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비구 모스크바를 가다(2)

전법기행

2009-06-08     관리자
   이글은 숭산(행원)스님의 폴랜드와 모스크바 포교기행문이다.
〔8〕폴란드 피아 문화관에서
우리 일행은 그곳 (고궁호텔)에서 점심을 하고 오후 6시에 피와 시내 문화관에서 법문을 할 예정으로 되어 있었다. 정시보다 15분전에 문화관에 도착하니 피와선원 간부들이 마중나와 꽃다발 세례를 퍼부으며 환영해 주었다, 회관 안에 들어서니 좌석이 500석인데 벌써 차 있었다. 그 후 오는 사람들은 그야말로 입석이니 서서 법문을 듣는 사람이 200명은 넘어 보였다.  피와라는 도시가 문화인들만이 사는 도시라서 그처럼 많이 모였다고도 하는데, 근자에 이렇게 많은 청중의 모임은 처음이라고 하였다.
나는 설법을 통하여 몇 가지의 문제를 제기했다. 인간은 매일 밥을 먹고 산다. 그러나 왜 매일 밥을 먹느냐 하였을 때 무엇이라 답할 것인가. 이 답을 옳게 할 때 우리 인간은 대도(大道), 즉 인간은 왜 사느냐하는 방향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하였다.
다음에 하늘은 왜 푸르냐? 이것 또한 문제다. 이에 정답을 하게 될 때 우리는 우주의 대진리를 얻게 될 것이다 하였다. 저 산이 내가 산이요, 한 적이 없고 저 태양이 인간들아 나를 태양이라고 불러다오 한일도 없다. 인간들이 제멋대로 이름을 붙인 것이다. 자 그렇다면 하늘은 왜 푸르냐하면 무엇이라 답하겠는가.
다음 설탕은 언제부터 단 것인가. 이것의 정답을 얻으면 우리 인간의 올바른 생활을 발견할 것이다.
인간이 사량 분별을 내지 말고 자기가 당한 일에 찰나찰나 오직 할뿐이라면 그곳에는 내외가 없고 주객(主客)이 사라져 일여(一如), 전일(全一)세계를 이루어 순간순간 완전무결한 인간생활이 이루어질 것이다. 그러므로 위에 말한 3가지 문제를 완전 해결하는 우리 인간이 올바른 진리와 생활을 발견하여 인간과 천상의 복전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해두었다.
모두들 신기하고 환희심에 찬 모습으로 보였다. 법문이 끝났는데도 자리를 뜨지 않고 질문이 쏟아져 나왔다. 나는 일일이 답을 해 주었다. 다들 더욱 신기해하며 참선을 해보고 싶다고들 말을 이었다. 법회를 마치고 간부들과 함께 아름다운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마치고 고궁호텔에 돌아온 것은 밤11시경이었다.

〔9〕 그단스크로 가다
11월 12일 우리 일행은 조반을 먹고 유명한 그단스크(goansk)로 향했다. 그단스크는 폴랜드 제2의 도시다. 공업도시이며, 상업과 무역이 활발한 도시이며, 가장 큰 항구이다.
지금부터 15년전에 공산국인 이곳에서 노동자들이 들고 일어나 공산주의에 대하여 반기를 든 것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도시다. 그것이 자유노조<싸라테리디> 운동이다. 노동자는 단결하여 지배계급을 타파하자는 운동이다. 공산국가는 원래 계급의 타파와 평등과 자유와 민권을 주장하여 혁명으로 이룬 나라들인데 오늘날 공산국을 보면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특수 계급사회이고 평등과 자유는 찾아볼 수가 없으며, 민권은 고사하고 말도 마음대로 못하는 안·이·비·설·신·의(眼耳鼻舌身意)를 모두 봉쇄당한 사회인 것이다.
속담에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왕서방이 가져간다는 격으로 폴랜드가 눈물을 흘리며 겨자먹는 격이 된 모양이다. 이런 사정하에 폴랜드 농민들이 얼마나 권력층을 미워하겠는가. 폴랜드가 세계은행의 빚을 갚으려니 얼마나 고생이 되겠는가. 먹을 것, 입을 것, 살 집 하나 만들기 어려운 경제도탄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노동들이 자유노조를 조직하여 궐기했었다. 노동자·농민을 위한다는 공산국가에서 노동자가 봉기하여 반항을 일으켰다는 것은 공산주의 정책과 그 근본이론에 문제가 있는 것을 여실히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일행은 자동차로 5시간만에 그단스크에 도착하여 발테크법사님댁에 짐을 풀었다. 발테크법사는 그곳 그단스크 선원의 책임자다.

〔10〕 그단스크대학 강단에서
그단스크선원은 아파트촌 12층에 있다. 50평 남짓한 방에 선원을 마련하였는데 불자들이 매일 모여 조석으로 예불하고 정진하고 있다. 이곳에는 법사자격 받은 사람이 15명이 되며, 5계를 받은 사람은 약250명 그밖의 신도까지 합하면 약 700명이 된다고 한다. 모두 젊은 청년들이고 학생들이 많다. 법사 중에는 대학교수, 의사, 변호사 등도 있다.
11월 14일 오후 5시 반에 그단스크대학 강당에서 법회를 가졌다. 3년 전에 왔을 때도 여기서 법회를 가졌는데, 그때는 천2백명이 모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천6백명이 모여 대성황을 이루었다. 나는 설법을 통하여 인권문제를 언급했다. 요즘 세상 사람들이 인권주장을 많이들 한다, 그러나 인간 자신의 견해에 집착하여 그릇 판단하고 있어 인권에 대한 올바른 견해를 갖지 못하고 있다. 편견을 가지고 스스로의 인권을 주장하기만하지 참된 인간의 존엄성을 모르고 있는 것이다. 인권 뒤의 생명권을 착안하여야 하고, 생명권 뒤의 자연권이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모른다. 이렇게 하여 필경 법계평등이라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알게 될 때, 인간이 인권을 주장할 수 있는 자격을 갖게 될 것이다. 인간이 편견에 사로잡혀 대자연을 마음대로 파괴한다면 필경 인간으로서의 권리와 자유와 존엄성을 지키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인권의 문제에서 부처님의 동체대비(同體大悲)에 대한 깊은 뜻을 깨달아야 하는 것이다.
서로 존중하고 협조하고 사랑함으로써 인권을 주장할 권리가 성립되는 것이다.
우리는 이 세상을 인간만의 세상으로 보지 말고 모든 동물과 대자연과 더불어 살고 있는 것을 분명히 인식하여 인간성을 회복하고 법계평등과 대비동체를 증득하여야 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인간의 바른 길과 진리의 생활이 열리며 광명의 세계가 열리게 된다는 점을 나는 설하였다.
모두들 진지하게 들어주었다. 설법이 끝나니 모두들 기쁜 표정들이다. 꿈에서 깨어 허공같은 세계를 알게 되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반가왔다. 외적혁명에 앞서 내적혁명이 더 중요한 것이다.

〔11〕 월서서원에서
11월14일 아침 기차를 타고 폴랜드 수도 월서(warsaw)로 향했다. 12시경 월서에 도착하여 폴랜드 조계종 본부에 오니 1시가 지났다. 여기서 내일 대법회가 예정되어 있다. 일찍이 여정을 풀고 쉬기로 하였다.
11월16일 오후 2시 월서선원에 법회시간이 됐다. 월서선원은 약250명밖에 수용 못하는 법당인데, 500여 명이 모였으니 그 정경이 짐작이 갈 것이다. 꼭 성냥갑 속의 성냥모양으로 꽉꽉 차고도 문밖까지도 사람들이 넘쳐났다.
‘도로타’ 사무총장의 사회로 삼귀의에 이어 ‘안 제이’ 원장의 인사, 그리고 설법으로 들어갔다.
나는 여기서 선에 관하여 얼마간 말했다.
선은 말에 있지 않고 행에 있는 것이다. 옛날 부처님께서 영산회상에서 설법하실 때 수많은 대중이 모여 있었다. 부처님께서는 묵묵히 앉아 계시다가 대중 앞에 꽃 한 송이를 들어 보이셨다. 대중들은 무슨 뜻인지 막막하여 물로 씻은 듯 고요했다. 다만 마하가섭존자가 빙그레 보시고 말씀하셨다. “나의 실상무상 미묘법문을 가섭에게 전한다.”
그러나 삼라만상 두두물물이 모두 묘체(妙體)요, 진진찰찰(塵塵刹刹) 총가옹(總家翁)인데 어느 하나 불이 아니며 법이 아닌 것이 있겠는가,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나의 법을 너에게 전한다 하신 것은 크게 그르친 말씀이라 하겠다. 만일 내가 마하가섭존자라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부처님 저는 부처님법이 필요 없습니다. 나도 법을 가지고 있습니다.’
내가 만약 이렇게 말하였더라면 부처님께서도 좀 곤란했을 것이다. 부처님께서 꽃을 들고 마하가섭이 미소를 지었으면 그것으로 벌써 일은 다 끝난 것이다. 왜 부처님께서 뱀을 그리고 다리를 붙이느냐 말이다.
나는 말을 이었다.
대중이 만일 부처님이시라면 마하가섭이 빙그레 미소를 지을 때 무엇이라 하겠는가. ‘이것이 오늘 대중에게 드리는 숙제올시다. 잘 참고하고 모르는 의심 덩어리를 자나 깨나 언제어디서나 놓치지 말고 정진하여 자성을 깨달아 부처님께서 드신 꽃을 모두 나의 꽃으로 만들어 지혜의 대광명을 밝혀주기 바란다’했다.
참석한 대중들에게 커다란 외적세계에서 보다 내면세계에서 알맹이를 얻고자 하는데 열심인 듯이 보였다. 그것은 외적으로 너무나 오랫동안 실망이 많고 불안이 계속돼 왔기 때문인 것같다. 국가적으로 보면 대국사이에 끼어 우리 한국모양으로 언제나 침범 당하였고 사회적으로는 카톨릭 국가로 95%가 신을 믿고 있다. 이 나라는 오랫동안 귀족사회가 지배해 왔다. 그리고 오늘날엔 공산국가가 되어 인간이며, 진리이며, 어떤 것이 올바른 생활인가 헤매고 있는 것이다. 이 문제를 향한 욕구는 타오르는 불기둥처럼 뜨겁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이 인내심과 믿음과 정진력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닌가 생각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