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나는 지난 늦가을 서울서 두 세 시간 쾌속으로 달려가야 이를 수 있는 곳으로 선(禪) 생활을 하고 있는 선사를 뵈러 갔다. 선생활의 단면과 구도자가 걷고 있는 생활상을 보게될 기회를 가졌었던 것이다.

현대문명의 이기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는 심심유곡 두메였다. 산국이라 할까, 땅굴이라 할까, 토막에 쌓인 풀섶에서 수행을 하고 있는 구도자의 모습을 목도하였을 적에, 나는 이제껏 겪지 못하였던 충격을 처음 맛보게 되었다. 화전민의 생활이 어찌 이러하랴! 독과촌의 살림이 어찌 이러하랴! 전기가 없다, 주식이 생식이다, 솔잎, 감자, 고구마 때로는 밀가루... 선방 안에는 찬기류로 가들하였다. 기류는 나에게 얼마나 견디나 보라는 듯 한기를 덮어씌우는 기분이었다. 손발이 시리었다. 벽상에 걸린 아내 보살의 영전 또한 가슴을 찔렀다.

"일체(一切)는 유심조(唯心造)이다."

문명의 극치속에 살아가는 현대사회의 한귀퉁이에서 삶의 실체를 구하자고 고행길을 걷고있는 그 사람이 어딘가 모르게 새삼 존경스러워져 갔다.  물질과 황금의 풍요를 구가하며, 춤추는 허영에 접하고 있는 우리들의 생왕(生旺)의 낙(樂)을 마다하고, 이렇듯 홍진(紅塵)을 떨치고 고행길을 택하여 수행하고 있는 선사가 세상에 있다고는 생각하질 않았던 나에게 심한 파장이 일었다.

수도는 고행의 길이다. 그길은 가깝고도 먼곳에 있는 길이다. 불가사의한 인생의 진수를 알자는 길, 삶의 본질을 캐자는 길, 영적세계 실존에 바탕을 두고 추구하는 심원무애(深遠無涯)의 경지속에 있는 것이기에 더할 것이 없는 길이다.  어찌하여 이러한 곳에서 수도하려 결심을 하였을까...? 과거를 참회하는 것일까? 삶 자체를 참회하는 것일까? 아니면.....?

대사 원효 스님은 '파랑새 나르는 길을 따라 수행의 구도처를 찾았다' 는 일화도 있었거니... 선사는 어찌하여 이곳과 인연하여 머문 것일까?  삼라일체(森羅一切)의 사상(事象)들이 그의 동안(瞳眼)엔 어둡게만 비추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누리 일체의 현상들이 추(醜)하게만 그의 시계(視界)에 비추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탁하고 얼룩으로만 더하여가는 사바세계만이 그의 심층에 못으로 박혔을지도 모를 일이다. 정토가 없는 인간세라 달관하고 체념한 눈초리로 이곳을 찾아 들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세속에 묻혀 무디게 살고있는 범부로서야 어찌 그의 혜안적 생각을 살필 수 있으랴!
또한 따를 수가 있으랴...!

그를 처음 대하였을 적 나는 나의 인생행로와 나의 인생비화를 털어 놓을 수가 없었다. 나도 모르게 두뺨으로 흐르는 뜨거운 눈물을 억제하질 못한 채 연민의 정에 복받치며 불심의 손길이 있어야만 되겠다는 스스로에의 다짐을 되새기며... 백지장이 찢기듯 아픈 가슴이, 견디기 어려운 차가운 감성(感性)이, 오장육부에까지 엄습하고 있음을 느끼었다.

백발머리카락에 길게 드리워진 수염은 도인답게 보였고, 가끔 던지는 가벼운 미소에는 그래도 현실에 족하고 있다는 철석같은 의지와 심주가 있음을 느끼게 하여 주곤하였다.

'일체는 유심조'이다.

그의 정신바탕은 이미 대반석 위에 굳혀진 대좌 대불(大坐大佛)마냥 흔들리지 않는 불력에 싸여 있음이 의연한 모습속에 보였다. 인간의 고귀하고 위대한 정신력은 드디어 높은 곳으로 부터 삶의 진수를 얻으리라.

' 일체는 유심조 ' 이다.

선사여! 한번 더 되씹고만 싶습니다! 삼라일체가 어떻게 당신 앞에 비추었기에 무겁고도 어두운 구도의 길로 예까지 왔었어야 하였습니까? 얻어진 무엇을 어찌하려고 이렇게도 머나먼 심층구원(深層久遠)의 길을 섭하였습니까?  엄연한 당신의 실존! 당신의 혜안이 관조하는 그것은 무엇입니까?

' 일체는 유심조 ' 이다!

무심공(無心空)의 철학신념이 시방 세계로 퍼져 국태민안이 충만한 무량 무한의 임신년을 발원하는 불심으로.


문영희: 1925년 출생. 교육자. 국민훈장 동백장을 서훈한 바 있으며 저서로 [남강 문영희 일가]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