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송이 연꽃을 피우기 위해

독자의 글

2009-06-06     관리자
 
나무 마하 반야 바라밀.
저는 스님과 법사님의 인도로 지옥고에서 한 줄기 대광명의 불법을 접하고 새롭게 대어나고자 오늘도 참회진언(옴 살 바못자 모지 사다야 사바하)을 독송하면서 한 송이 연꽃을 피우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자만과 삼독심(탐 • 진 • 치) 때문에 웃음과 눈물 속에서 불타는 저 집과 같이 자신을 태우고 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서있는 저는 각성(覺性)이라는 불명을 가지고 반야정근 속에서 참회를 하고 있습니다.
지난 과거에는 모든 이들의 손가락질을 받는 흉악범(강도)으로서 지금 현재는 이곳 목포 교도소에 수용돼 있습니다.  잘못된 사고방식과 종교를 모르면서 살아온 지난날은 고통의 연속이라면, 지금 현재는 비록 육신의 자유는 없지만 기쁨과 행복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것은 저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시며 좋은 말씀과 불심을 닦아 가도록 지도하여주면 불광법회 광덕 큰스님과 자신 부회장님의 헌신적인 정성의 대가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저는 1984년에 징역 12년이라는 형(안양 교도소)이 확정되어서 대전 교도소로 이송 온(1985년 2월 14일)날부터 독방에서 외롭게 지내왔습니다.  그러나 저는 저에 대한 잘못을 반성하지 않고 육신의 자유가 없는 현실을 거부하고 이웃을 미워하고 시기하는 나쁜 사고 속에서 저 자신을 학대하고 생을 거부하는 자세로 지내고 있었습니다.
자작자수(自作自受)라는 말이 있듯 자기가 지은 대로 받는다는 이치를 모르고 눈물과 자포자기 속에서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대전 교도소는 부처님 말씀을 통해 교화(敎化)를 하는 곳입니다.  부처님 말씀을 통해 세분의 선생님(여청흥, 손영덕, 송원석)께서 불교에 대한 말씀과 불교성전을 가지고 공부하라는 간곡한 말씀을 누누이 들려 주셨습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저의 생을 보다 올바르게 살아가야겠다는 용기를 갖고 지난날을 참회하며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특히 부처님 일대기를 보면서는 수행하는 자세를 늦추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세 분 선생님께서 갔다준 경전들은 한문으로 되어 있었고 국졸인 저에게는 너무나도 무리가 왔습니다.
한 쪽에 놔두고도 보지 않는 저에게 불교법회에 가보라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법회에 참석하여 [부모은중경]을 통한 효에 대한 설법을 듣고 눈물을 흘려야 했습니다.
법회를 마치고 돌아온 뒤 부모님과 처와 자식(아들)을 생각하니 죽고 싶은 심정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죽는 것도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현실이 괴롭기 짝이 없었습니다.
그러한 저에게 여청흥 선생님께서는 이원섭 선생님의 번역서인 법화경(원문과 국어)한 권을 주시면서 독경하며 부처님께 일심으로 기도하며 공부하라고 하셨습니다.  법화경의 새로운 세계를 접하면서 발심할 수가 있었습니다.
특히 외로운 저에게 마성 스님(한국불교대학)과 김호성 법사님(보조사상연구원)과 자매결연을 맺어주면서 공부를 열심히 하라고 하셨습니다.
스님과 법사님은 서신으로 때로는 면회로 공부하는 방법과 불자의 바른 자세를 지도하여 주었습니다.  용기와 힘을 낸 저는 공장출역을 하면서 불교법회에 열심히 참석하였고 불교총무라는 책임을 맡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웃(동료법우님)에게 부처님의 사상으로 마음을 돌이키라는 전법을 펼치면서 새로운 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지역(대전) 자체가 타 종교에 비하여 열세에 있는 불교법회인지라 포교 자료가 너무나도 없었습니다.
저는 스님과 법사님께 상의를 하였으나 그 당시에는 두 분(스님은 수행정진, 법사님은 동대 대학원 인도 철학과) 다 공부를 하시는 입장이고 보니 큰 힘은 되지 않았습니다.  이에 다시 용기를 내어서 포교지를 발행하는 각 단체에 편지로 호소를 했었으나 이곳에 대한 인식부족으로 거의 손길이 닿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기도의 힘이 부족한 것으로 알고서 법우님들과 기도로서 정진하는 저에게 법륜사(편집부 기자님 존함은 모름) 기자 분께서 그 곳을 도와주시고 힘이 되실 분은 불광사 광덕 큰스님이시니 용기를 내어서 편지를 하라고 하였습니다.
이에 죄인의 위치를 잠시 망각한 저는 장문의 글월을 드렸더니 불광법회 자신 부회장님께서 포교하는 방법과 불서지급을 약속하시며 마하반야바라밀 공부를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처음에는 의심을 했지요.  불교의식 자체가 마하반야바라밀경을 독경하면서 하는데 그 270자 속에 무슨 큰 공부가 될까 하고 반문하는 저에게 반야바라밀다의 깊은 지혜와 이치를 설명해 주시면서 큰스님이 쓰신 [반야심경 강의]를 보내주셨습니다.
그 깊은 이치와 반야세계를 접한 저는 눈물을 흘리며 조석예불과(법등십과) 반야정근 속에서 지장참회를 드리며 저의 죄는 참회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저를 성숙시키는 하나의 과정이었고 업보를 없애는 길이라는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시련은 저의 용서하지 않았습니다.  사랑하는 아내가 이 혼을 요구해올 때 저는 실의에 빠져서 조용히 참선을 해야 했습니다.
이것이 인연에 의한 업보라면 순순히 받아들이고 불(佛), 법(法), 승(僧) 삼보전에 간절한 참회를 하였습니다.
원망하던 마음이 행복을 기원하는 마음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러자 몸도 마음도 가벼워지고 그 인과를 받아들이면서 오히려 수행생활에 최선을 다 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부모님과 자식이 받는 고통을 생각하니 눈물이 앞을 가려서 큰스님과 부회장님께 상의를 하였답니다.
부회장님께서는 일심으로 참회하면서 그분들의 행복을 기원하라고 하였습니다. (기도 덕분에 제 아들은 건강하게 시골에서 잘 자라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저는 인과를 보았습니다.  남을 괴롭히고 내 자신이 편할 수는 없다는 원칙을 체험하였습니다.
남의 가정을 파탄으로 이끈 크나큰 죄를 지심참회하면서 법회활동과 포교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운동장에 계시는 관세음보살님 석불상 주변에 나무와 꽃을 가꾸면서 신심(信心)을 쌓아가고 있습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