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와 달보다 더 분명한 가르침을 좇아

선심시심

2007-05-16     관리자

지금 산사(山寺)에서는 동안거(冬安居)가 한창이다.
좌선(座禪) 수행하는 수좌(지금 산사(山寺)에서는 동안거(冬安居)가 한창이다.

좌선(座禪) 수행하는 수좌(首座)들의 그 고요하고 거룩한 모습, 거기서 우리는 바로 부처님을 본다. 그리고 여기서 한국불교의 현주소를 찾을 수 있다. 한국불교에 있어서 이와 같은 하안거(夏安居)와 동안거의 두 차례의 연례 집단 수행은 긴 역사와 훌륭한 전통을 연면히 이어오고 있다. 바로 여기에 한국불교의 명맥이 있고 진수가 있다 하겠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의 눈에는 지상(紙上)을 더럽히는 종단의 분규나 문중간의 갈등은 보일지라도 우리 불교의 실상이라고 할 수 있는 이런 수행상(修行相)의 참모습은 별로 띄지 않을 것이다. 본래 부처를 밖에서 찾는 이들은 상(相)에 집착하게 마련이지만, 마음 안에서 부처를 구하는 구도자들은 상을 떠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튼 심지어 불교관계 전문지들까지도 하나같이 불교의 외적 파동에는 그토록 예민하고 신속하게 반응을 보이면서도 우리 불교의 참모습이 어떤 것인지, 얼마나 피나는 정진을 하고 있는지 그런 것에 대해서는 너무도 무감각한 데 새삼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이제 다시 석달이란 긴 겨울 동안에 일사불란하게 정진을 계속하고 있는 말없는 수좌들과 한국불교의 앞날을 걱정한 나머지 좌불안석으로 안거중임에도 불구하고 드디어 거리에까지 뛰쳐나와 시비곡직을 가리려는 그 충정의 지사들을 비교할 때 아래와 같은 옛 송(頌)은 우리에게 큰 교훈을 주리라 믿는다.

若人靜座一須臾(약인정좌일수유) 만약 어떤 사람이 잠시라도 고요히 앉아있다면
勝造恒沙七寶塔(승조항사칠보탑) 항하의 모래수만큼의 칠보탑을 세우는 것보다 뛰어나라.
寶塔畢竟化爲塵(보탑필경화위전) 보탑은 필경 티끌로 돌아가지만
一念淨心成正覺(일념정심성정각) 한 생각 맑은 마음은 정각을 이룬다.

이 게송은 보조(普照) 스님의 저서, [진심직설(眞心直說)]에 인용되고 있다. 보조 스님이 살던 시대도 우리의 오늘만큼이나 어지러웠던 것 같다.

국가적으로는 무신(武臣)들의 권력다툼과 정변의 와중에 있었고 불교자체로서는 선(禪)고 교(敎)의 대립이 그 극에 이르고 있었다. 이런 현실에 직면하여 그의 뜻은 '명예와 이익을 버리고 산속에 들어가 함께 뜻을 맺고 항상 선정(禪定)을 익히고 지혜(智慧)를 닦기에 힘쓰자...' 는 데 있었다.
이것이 그 유명한 정혜결사(定慧結社)의 요지였다.

마음닦는 일을 통해서만 정법(正法)이 세워지고 선과 교의 대립이 해소될 뿐만 아니라 어지러운 사회의 시비 갈등도 해결될 수 있다고 스님은 확신하였기 때문이다.

권수정혜결사문(勸修定慧結社文)에서

스님은 '... 세월은 급하고 빨라 조용히 늙음을 재촉하는데 마음을 닦지 않고 죽음의 문 앞에 그대로 다가서려는가... 그럼에도 함부로 지내면서 탐욕과 분노, 질투와 교만 방종으로 명예나 이익을 구하며 허송세월로 공연한 말재간을 부려 세상일에 참견하고 있으니...' 라고 후학들을 엄히 경책하고 있다.

우리는 환경이 어지럽고 마음이 괴로울 때 대개 그 해결방법을 물리적, 물질적인 것에서 찾는 수가 많다. 하물며 불교인들까지도 심지어 다년간 수행을 익혀온 스님들 중에서도 이런 경우를 많이 본다. 이것이 바로 우리 중생심의 소치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것이 근본적인 해결 방법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시비곡직을 가리지만, 바로 이 시비가 마음의 병이 된다(偉須相淨 是爲心病)'는 것이다.

'예전 성인들의 가르침이 해와 달보다 더 분명한데 어찌 잡다한 뜻만 찾으면서 자신은 찾지 않은 채 영겁을 두고 헤매는가. 때때로 관행(觀行)하는 여가에 성인의 가르침과 옛 어른들의 도에 들어간 인연을 자세히 살피어 삿됨과 바름을 분명히 가리어 남도 이롭게 하고 자신도 이로워야 한다.


한결같이 밖으로만 이름과 모양을 찾아 분별하기를 바다에 들어가 모래를 세듯하여 헛되이 세월만 보내서야 되겠는가' 고 보조 스님은 또 [진심직설(眞心直說)]에서 고구정녕 이렇게 타이르고 있다.

조홍식: 문학박사, 불문학을 전공(생땍쥐빼리연구) 하였으며, 성균관대학교 명예교수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