들이 불쌍하지도 않니? 너희들을 괴롭히지도 않았는데 너희들은 이 고기를 죽이려 했구나……"

 아이들은 스님이 고기를 먹으려고 사지는 않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만 부끄러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스님은 대야를 들고 개울가로 갔습니다.

 "자 잠시 고생했구나. 잘 가거라 !"

 자운 스님은 고기들을 물에 놓아 주었습니다. 고기들은 꼬리를 살래살래 흔들며 고맙다는 인사를 했습니다. 물에 아이들의 그림자가 일렁거렸습니다. 아이들은 스님을 따라 두 손을 모으고 있었습니다. 한 아이가 아까 받았던 돈을 스님에게 도로 내밀었습니다. 스님은 빙긋 웃으며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습니다.

 "착한 아이들에게 부처님이 주는 용돈이란다. 책도 사고 과자도 사 먹어라 !"

 자운 스님은 홍련암을 오르는 길로 들어섰습니다. 멀리 홍련암이 있는 숲 속에서 종소리가 은은하게 들려 왔습니다.          佛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