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장을 열어 주신 부처님

특집/행복이라는 것, 그 요건과 실현의 길

2009-05-28     관리자

'똑 똑 똑 똑'

'관~세음~보~살.'

 국민학교 취학 전부터 외할머니의 손을 잡고 따라 다녔던 도심지의 손을 잡고 따라 다녔던 도심지의 시장통을 지나 깊숙한 자리에 위치한 절에서 익혀 들었던 유아기에 입력된 목탁 ·염불 소리. 주로 한복을 입으시고 연세드신 할머님들께서 법당을 가득 메우시고 스님의 설법을 들으시는 시간에는 뜻도 모르면서 눈을 멀뚱이며 부처님과 스님을 번갈아 보노라면 '스님께서는 말씀을 자꾸만 하시는데 부처님께서는 아무 말씀도 않으시고 왜 저렇게 앉아만 계시지?'가 무척이나 궁금했었는데 궁금한 것을 물어볼 줄도 모르고 그냥 어른들이 하시는 그대로만 따라 하면 칭찬을 아끼지 않으시던 유아기의 불교 입문기.

일년 중에서 초파일이나 절에 불사가 있을 때만 어른들을 따라 절에 가는 것이 모두였던 자람 속에서도 학교에서 선생님이나 친구들이 학교를 묻노라치면 '불교'라고 서슴치 않고 대답은 하면서도 불교에 대하여 전혀 무지한 채 그냘 불교를 소유하고만 있었다. 물론 집안 어른들께서는 자주 절에 나가셨지만 절에 따라갈 수 있는 기회가 내겐 자주 부여되지 않았다. 학교에서 타종교를 믿는 친구들이 교리를 앞세우고 무종교인 급우들에게 포교를 위한 열변을 토하며 자랑을 늘어놓을 때면 '불교'를 지니고만 있던 우리들은 교리를 전해 줄 수 있는 한마디의 말도 찾지 못한 채 그 자리를 떴던 막연했던 시간들. 불교에 대한 개념이나 사고가 정립되지 않은  상태이긴 하였지만 집안 종교가 불교였기 때문에 불교가 아닌 것은 수용하지 못할 관념적인 사고로만 자라다가 비로소 가정을 이루면서 스스로 절을 찾게 되었다.

더욱이 불교 재단의 종립 학교인 지금의 근무지에서 생활하게 되면서 부처님의 가르침과 더 친근히 만날 수 있게 됨은 풋나기 불자에게 불법으로 무르익도록 행복의 장을 열어 주신 부처님의 가피이리라. 그 가피에 힘입어 아침마다 출근하면 곧 법당을 찾는다. 어린 불자들이 밝힌 인등을 양쪽으로 펼치시고 언제나 변함 없으신 그모습으로 우리들을 맞으시는 부처님께 촛불을 밝혀 향을 올리고는 합장을 한다. "거룩하신 부처님, 우리 어린이들이 부처님의 가르침따랄 생활하는 참다운 부처님의 꿈나무가 되게 하소서···."

 어느 사이엔가 법당에는 부처님의 꿈나무들이 여기 저기서 고사리 손으로 합장하며 삼배를 올리고, 독서를 하기도 하며 모였다가는 제각기 교실로 돌아가곤 한다. 

"우리들은 언제나 부처님과 함께 하리 ······"

 녹음기에 테이프를 넣어 찬불가 소리를 온 법당에 가득 담아 놓고는 교실로 내려온다. 부처님 방을 찾는 어린 불자들의 귀에 부처님의 노래를 익게 하고 그 노래처럼 생활하는 진리의 주인이 되길 간절히 바라면서. 얼마전 연화 어머니회 어머님 한 분이 "집에서 청소를 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목청껏 노래를 부르다보니 찬불가를 부르고 있더라."는 이야기에서처럼 우리 어린 불자들에게 부처님의 가르침과 항상 같이하며 그렇게 생활 할 수 잇도록 하자고 '찬불가와 함께'를 재편집한 28곡의 부처님 노래를 예쁜 입들에 가득 담노라면 부처님의 꿈나무들은 가슴마다에 행복의 꽃망울을 틔운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다정한 동반자

 큰 바다속에 살고 있는 눈 먼 거북이가 백 년에 한 번 떠올라 마침 구멍이 하나 있는 통나무를 만나는 것 만큼 어려운 인연으로 우리는 이 세상에 왔다고 하지 않았던가. 이토록 선택받은 인연 중에서도 또한 부처님법과 만날 수 있었음에 무한한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가 없다. 항상 감사하는 마음과 함께 생활하려 노력하면서 새벽 시간에 잠깐씩 부처님의 가르침을 찾노라면 마음은 어느덧 큰법당에 계신 부처님 전에 합장을 한다. 지나간 어느 여름 날 화엄사에서, 첫 새벽을 깨치던 목탁소리의 의미를 떠올리면서······.

받는 일보다는 베푸는 일에 익숙하려는 내 생활을 돌이켜 본다면 마음껏 베풀기엔 아직은 너무도 서툴다. 그래도 서투른 행을 하고 싶어진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 항상 우리들의 생활 속에 상존하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먼 곳으로부터 어렵사리 찾으려 했던 지난 시간들이 낯을 붉게 한다. 쉽게 풀어 놓은 경전들을 원대로 구할 수 있는 오늘날에 부처님과 만나게 된 법우들은 보다 친근하게 진리를 터득할 수 잇으니 더욱 반갑고 감사할 따름이다. 무지하여 불교를 그저 좋아만했던 무명 속의 지난날을 떠올려 보면서 오늘에 접하게 되는 경전이나 설법을 전해 듣노라면 들을수록 우리들의 생활주변에 자리하고 있는 그 자체임을 다시 깨닫게 된다.

이토록 우리 곁에 가까이 접할 수 있는 진리를 아직도 마난지 못한 이들에게 열 백 번을 반복해 일러준들 어찌 지나치다 할 수 있으랴! 바쁜 마음만이 가득해진다. 보고 듣고 부처님의 가르침은 전혀 생소하거나 새로운 것이기 보다는 지금까지의 시간 속에서 체험하고 느꼈던 그 자체 전부이기에 언제 누가 어디서 만나도 전혀 부담스럽지 않을 매우 편안하고 다정한 동반자가 되리라.

진리를 따라 가는 길

 바닷가에 모여 잇는 어여쁜 조약돌이 하루 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듯이 우리들의 행복 또한 그러하지 않을까. 어느 날 갑자기 누군가가 가져다 주는 손쉬운 것만은 아닐진대 우린 항상 진리와 함께하며 가르침 따랄 행함으로써 선업을 가득 쌓고, 악업을 멀리하여 불보살의 길로 가까워지는 행복을 안게하리라.

"산해진미 포식해도 몸은 끝내 죽어가며                                              비단옷을 걸쳤어도 늙어감을 어찌 하리                                                 부질없는 잡담말고 착한 이웃 벗을 삼아                                                일심으로 염불하여 마음 밝혀 정진하라."

'원효스님 발심 수행장'중에서도 마음을 깊이 흔들어 주시는 위의 가르침을 대할 때마다 난 다시금 합장하고 마음을 모은다. 어떠한 두려움이나 분노함이 내 앞에 놓일지라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찾노라면 전과는 다른 인내를 감지한다. 때문에 마음을 보다 편안히 가눌 수 있으니 이 또한 진리가 바풀어 준 행복이리라. 진리를 따라 가는 길은 멀지도 험하지도 않은, 만인에게 가장 온화하고 정겨운 행복의 길이기에 진리를 따라 가는 길마다에 '지심귀명례'를 연거푸 되뇌일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