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의 탄생과 당시의 시대적 배경

특집/부처님은 누구신가

2009-06-05     관리자

 인간은 그가 자란 환경에 절대적 영향을 받는다. 물론 위대한 인물은 시대의 조류에 휩쓸리지 않고 꿋꿋히 새로운 사상을 창조하기도 하지만, 그 창조란 것도 그 시대의 환경과 관계없이 생겨날 수는 없다. 이렇게 볼때 부처님의 가르침 여기 당시 인도의 사회적 배경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며 이루어졌을 것이다. 우리가 부처님을 좀 더 자세히 알고 그분의 가르침을 올바로 이ㅐ배경ㅇㄹ 사려보는 것은 매우 중요한 작업일 것이다.

 당시의 시대적 배경

 유라시아 대륙 남단에 위치한 인도는 광활한 영토와 다양한 기후를 가진 반도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5000여년전 북쪽 유목민인 아리안족은 원주민인 드라비다족을 정복하고 정착민이 되었다. 아리안족이 유목생활을 할 때 이들은 자연신을 섬겼지만 갠지스강 유역에 정착하면서 창조신인 브라흐만을 섬기게 되었고 이 때 계급제도인 카스트 제도가 완성되었다. 카스트 제도는 제사를 모시는 최고 게급인 브라흐만, 무사인 크샤트리아, 평민인 바이샤, 노예인 수드라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위 세 계급은 아리안족이 분화한 것이고 수드라는 피정복민으로 이루어졌다. 이제도는 인간의 사회적 지위를 출생신분에 따라 결정하는 인간 차별제도로서 브라만 계급의 독점적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되었다.

 지배게급인 아리안족은 빙ㄱ한 농토와 토착민을 노예화시켜 얻은 노동력으로 생산의 급격한 증대를 가져와서 풍됴로운 삶을 유지할 수 있었다. 평화시대가 오래 지속되면서 지배 계급의 인구는 급격히 증가하고 노예의 수가 격감하자 지배계급 내부의 사회적 갈등이 표면화되어 아리안족끼리 전쟁이 발발하게 되었다. 같은 신을 섬기는 동족간의 전이니 전쟁의 승패는 신의 능력이 아니라 잘 훈련된 병사와 발달된 무기에 의해 좌우되었기에 브라만 계급의 권능은 하락하고 크샤트리아 게급의 권위는 상승하였다. 당시 인도에는 16개의 대국과 300여개의 소국이 있었는데, 강대국이 패권을 행사하기 시작하면서 국가간에 전쟁이 그칠사이 없이 계속되고 그 살상 행위는 잔인하기  그지없었다. 종족간에 분노와 증오가 점증하고, 심지어는 종족 내부의 권력 투쟁도 쉼이 없어서 급기야는 아들이 왕위를 얻기 위해 아버지를 죽이는 지경에 이르렀다.

 경제구조에도 변화가 와서 종족과 국가간의 통합으로 지역간의 폐쇄성이 사라지면서 , 도시간의 상업이 발달하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일부 바이샤 출신의 상인들이 거부장자가 되어 경제권을 장악하게 되었고 이들은 독점적 이익을 보장 받기 위해서 왕과 결탁하여 정복 전쟁을 더욱 부채지라기에 이르렀다. 사회적 지위가 신분보다 권력과 부에 의해 평가되기 시작하면서 전통 신분계급의 질서의 붕괴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신흥 지배층의 사치와 향락은 절정에 이르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브라만 계급에도 영향을 주어서 브라흐만의 계급적 순수성을 더욱 강조하는 권위주의자, 종ㄱ의식과 계율을 강조하는 금욕주의자, 철학적 사상을 강조하는 관념론자, 세속적 이익에 편승하여 왕의 신하가 되는 현세주의자등으로 분리되었다. 이런 일련의 변화로 이제 더이상 브라흐만에 의한 난세의 구원을 기대할 수 없게되자 새로운 사상가들이 나타났으니 소위 사문의 출현이다. 이들은 창조신인 브라흐만의 존재를 부정하고 브라흐만 게급의 부패성을 정면으로 공격하였으며 권선징악의 윤리관마저도 부정하였다. 그들의 이론은 인간의 운명은 날때부터 이미 정해져있다. 혹은 인간의 어떤 행위에도 선,악의원인이나 과보가 없다. 혹은 인간의 행, 불행은 우연히 결정된다는 것으로 브라흐만 신에 의해 인간의 운명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들의 주장 역시 브라흐만의 절대적 권위를 부정하는데는 일조를 담당했지만 인간의 운명을 인간의 의지로 개조할 수 있다는 생각에는 아직도 미치지 못하여 또 하나의 운명론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시대적 요청

 전쟁, 기아, 차별 등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던 민중들은 이런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게 정법으로 나라를 통일하고 다스려줄 지도자, 즉 전륜성왕의 출현을 간절히 바라게 되었다. 또 지배 계급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은 이런 사회적 혼란 속에서 어떻게 사는 것이 바르게 사는 것인가하는 진리에 대한 응답을 해줄 분을 원하게 되었다. 많은 사상가들이 각각의 주장도 하였으나 누구의 말이 옳은지 아무도 알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일체를 깨달으신 부처님이 이 땅에 오시어 어두운 밤에 등불을 밝히셨듯이 진리의 길을 일러주길 간절히 원하게 되었다.

 석존의 탄생

 이러한 민중의 희원에 응답하여 부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이다. 히말라야산 기슭 작은 성읍국가 가필라성의 성주인 정반왕의 부인은 해산을 하기 위해 고향인 천비성으로 가던 중 룸비니 동산 무우수아래에서 부처님을 낳으셨다. 부처님의 탄생 시기에 관해서는 이설이 분분하나 여기서 우리는 부처님 탄생의 의미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부처님은 태어나자 사방으로 일곱 걸음 걸으시고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고 외쳤다. 일곱 발자욱은 육도의 윤회에서 벗어나 해탈을 성취했다는 의미이고, '천상천하 유아독존'에서 '천상'이란 인간의 운명을 좌우하는 신적 존재, 형이 상학적 존재를 뜻하며, '천하' 란 인간 사회에서 인간을 구속하는 계급, 제도, 권력, 재물 등을 가리킨다. '나 홀로 존귀하다' 는 것은 인간이 이 모든 것들의 중심임을 선언한 것이다. 인간의 운명을 좌우하는 그 어떤 신적 존재도, 물질적존재도 부정하고 인간이 이 세계의 주인이고 자신의 주인임을 밝히셨다.

 인류가 이 세상에 출현한 것은 오래전의 일이지만 부처님 출현 이전의 인간은 단지 동물에 불과했다. 인간은 자연과 신, 그리고 인간 스스로가 만든 사회적 제도에 속박받으면서 진정으로 이 세계의 주인이 되지 못했다. 부처님이 이 땅에 오심으로 해서 인간은 참으로 인간다워졌다. 내 운명의 주인이 내가 되지못했고 어떤 절대자나, 혹은 전생의 업에, 혹은 우연에 맡겨진 이런 현실을 잘못된 것이라 가르쳐 주셨고 인간의 주인은 인간이며 나의 주인은 나임을 가르쳐 주셨다. 오늘 우리가 부처님의 탄생을 기해서 다시 명심해야 할 것은 부처님은 역사속에서 가장 어려운 혼란기에 태어나셔서 자신은 직접적인 고통을 받지않는 신분으로 태어나셨지만 대중이 겪는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받아들여 그 대중의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서 대중 속으로 함께 동참하신 분이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모든 인간이 인간을 구속하는 모든 것으로 부터 해방되어 누구나 다 이 세계의 주인이 될 수 있다는 인간해방의 길을 터 놓으신 분이라는 것을 상기해야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