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간오도(塚間悟道)

원효성사(元曉聖師) 5

2009-06-04     관리자
 
2. 초개사(初開寺)
그 노스님은 팔순을 넘은지도 오래되었다고 하고 백 살도 더 되었다고 하는 이도 있으니 과연 정확히 몇 살이신지는 몰라도 칠순 가까운 문노 스승이 스승의 예로 예우하는 것으로 보아 범상한 노승이 아닌 것만은 어렴풋이나마 짐작이 갈 따름이었다.
그 노스님은 늘 단정히 앉아서 음식을 씹듯 입술을 오물오물하며 염불을 하는 것으로 일과를 삼았다.
“노스님 무슨 염불을 하십니까?”
이렇게 물으면 그저
“문수 보살.”
한다.  문수암에 계시는 문수 노스님이 매양 문수 보살을 부르는 것이었다.
문수 노스님은 첫새벽이면 종을 울린다.  낭도들이 수련하는 수련도 장까지 염불소리는 똑똑히 안 들리지만 종소리는 새벽의 정적을 타고 청아한 음향으로 들려오는 것이었다.
사람은 언제나 이 종소리가 울릴 무렵이면 일어나서 뜨락으로 나와 종소리를 듣는다.
어떤 때는 서당이 먼저 기다리는 적도 있고 또 어떤 날은 종소리가 먼저 울려서 서당의 잠을 깨우는 적도 있었다.
말하자면 문수암 노장님과 서당은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첫새벽에 일어나서 각자의 공부를 하는 것이었다.
서당은 언제 들어도 종소리가 좋았다.  마음이 안온해 진다.  쇄락하고 안온해진 마음으로 활을 잡으면 정신이 통일되어 백발백중으로 과녁에 꽃힌다.
서당은 감사의 종소리를 들으며 문수암의 노스님을 생각해 본다.
문노 스승이 스승과 다름없이 모시는 노스님이시니 필시 도덕이 뛰어나신 노스님일테지만 서당의 눈에는 그 뛰어나신 면모가 보이지 않는다.
바닷물은 말이나 되로 몇 말 몇 되인가를 될 수 없다.  엄청나게 크고 넓어서 감히 되나 말로 계산한 수 없기 때문이다.
문노 스승의 경지도 사실 그로서는 정확히 측정하지 못한다.  그러나 과연 위대한 스승인 것만은 스스로 수긍한다.
헌데, 문노 스승이 깍듯이 존경하는 것을 보면 문수암 노스님은 문노 스승의 위에 위치한 노스님일 텐데 어찌 자기 눈에는 그 위대한 점이 눈에 띄지 않는단 말인가?
문노 스승이 낙동강이라면 문수암 노장님은 남해 바다가 되시는 걸까?
그렇다면 지금 그가 찾아가고 있는 원광 법사는 어느 만큼 크신 그릇일까?
그의 짐작으로 문노 스승보다도 한발 앞선 분으로 보인다.
어떤 면이 앞서 보이느냐고 묻는다면 그것을 딱 끄집어내어 이러이러한 점이요 하도 대답하긴 곤란해도 아무튼 두 어른을 나란히 놓고 비교해 보면 법사가 한 발을 앞서가고 있음을 느낀다.
말하자면 세속의 때가 더 벗어진 것이라고나 할까?
그렇다 해서 문노 스승이 세속적인 물, 즉 세속에 때가 덜 벗겨진 분이라고는 보지 않는다.
나라에서 여러 차례 높은 벼슬로 불렸지만 끝내 사양했고 젊어서는 사벌주(沙伐州) 태수의 따님이 문노 스승을 사모하여 혼인하기를 간청하였지만, 혼인하면 정신자세가 흐트러진다 하여 기어이 응하지 않은 분이다.
문노 스승의 가르침을 받아 대성한 제자가 부지기수이지만 아직까지 스승의 검술을 능가한 제자가 없는 것은 그만큼 입신(入神)의 경지에 도달한 분이기 때문이 아닐까?
그러한 문노 스승이건만 서당의 판단으로는 원광 법사가 한 발 앞선 것 같다.
마음으로 풍겨나는 마음의 향[心香]이랄까, 아니면 마음의 빛[心光]이랄까, 이런 것이 원광 법사에게서는 더 향기롭고 더 빛나는 것만 같은 것이다.
그는 일어서서 갑사를 향해 걸으면서 원광 법사에게 문수암 노스님에 대해 여쭈어 보리라고 맘먹었다.
땅거미가 지고 어둑어둑할 때 서당은 갑사에 올라갔다.  거기에는 과연 원광 법사가 계셨다.  서당의 절을 받고서 반가워하신다.
“아니? 너 서당이 아니냐?
“예, 세상에서 가장 못난 놈이 친구와 더불어 목숨을 나라에 바치지 못하고 이렇게 노스님을 배알하나이다.”
서당은 고개를 숙인 채 주먹 같은 눈물을 그의 무릎에 뚝뚝 떨 군다.
“오냐, 네 심경을 안다.”
서당은 거진랑이 적진에 돌진할 때 함께 나서지 못한 것이 두고두고 부끄러웠다.
원광 법사는 바른손으로 염주알을 굴릴 뿐 다른 말씀은 없었다.
침묵이 흘렀다.
법사는 서당의 기품을 다시금 살펴본다.  지금은 희미한 등불 아랫니니 확실한 모습을 볼 수 없지만 두해 전에 똑똑히 보아둔 것을 하나하나 기억해 내는 것이다.
이제는 자랄 대로 다 자란 헌헌장 부인 서당이다.  훌륭한 스승 밑에서 제대로 연마하여 문무겸전한 화랑이다.
세속에 내놓으면 어디나 내놓아도 손색없는 제목이다.  ‘그러나, 그러나 ……’
법사의 가슴에는 더 큰 재목으로 만들고 싶은 욕망이 인다.  온누리 중생을 건질 큰 그릇으로 만들고 싶다.
‘어찌 나를 찾아왔을까?……’
이윽고 서당은 고개를 들었다.
“노스님”
“응?”
“이 몸이 갈 길을 지시하여 주옵소서.”
“너의 갈길이사 문노 스승께서 이미 가르쳐 주셨을 터인데?”
“칼로서는 안 되리라 여겨지옵니다.”
“음--.”
세상을 다스리는 경륜은 여러 방법이 있다.  그 방법 중에 세속적인 입장에서는 문(文)과 무(武)의 두 길이 있음을 말한다.
특히 국경을 지키는 데에는 완벽한 무를 갖춰야 한다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
그러나 신뢰가 동족인 고구려와 백제를 적으로 삼고 있는 현실을 평화에로 이끌어 가자면 국경의 군비를 튼튼히 하는 것만으로는 무언가 허술함이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서당은 이 같은 고민을 몇 날 며칠을 두고 해보았지만 쉬 풀리지를 않았다.
그래서 불교적인 방법, 즉 부처님의 대자대비하신 법음을 신라백제 고구려에 널리 펴서 서로가 싸우지 않고 평화적인 방법으로 국가를 통일하여 다른 민족과 대치할 수는 없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적어도 우리 배달민족 끼리만이라도 서로가 한 덩어리가 되어 싸움 않고 살았으면 싶다. 
그렇다 해서 우리 배달민족이 이웃 민족인 중국 한민족과 싸움 없이 살아지라고는 여겨지지 않는다.
그러나 설혹 싸운다 하여도 이민족과 싸우는 거니 동족끼리 싸움하는 것과는 정신적인 부담부터도 덜할 것이요, 또 우리 배달민족이 한 덩이가 되어 한민족과 겨룬다면 결코 그들에게 지지 않을 것만 같았다.
그 좋은 예로 약 20여 년 전에 고구려는 수나라의 백여만 대군을 맞아 선전 분투하여서 대승을 거두었지 않는가?
고구려의 국력만으로도 능히 한민족의 대거 침공을 막았거든, 만일 백제 신라까지 합하여 배달민족이 한 덩이가 된다면 어찌 감히 한민족이 우리 국경을 넘나보겠는가?
그렇다면 어떻게 하여야만 우리 배달민족이 하나로 뭉쳐질 수 있을까?
서당은 싸움터에서 이 문제에 대하여 깊이 생각한 끝에 동족끼리 서로 칼과 창을 겨누는 것으로는 통일을 기할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또 혹시 무력으로 삼국을 통일하려 하여도 현재의 신라 힘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판단되었다.
그러면 창칼로 어렵다면 배달민족의 단일국가를 이룰 길은 영영 없단 말인가?
있다.  분명히 있다.  불법을 가지고 배달민족의 마음을 순화시켜 서로가 용서하고 서로 마음을 허하여 평화로이 하나의 배달 국가를 만들면 되리라.
만일 그리된다면 이 땅은 그대로 불국토(佛國土)가 될 것이니 이웃 민족이 절대로 넘보지 못할 것이다.
서당은 이렇게 생각하고 이렇게 이루기를 다짐하며 싸움터에서 물러나와 원광 법사를 찾은 것이다.
-계속-

백운 : 화엄사, 범어사, 송광사에서 강주를 지낸 바 있으며, 현재 부산 미륵사 주지로 있다.  저서에 [양치는 상자][초의 선사]등 다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