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이시여! 끝없이 중생들을 굽어 살펴 주시옵소서

특집/나의 이 원이 겨레를 구하리니

2009-06-05     관리자

사람의 생각은 변한다.
부딪치는 경계에 따라 좋고 싫은 감정이 생겨나고, 견고하게 지키려는 신념과 결심도 한 순간에 변하는 것을 일상생활로부터 자주 발견하게 된다.
사람의 몸도 마찬가지다.
젊은 시절의 청춘이나 40대의 사망률을 구분 짓지 않더라도 건강은 평생토록 유지하기 어렵다는 것은 생노병사의 이치를 알게 되면 더욱 쉽게 받아들일 것이다.
나에게는 이러한 두 가지 조건이 한 번에 변하는 계기가 있었다. 그것은 “불교만이 인류 구제의 큰 가르침이요, 인생과 우주를 두루 설명할 수 있는 논리체계다”라는 종교관과 간다고 말하기 전에 저 세상으로 떠나는 사람들과 달리 80살의 장수만세를 장담하였던 나의 미래상이 동시에 무너지고 비참하게 부서졌던 옹벽이었다. 부모님의 반대와 힘든 행자생활을 뒤로하고 수계를 받는 날 드디어 출가 승려가 되었다는 기쁜 마음을 잊을 수 없다.

80년대 동국대학교 캠퍼스 시절은 불교공부의 난해함과 달리 분출하는 사회의 민주화 열기로 보수적 사고방식들과 갈등을 뚜렷하게 경험하였고, 타 종단에 비해 열세적인 종단활동은 젊은 스님들의 가슴마다 온통 분노의 질타소리를 듣게 되었다. 나 역시 예외일 수 없었다.
“이래서는 안되지”라며 반성의 회심은 곧 바로 포교의 황금어장과 같은 군대에서 현장실습을 하게 되었다. 이것은 하나의 출발점이었다. 잘 짜여진 조직 속에서 계획하고 보고하며 일을 추진하는 법사의 업무는 살아있다는 자기확인의 또 다른 과정이었다.

그러나 불자를 만나고 법회를 인도하며 행사를 주관하는 즐거움은 잠시였다. 뜻하지 않은 교통사고로 두 달동안 치료를 받았던 병원생활의 아픈 추억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거룩하신 부처님께 쾌유를 비는 군불자의 간절한 기도와 인연있는 스님들의 뒷바라지도 소용없이 군복을 벗어야 한다는 소식에 나는 한없이 슬픈 감정이 복받쳐 무작정 흐르는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아- 부처님, 그래도 저는 걸어 다닐 수 있고, 사물을 매만지며 물체를 분간할 수 있는 다른 한 눈이 있습니다. 저에게 육신의 허망함을 깨닫게 하시고, 상처받는 중생들이 존재하고 있음을 보여주셨으니 님의 가피를 무엇으로 갚겠나이까?”

정말로 한 순간에 나는 변했다. 다른 신앙의 절대적 믿음을 가진 사람들도 이해하게 되고, 겸손한 출가 수행자로서 평등한 마음을 베풀며, 수 많은 억겁속에 흥망성쇠의 인간역사를 배워야 한다는 수진법문과 마주치게 되었던 것이다.
“한 명의 친구가 있을 때 살기는 훨씬 쉬워집니다” 이것은 사랑의 전화 메시지이다.
인간을 이해하고 상대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객관적인 입장에서 올바로 설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전화상담원 활동은 구체적인 중간지점으로 나타났다. 밤 10시부터 다음 날 아침 8시까지 철야상담을 하는 동안 나는 승려의 신분을 고집하지 않는다. 오히려 다양한 중생들의 삶을 사실 그대로 수용하고 격려하는 등불이 되고 있다는 뿌듯함에 놀라곤 한다.

그렇다. 부처님은 한 분일 수 없다. 중생들의 번뇌가 끊임없이 윤회의 수레바퀴로 맴도는 육도세계 만큼이나 무량한 것이다.
“당신의 이야기를, 항상 열려 있습니다. 답답하면 전화하세요. 자비의 전화 737-7374” 이것은 자비의 전화 상담원 수료식에서 열심히 부르던 노래이다. 지난 3월 10일 불교계에서도 복잡한 사회문제를 진단하는 전문적인 전화상담기관의 필요성을 느끼고 여러 스님들과 재가 불자들이 힘을 모아 개통식을 가졌다.
불교를 알고 싶다는 남자, 공부보다 놀고 싶다는 어린이, 노름에 빠진 남편이야기, 부모 모르게 임신한 아가씨의 버림받은 사연···.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종교간의 갈등이다. 조상을 못 모신다는 며느리, 말세가 다가왔다며 기도원을 좇아다니는 아내, 신자끼리만 어울리는 편협한 이웃, 스님을 좋아한다는 보살, 어머님의 기복신앙을 낮게 보고 돈의 위력을 강조하는 자식···.
그러나 모두가 현실이다. 세상의 좋다는 성구와 명언은 종교가 독차지하고, 신자들 사이의 맹목적 싸움을 신앙심으로 포장하는 풍토를 어떻게 소화할 것인가?

이러한 이유 ‘종교간의 대화 모임’을 소중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크리스천 아카데미, 종교문화연구원, 불교사회교육원 등 지성인들의 충고를 성직자들은 뼈 아프게 받아들여야 한다.
어제는 농아인들과 야외법회를 다녀왔다. 수화를 배운 지 얼마되지 않아 서툰 손짓이었지만 열린 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소리에 대한 감각을 잃어버린 그들에게 불교 수화가 없다면 부처님은 그들에게 한낱 불상으로만 보여질 뿐이다. 불교방송도 농아인들에게는 쓸모없는 메아리에 불과하다.
일주일에 한 번씩은 꼭 법당을 찾아 삼배를 올린다는 26살 농아불자에게서 나는 지금까지 불교를 어떻게 믿어왔으며, 무엇을 위한 발원으로 살아왔는가 새삼 부끄러워지는 충격을 받게 되었다.
사람의 몸과 마음은 변한다.

“모든 만물이 성주괴공의 순리따라 생성소멸하듯 우리들의 생사 또한 우물 속 두레박이요, 한 조각 구름이 모였다가 흩어지는 이치와 다르지 않다”는 염불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나의 이 원이 겨레를 구하리니 부처님이시여! 종착역은 어디입니까? 끝없이 중생들을 굽어살펴 주시옵고 이 생을 마치는 날까지, 아니면 다음 생을 마치는 날까지, 아니면 다음 생에도 부처님 법을 만나기 소원이며 중생들의 아픔을 공감하고 물들지 않는 연꽃의 의미를 알게하여지이다.
“수도물 먹는 중은 깍쟁이가 되기 쉽다”며 겉만 번드레하지 말고 알찬 부처님 제자가 되라시는 노스님의 눈길이 그리워진다.
육신의 피곤함을 달래기 위해 자리에 눕는다. 시계가 울리면 다시 일어나 나의 길을 가야지, 속상해도 물러설 수 없고, 드러나지
않아도 꾸준히 해야한다는 생각을 하며 들었다.

진오 : 스님,동국대학교 선학과를 졸업하고 공군법사를 역임했으며, 현재 동국대 학교 대학원에서 사학을 전공하면서 자비의 전화상담원으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