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여인<天女>과 사리불이야기

■연구실노트

2009-06-08     관리자

 대승불교의 경전중에 유마경(維摩經)이라는 경전이 있다. 잘 알려진대로 대승경전은 ‘인간석존’이 직접 말씀하신 경전은 아니라고 현대 불교학자들은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대승불교는 불교신자들의 손에 의해 성립된 것이지만, 역시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에 입각한 불교이다. 즉 부처님의 가르침이라고 하겠다.
불교 사상적인 의미에서의 여성해방운동은 이 대승경전이 성립한 시대, 즉 유마경이나 승만경이 성립한 시기에 최고조에 달했다고 보고 싶다. 유마경을 중심으로 여성이 인간으로서 남성과 동등하다는 말씀을 되새겨 보기로 한다.
재가보살인 유마거사가 주인공인 유마경에서는 비어 있음(空)에 대한 간곡한 설명을 해준다. 물질뿐 아니라, 모든 생물을 포함하여 일체법은 그 본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하는 내용이다. 모든 법이 그러하므로 당연히 남성도 여성도 공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뚜렷이 제시해 주고 있다.
‘사리불과 하늘 여인’의 대화는 당시의 대승불교가 여성을 어느 정도로 평가하였는지를 시사해 주고도 남음이 있다.
여기서의 사리불(舍利佛)이란 물론 역사적 인물로서의 그는 아니다. 역사적 인물의 사리불은 지혜가 제일가는 석존의 고제(高弟)이다. 석존의 오른팔로서 크게 활약한 인물이다. 그는 ‘지혜제일’이 의미하는 바와 같이 가장 머리가 좋은 석존의 제자로 꼽힌다. 그러나 여기서는 지혜 제일의 사리불이 아니고, 아주 완고하고 고루한 소승불교(小乘佛敎)적인 사람으로서 묘사된다. 하늘여인인 천녀(天女)로부터 조롱받는 인간으로서 남성을 대표하고 있다.
내용은 대략 이렇다.
유마거사의 훌륭한 설법을 청문한 ‘하늘여인’이 감격한 나머지 홀연히 나타나 공중에 하늘꽃을 뿌렸다. ‘거사’라고 하면 무척 많은 자산을 가진 재가신자를 일컫는데, 유마힐이라는 재가신자가 부처님 가르침을 설법하고 있는 전형적인 대승의 가르침이다. 그 설법은 많은 사람이 함께 들었다. 청중 중에는 사리불같은 대제자가 있었고 보살이라고 불리는 사람도 있었다. 출가재가자 모두 섞여 함께 청문하고 있었다. 그때 하늘여인이 대제자뿐 아니라 아무나 가릴 것 없이 머리위에 꽃을 뿌렸다. 그때 어떤 불가사의한 현상이 일어났다.
천녀가 뿌린 꽃을 보살 몸에 닿았을 때는 모두가 땅으로 술술 떨어졌다. 그러나 대제자들 몸에 닿은 꽃은 끈끈하게 찰싹 달라붙었다. 특히 필사적으로 사리불이 그 꽃을 털려고 애썼다. 이때 하늘여인은 사리불에게 말한다.
“대덕이여, 이 꽃에는 분별(分別)이라는게 없습니다. 당신 스스로가 분별망상을 품고 있을 뿐입니다. 분별 않는게 법에 맞는 일입니다. 여러 보살의 몸에 꽃이 묻지 않는 것은 일체의 분별을 끊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와같은 하늘여인의 말을 들으면서 법담을 나눈 사리불은 약간 불만스러웠던지 다그쳐 묻는다.
“당신은 왜 여자 몸을 바꾸어 남자 몸으로 변하지 않습니까”라고 하늘여인은 대답한다.
“나는 오래 전부터 여자모습을 얻고자 했으나 아직 얻을 수가 없습니다. 무엇 때문에 바꿀 필요가 있을까요. 예컨대 마술사가 헛깨비 여자를 가짜로 만들어낸 것과 같지요. 그런데도 여자 몸을 바꿔 남자가 되지 않느냐고 묻는다면 그 질문이 옳은 것일까요?”
그리고 천녀는 이어서
“일체의 모든 법이 그와 같은 것이어서 정해진 상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왜 여자의 몸을 바꾸어 남자가 되지 않느냐는 따위의 질문은,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라고 하면서 신통력을 발휘하여 사리불을 ‘천녀의 모습’으로 변신시켰다. 그리고 짖궂게 그녀는 말했다.
“왜 여인의 몸을 바꿔 남자가 되지 않지요?”그랬더니 사리불은
“나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여인으로 변해버린 걸요.”라고 하였다.
천녀는 “당신은 지금 여자로 보이지만 실은 여자가 아닙니다. 부처님은 모든 사람들을 남자도 여자도 아니라고 말씀했습니다.” 라고 하면서, 모든 여인의 모양은 ‘있음’도 ‘있지 않음’도 아님을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