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구경

나의 인생을 결정한 불교서

2009-06-08     관리자
 
불경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고만 하면 괜히 송구스러운 것 같고 부끄러워지며 어딘가 기어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다.
아마도 본인이 상식으로나마 알고 있는 불도를 진실하게 닦고 있지 못함 때문인가 보다.
매일 해보려고 노력했던 108배도 그만 둔 지 오래됐고, 큰 스님께 받은 화두도 진지하게 오래 잡고 있지 못하다.
선을 해보려고 하면 망상과 잡념이 앞을 서고 관음주력 또한 꾸준하게 하지 못했다.
올해는 유달리 잡다한 일에 매달려 마음은 매주 절에 가야지 하면서, 실행하지 못하고 한해를 다 보내는 것 같아 아쉽기만 하며 아직 깊어지지 않은 겨울이 더 춥게만 느껴진다.
사실 나는 중•고등학교 6년을 크리스찬 학교에 다녔고 매주 성경시간, 예배시간 그 이외의 성경교리 공부에 많은 참여를 하였었다.
그래서인지 오히려 성경에 관한 이야기는 쉽게 대장 체면치레는 할 것 같은데 불교는 혼자 느낀 것이 많아서인지 더욱 부끄럽기만 하다.
역시 어릴 때의 체계적인 교육이 중요하다는 것을 재인식하며 요즈음 불교유아교육에 힘쓰시는 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리고 있다.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불가의분위기도 분위기이지만,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도 가 봐야 한다며, 성경도 알고 교회도 알아야 불교의 깊고 깊은 참 가치와 의미를 스스로 더 느낄 수 있을 것이라며 자신 있게 교회 다니는 것을 말리지 않으셨던 어머님과의 의리(?) 때문에도 불교를 버리고 다른 종교로 개종해 보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잘못한 일이나 숙제 안하고 노는 것을 꿰뚫어 보시고 계신 듯한 스님손님들이 조금은 무서웠고, 절에 들어가는 입구의 사천왕들은 가끔 꿈에서 어린 나를 괴롭혔으며 더군다나 옛 절의 화장실들은 어릴 때 즐겨 쓰던 ‘몽당귀신’이란 단어와 결부, 혼자 무서워하며 사탕 주던 교회에 친구 따라 가보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런 어릴 때의 추억은 어린 마음에도 탈 불교는 아니었고, 쉽고 정확한 불교의 전달이 없었음이 지금도 아쉽게 생각된다.  지금도 불자로서 깊게 성숙하지는 못하였지만, 아직 완전 포기나 실망은 하고 있지 않다.
조금 철이 들면서, 나이가 하나둘 더 보태지면서는 불교와의 인연이 얼마나 소중하고 감사한 것인가를 재인식하며, 무섭게만 느껴졌던 어떤 부분 부분들이 든든하며 훈훈하게 느껴지며, 삐거덕거리는 화장실의 나무쪽들은 고향 같은 푸근한 느낌마저 준다.
복잡한 인생살이에서 그나마 절이나 선을, 염불을 하며 잠시 정신을 쉬어 갈 수 있고 덕있는 법을 배우며 정한 마음을 기른다는 것은 우리 불자인의 큰복이 아닌가 잠시 생각해 본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입학하기 전, 우연히 책방에서 한문을 쉽게 한글로 해석해 놓은 [법구경]을 한 권 샀었다.
그때 제대로 깊은 뜻이나 이해하며 읽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그 책을 어떤 인생의 교과서 같은 감동으로 몇 번 되풀이해서 읽었었다.
법구경을 가까이 하면서, 온통 집식구들이 관세음보살, 아미타불 하며 부처님을 받들어 모시는 마음을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고, 새벽 세시면 일어나셔서 염불을 외우시던 노 할머니의 마음도 이해할 것 같았다.
이 한 권의 책이 이렇듯 큰 가치가 있고 많은 뜻과 감동이 있는데 하물며… 팔만 사천 경 이상을 설하였으니……??!…?!
하는 생각을 하면 사실 자의적으로 부처님에 대한 첫 번째 존경심인 것 같기도 하다.
어른들이 시켜서 하던 절이 스스로 하고 싶어졌고, 세월이 지나 읽으면 읽을수록 새로운 의미가 진하게 마음으로 느껴졌다.  법구경을 읽은 것이 계기 되어 다른 경도 간간히 읽기 시작하였고, 여러 가지 의미에서 나에겐 특별한 경전이었다.
아주 간단한 말속에 요긴한 뜻이 많고 어느 유명한 시인의 싯구보다 사람을 강화시키며 말씀하신 비유나 글귀가 아주 실제적이어서 현대를 사는 우리 생활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 같다.
법구경을 설하신 석가모니 부처님은 물론이거니와, 이 경을 모아 엮으셨다는 인도의 법구(法救)님도, 한문으로 번역했다는 오나라의 ‘유기난’들께도 머리가 저절로 숙여진다.
어떻게 그렇게 많은 경우 여러 심리를 꿰뚫어 보시고 이렇게 수없는 예를 들으셨는가 생각해 보면 법구경은 견줄 데 없는 심오한 시집이며, 법을 구하는 중생들의 등불이라 생각된다.

화가나서 읽을 땐
화를 달래는 싯구가 있고,
욕심을 부릴 땐
욕심을 재우는 글귀가 있다.
실망하고 있을 때
용기를 주는 싯구가 있고,
자만할 땐, 겸손을
가르치시는 글귀가 있다.
‘심위법본 심존심사’
(心爲法本, 心尊心使)
마음이 모든 일의 근본이 되며, 마음은 주가 되어 마든 일을 시킨다(心爲法本, 心尊心使)는 [쌍서품]의 첫 구절은 마치 중생살이의 모든 물음과 대답이 함께 있는 듯하다.  마음자리가 그만큼 중요함을 강조하신 듯한데 구절구절 가슴을 파고드는 것 같다.
지혜로서 깨닫기를 간절히 바라셨고, 깨닫지 못할 때의 엄한 경고도 계셨다.
허영과 욕심 버려서 마음의 안정 갖기를 원하셨고, 정신에도 물질에도 집착하지 않는 방법을 가르쳐 주셨다.
내 자신도 읽고 듣고 했어도 행하지 못함에 부끄러움을 느끼며 불국토가 되기를 기원하여 본다.

雖誦習多義 放逸不從正
(수송습다의 방일부종정)
如牧數他牛 難獲沙門果
(여목수타우 난획사문과)

경전을 아무리 많이 외워도 행하지 않는 방일(放逸)한 사람은, 남의 소를 세는 목자(牧者)와 같아 사문(沙門)된 결과를 얻기 어렵다.    <불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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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대학교 2년 수료. 미국 메샤츠컬리지 오브아트에서 학사, 미국 로드아일랜드 스쿨오브디자인에서 석사과정을 졸업했다.
바그다드 세계미술대회 동상. ‘88 미술기자상, OSAKA TRIENNIAL '90특별상을 수상한 바 있으며 현재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부교수, 대한민국 산업디자인전 추천 작가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