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古寺의 향기] 기허당 충절의 구국혼이 깃든 공주 갑사

고사의 향기/충청남도 공주군 계룡면 갑사(甲寺)

2007-05-17     관리자

십이월 초겨울의 상큼한 내음은 그지 없는 고사(古寺)의 향취와 함께 더욱 더 화사히 객을 맞이 한다. 계룡절경의 일미(一味)를 더해주고 있는 공주 갑사(甲寺). 조선초기 학자 서거정(徐居正)은 공주의 십경(十景)중 하나인 계룡산세를 이렇게 노래했다.

"계룡산 높고 푸른 층층 솟았는데/ 맑은 기운 금실금실 장백에서 달려왔네/

산에 못이 있으매 용이 서렸고/ 산에 구름 있으매 만물에 혜택주리.

전 날에 시험삼아 산속에 놀아보니/ 신령함이 다른 산과 판이 하더라.

마침내 비를 지어 천하에 혜택줄 제/ 용은 구름 몰고 구름은 용 따르리."

닭 볏을 쓴 용과 같다하여 이름한 계룡산(溪龍山)은 [삼국유사]에는 신라 5악(五岳)의 하나로, 조선시대 이래로는 [정감록]과 결부된 민간신앙으로 화재가 많은 곳이다. 봄에는 춘산백화(春山百花), 여름에는 녹음방초(綠陰芳草), 가을에는 만산홍엽(滿山紅葉), 겨울에는 심계백설(深溪白雪)로 일년내내 절경을 이루는 계룡의 연천봉(連天峰) 서편에 갑사(甲寺)는 자리한다. 충남 백제권에 유서 깊은 고사(古寺)로 백제 구이신왕(久爾辛王) 원년(420년)에 아도(阿道)가 창건했다 전한다. 그러나 아도는 그보다 훨씬 먼저 죽었기 때문에 아마도 갑사는 아도의 후계자들에 의해 세원진 것으로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그 뒤 위덕왕(威德王) 3년(556년) 혜명대사(惠明大師)가 중건을 하고, 다시금 의상대사(義湘 大師)가 화엄도량을 설치하여 화엄종의 10대 사찰로 위엄을 갖추었다. [동국여지승람]에는 갑사가 계룡갑사(溪龍岬寺)로 표기되어 있어, 이는 후에 갑(岬)을 갑(甲)으로 고쳐 이름하게 되었음을 엿볼 수 있게 한다.

'갑옷'이란 뜻에 갑(甲)이라는 이름이 말하듯 갑사는 원래 '무관의 터'였다 한다. 옛부터 갑사 부근 지역에서는 장사가 많이 배출되기로 유명했고 임진왜란때 크게 활약한 승병영규대사도 그분들 중 한 분이다. 갑사 왼편에 자리한 표충사(表忠祠)는 장수 영규대사(靈圭大師)의 영정을 모신 곳이다. 잘 알려진 바대로 신력(神力)이 있고 선장(禪杖)을 가진 대사는 청련암(靑蓮庵)에 기거하면서 화살과 창을 직접 만들고 승병 수백명을 모집하여 여러 장수와 함께 청주의 왜적을 크게 무찌르고 승병대장으로서의 구국의 심혈을 기우려 천년고사의 기풍을 혼신의 구국충절로 이어지게 한 승장이었다. 충절의 열정이 식지 아니한 것인냥 갑사 진입로는 잘 생긴 초겨울 나무들이 건장하게 숲의 거리가 5리나 된다고 이름한 '오리(五里)의 숲'을 이뤄 더욱 장관이다. 이 오리길을 지나면 '계룡갑사'의 편액이 붙은 강당과 조선 선조때 중건하였다는 대웅전 그리고 정묵당과 삼성각이 자리하고 앞 계곡을 건너 원래 갑사의 터였다는 대적전(大寂殿)이 고색 창연히 객을 맞이한다. 보물 제 257호인 갑사부도(甲寺浮屠)는 대적전 뜰 앞에 바로 있다. 신라말에서 고려초기의 부도로 8각 원당형(圓堂形)이며 기단부에는 연잎이 피어나는 생동감 넘치는 조각이 되어있다. 높이는 2m. 사자, 사천왕상, 천인 등이 탑면에 조각되어 있고 옥개는 기와지붕 모양으로 처리되었다. 부도가 자리한 곳에서 돌계단을 타고 내려오면 철당간이 하늘을 뚫고 꼿꼿이 솟아 있다. 이 당간과 지주(幢竿 支柱 : 보물 256호)는 신라 문무왕 20년(680년)에 건립된 것이라하나 확실치 아니하고 통일신라시대 것이라는 설을 정설로 믿고 있다. 기도 때나 법회의 의식이 있을 때 사용하는 당(幢)은 절 문앞에 꽂는 기(旗)의 일종으로 괘불(掛佛)이라고도 한다. 우리나라에 몇 안되는 당간과 지주로 갑사의 것은 중요하다.

갑사에는 보물이 많다. 부도와 당간지주가 있고 또 월인석보판목(月印釋譜板木)과 동종(銅鐘)이 있어 더욱 소중하다. 세종 29년(1447년)에 간행된 석보상절(釋譜詳節)과 세종 31년에 간행된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 을 합편(合編)하여 세조가 1459년에 간행한 것이 '월인석보'이다. 갑사의 월인석보판목은 24권 중 21권에 해당하는 목판으로 31장이 현재 남아 있다. 세조 때 간행된 것보다도 110년 뒤의 복각판(復刻板)인 월인석보는 쌍계사에서 보존하고 있던 것을 80여년 전부터 갑사가 소장하게 된 보물 제 582호이다. 다음으로 갑사 동종(銅鍾 )은 선조 17년(1584년)에 주조된 것으로 종 꼭대기에는 사실적 수법으로 용 두마리가 용뉴를 만들고 구름위에는 지장보살이 조각되어 있다. 36개의 유두(乳頭) 가 불거져 있고 갑사사(岬士寺)라는 글이 씌여져 있다(보물 제 478호).

이처럼 갑사는 경내로 이르는 보기 드문 오리의 숲이 있어 아름답고 많은 보물이 있어 귀하며 또 남매탑이 있어 더욱 정겹다. 호랑이의 결초보은의 갸릇한 정성이 깃든 남매탑은 동학사와 갑사의 중간 기점에 7층의 오라비탑과 5층의 누이탑으로 나란히 서 있다. 남매의 구도의 열의와 청정한 불법 수행은 탑을 찾는 이로 하여금 옷깃 여미어 두손을 모아 고개숙이게 한다.

갑사에서 동북방으로 1.3km의 산길을 오르면 신흥암(新興庵)이 있다. 이곳 암자에는 인도대왕의 신통력으로 만들어졌다는 천진보탑(天眞寶塔)이 있어 신비함을 나타낸다. 자연석 세 덩어리가 모여 탑을 이룬 것으로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고 탑에서는 여러번의 방광(放光)이 있어 경이로움을 보였다 한다. 최근에도 탑에서 방광을 하는 것을 헬기를 타고 지나가던 외국인이 촬영을 해 보내와 인력이 아닌 신력으로 탑에 세워졌음을 한편으로 확신케 하였다.

"천진보탑이 있는 신흥암을 복원하고 선방을 60여평의 크기로 내년에 불사를 시작하려 합니다. 3년 이내에는 갑사길이 동학사 입구에서 뚫리게 되고, 40분 거리의 대전권이 되기 때문에 갑사를 찾는 참배객들도 많아지리라 생각됩니다. 백제문화권의 중심이 되었던 이곳이 다시금 복원되면 새로운 면모의 고사 갑사가 되겠지요. 생각만해도 뿌듯한 일입니다. 앞으로 기허당(騎虛堂) 영규대사가 계셨던 청련암을 복원 할 예정이고, 또 이곳 갑사공터가 몇만평이 있어 전국신도를 위한 수련장을 만들어 보려고도 합니다. 2,000여명 정도를 한꺼번에 수용할 수 있도록 하여 불법을 펴는데 좀 더 노력을 기우릴 생각입니다. 정묵당은 지금 불사중이고····. 내년에는 대웅전과 큰방(진해당)을 불사하려고 합니다. 대전에서 외진지역이라 신도들도 얼마 없고 불교 포교에도 별로 신경을 못쓰는 실정 이었습니다만 앞으로는 좀 더 적극적으로 불법을 펼칠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갑사주지스님이신 철웅(哲雄)스님의 말씀이다. 유구한 역사와 구국충절의 옛 기백을 이어 웅지를 품고 있는 갑사의 이러한 불사염원은 주지스님의 말씀대로 꼭 이루어지리라는 확신이 은은한 겨울의 향내음 처럼 스며든다. 佛光

갑사는 충청남도 공주군 계룡면 중장리 계룡산 국립공원 안에 있다. 서울에서는 강남고속버스터미널에서 공주행 버스를 이용하고, 다시 공주에서 갑사까지 시내버스(30분 간격)를 이용하면 편리하다. 전화번호(0416) 52-89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