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발심으로 살아가는 사람들

부루나 존자들/대학생수도원 출신 모임

2007-01-16     관리자

초발심 때는 누구나 한없이 순수하고 열정적이다. 그래서 완전한 깨달음에 들기 쉽다고 한다. 하지만 첫 마음을 오랜 세월 지니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기에 초발심으로 살아가는 분들이 더욱 아름다워 보인다. 실로 세상을 움직이는 힘의 원천은 마음을 어떻게 쓰고 행하느냐에 있음일진대, 한국불교가 이만큼이나마 명맥을 유지할 수 있는 것도 다 그 덕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국불교사에서 전무후무한 대학생수도원 출신 모임이 40여 년 동안 지속되고 있다는 소식, 특히 그분들의 깊은 신심의 근원이 광덕 스님이라는 말을 들으며 참으로 반가웠다.
40년 전 봉은사에서 광덕 스님을 지도법사로 매월 셋째 주 일요일을 ‘삼보의 날’로 정하고 법회를 하던 것을 지금도 지속하며, 지난날의 구도열을 되살리고, 몸담고 있는 삶터에서 최선을 다하며 나름대로 불법을 전하는 이 시대의 부루나 존자들을 찾아뵈었다.

한국불교의 미래를 부촉받다
“1963년 창립된 대학생불교연합회(이하 대불련) 회원들은 나름대로의 불교관이 다 달랐습니다. 적어도 핵심멤버만큼은 이념적으로 결속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대학생수도원을 설립하는 원동력이 되었고, 우리는 그 때 절이라는 용광로에서 새롭게 태어났지요.”라는 전창열 변호사(맏형, 전 탄허불교문화재단 이사장)는 대학생수도원을 계승시키고,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전법할 수 있도록 뒷받침해주었어야 하는데, 큰 힘이 되어주지 못했다며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불교계를 이끌고 나라의 기둥이 될 인재양성이라는 대의명분하에 설립된 대학생수도원 출신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스님들과 똑같은 수도생활을 한 사람이기에 그만큼 책임감도 큰 것일까?
“1965년 8월 대불련 여름수련대회(범어사)를 마치고 구도부원 14명이 13일 동안 전국에 주석하고 계신 선지식을 친견하는 구도 행각을 했습니다. 그 구도열기를 잇기 위해 박성배 지도교수님과 지도법사이신 광덕 스님께 간청하였고, 봉은사를 대학생수도원으로 쾌히 승낙하셔서 입사생활을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사실 광덕 스님 같은 분이 없으십니다. 학생들에게 봉은사 안방까지 다 내주셨고, 그 바쁜 와중(당시 봉은사 주지, 조계종 총무국장도 겸임)에서도 심혈을 기울여 지도해주시면서 한국불교의 미래를 부촉하셨습니다.”(이용부, 전 문화관광부 종무관)
한국불교의 미래는 젊은이들에게 달려있다는 말은 요즘도 유효한데 40년 전 그 척박했던 상황에서는 오죽했겠는가. 구도하겠다고 제 발로 찾아온 학생들을 반겼을 광덕 스님의 밝은 얼굴이 눈에 선하다. 한국불교의 주춧돌이 될 이들이었기에 담금질도 거셌다.
“광덕 스님께선 그 당시 폐허가 된 봉은사 경내를 수도원생과 똑같이 운력하시면서 청정도량을 만들기 위해 새벽부터 밤중까지 쉴틈이 없었습니다. 한번은 ‘깨끗한 마당을 날마다 쓸 필요가 있느냐’는 학생의 물음에, ‘법당 앞 마당은 부처님 얼굴과 같은 곳이다. 마당을 쓰는 것은 부처님을 장엄하는 것이며, 자기의 마음을 가지런히 잘 정리 정돈하는 것과 같다.’고 말씀해주시면서 마당을 쓰셨는데, 싸리빗자루 자국이 빗살문양의 무늬로 아름답게 수놓아진 것에 모두 경탄했지요.”
당시 수도원생들의 생활은 짐작하기 힘들 정도로 엄격했다. 학교생활만 제외하고는 스님들과 똑같았다. 보통 신심으로는 흉내도 못 낼 시험(보현행원품 암송, 3천배)을 통해 선발된 수도원생들은 오전 4시에 기상해서 예불, 소의경전인 보현행원품 독경, 참선, 초발심자경문 공부, 도량 청소, 학교 생활, 저녁예불시간(오후 7시)까지는 정확히 절에 돌아와서 공부를 하고, 참선수행으로 하루일과를 마무리하였다.
스님들과 더불어 농사를 짓기도 했고, 광덕 스님과 함께 봉은사 승과평(사명대사 등 스님들이 승과고시를 보던 평야: 지금 코엑스 일대) 땅을 찾는 데도 한몫 하였다.
“엄한 생활 속에서 규칙을 어기면 108참회를 했고, 3번 이상이면 퇴사 당했습니다. 그런데도 입사 경쟁이 치열했던 것은 부처님 그늘에서 광덕 스님, 법정 스님, 박성배·서돈각·서경수·이기영 교수님 등 좋은 스승을 모시고 좋은 선배와 후배들과 함께 정진하기 위해서였습니다.”(박문효, 사업가)
전생부터의 인연인가, 그 근기가 남달라 보인다. 게다가 땅 팔고 소 팔아 대학 보낸 부모 입장에서는 애가 달았을 법도 하다. “우리 부모님은 봉은사로 찾아와 제발 출가만은 막아달라고 사정했었지요.”라는 김춘송 씨(포교사), “부처님한테 푹 빠져서 정신없이 헤맸던 것이지요.”라는 김규칠(전 과학원장, 전 불교방송 사장) 씨의 말에 모두들 웃음을 터뜨렸다.

▲ 1965년 봉은사 대학생수도원생들과 함께 한 광덕 스님(앞줄 가운데)
구도생활이 성공의 자산 되다

“지나와서 보니 더 깊이 빠져들었어야 하는데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단기적으로는 손해처럼 보이지만 종교체험을 통해 사회생활을 힘차게 살아갈 수 있는 저력과 다른 사람을 포용하고 배려하고 도와주려는 마음이 성공의 자산이 되었지요. 수도원 생활이 중장기적으로 확실히 큰 도움이 되었다는 것은 자신 있게 얘기할 수 있습니다.”라는 전창열 변호사의 말처럼 대학생수도원 출신 50여 명〔지환 스님(현 조계종 기본선원장), 김금태·김기중·권경술 씨 등 출가수행자를 위시하여 전창열(변호사, 탄허불교문화재단 이사), 이진두(전 부산일보 논설위원), 이용부(전 문화관광부 종무관), 김선근(동국대 불교학과 교수), 박세일(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현재 선진화재단 이사장), 조용길(동국대 불교대학원장), 김재문(동국대 경주캠퍼스 부총장), 황귀철 (주)전홍 전무), 김학진(용산전자상가 사장) 등〕은 불교계는 물론이고 우리 사회의 지도급 인사가 되어 불교 발전을 음으로 양으로 도왔다.
수도원생들은 백담사에 만해 한용운 시비(나룻배와 행인)를 세우고 만해사상선양사업, 일연 스님, 원효 스님에 관한 논문 가운데 중요한 것만 뽑아서 각각 논문집 20권을 만들어 전국의 강원과 국립도서관, 동국대도서관에 기증하였으며, 인각사 일연 스님의 비를 복원하기 위하여 그 모형도를 만들어 전시회에 선보이기도 하였다. 15년 전 설립된 사찰문화연구원의 대작불사(전통사찰 총서 21권 완간, 봉은사지 등 중요사찰의 사지 발간 등 사찰의 역사 인물 문헌 성보문화재들을 일목요연하게 집대성)도 대학생수도원 출신들이 뒷받침하여 만들어진 것들이라고 한다.
이 모든 일이 가족보다 더 깊은 불법인연으로 만났기에 가능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처녀 적에는 카톨릭 신자였는데, 이분들과 자주 만나다 보니 자연스레 불교로 동화되었다.”며 최선희(교사) 씨가 행복한 결혼생활의 단초가 이 모임임을 밝히자, 이구동성으로 부인들이 맞장구를 친다. 대학생수도원에서 밴 불교 정신으로 살아가니 가화만사성은 당연지사란다.

깜깜한 밤중에 불빛이 되라
“광덕 스님께서는 ‘너희들 자신이 태양같이 밝은 존재임을 자각하고 사회를 밝히라고 하시며, 이미 우리는 깨달아 있는 존재이니 오직 부처님처럼 사회의 평화를, 평등을, 대 자유를 온 국토에 실현시키기 위해 행동하라.’고 역설하셨습니다. 사실 불광회는 1974년이 아니라 이미 1965년 봉은사 시절에 창립된 것입니다.”라는 이용부 씨의 말씀에 김선근 교수가 동조하였다.
“광덕 스님께서는 한국불교의 좌표를 보현행원으로 삼고 새불교 운동을 일으키기 위해 인재 불사를 강조하셨던 것입니다. 불교신자만이 아니라 한국사회의 리더를 키워 궁극적으로 사회를 밝게 변화시키고자 애쓰셨습니다.”
세월이 흐를수록 광덕 스님이 더욱 그립다는 이용부 씨, 따끔한 질책도 주저하지 않는다.
“광덕 스님은 5계를 설할 때도 죽이지 말라가 아니라 ‘뭇 생명을 살려라’고 설하셨어요. 뭇 생명을 살리는 자가 생명을 죽일 리가 있겠느냐는 것이지요. 여기서 생명은 인간의 의지를 뜻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불자들이 자신의 의지를 마음 놓고 펼칠 수 있도록 뒷바라지를 해주신 것입니다. 또 훔치지 말라가 아니라 따뜻한 마음, 자비심을 베풀라고 하셨지요.”라며 길을 잃은 자에게 길을 제시하고, 깜깜한 밤중에 불빛이 되라는 것이 불광의 창립정신인데, 한국불교가 빛을 잃어버렸다면 다 광덕 스님의 광명사상을 올곧게 이어가지 못한 불광의 책임이라며 불광이 역할을 다 해야 한국불교가 살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신문에서 ‘과학, 생명 그리고 불교’라는 주제로 불광 창립 32주년 기념 강연을 한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이제야 불광이 제대로 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불광이 앞장서서 이 시대를 정확히 진단하고 바른 좌표를 제시하고 사회의 등불이 될 때 광덕 스님의 은혜를 갚는 길일 것입니다.”
얼마 전 장한평에 23평의 모임처를 마련하여 전법 원력을 곧추세우고 있는 대학생수도원 출신 보현행자들은 자신들도 광덕 스님의 가르침을 받은 제자들로서 불광이 인재불사도 적극적으로 하고, 더욱 잘해주었으면 좋겠다는 염원을 전한다. 모든 것은 마음의 조화로 이루어진다 했듯 부루나 존자들의 거룩한 전법, 그분들이 바라는 불광의 밝은 행보 또한 반드시 이루어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