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나무 할아범과 배롱나무 할멈

마음으로 떠나는 산사여행 / 탕아를 거부하지 않는 변방, 영광 서운산 연흥사

2009-05-26     관리자

▲ 서운산 깃대봉에 하늘 높이 새겨진 두 분의 마애불. 한 분은 연흥사를 수호하고, 다른 한 분은 서해안 뱃길 루트를 수호하고 있다.
연흥사(烟興寺)는 변방이다. 변방 중에서도 최변방이다. 전라남도 영광군 군남면 용암리, 서해안 끝머리에서도 한참을 더 흘러들어가야 하는 곳이다.
그러나 변방의 서정성은 중심에 비해 훨씬 정적이고 고즈넉하다. 외롭고 낮고 쓸쓸하다. 하지만 중심의 광기와 폭력에 비하면 훨씬 덜 피곤하고 정치(精緻)하고 단순하다. 그래서 변방의 삶은 오히려 더 즐겁고 기쁘다. 한적하고 여유가 있다.
그 연흥사 앞마당에 500살 된 노인 두 분이 서 계신다. 그리하여 변방의 그 한적함과 여유를 한껏 즐기고 있다. 한 분은 동백나무이고, 다른 한 분은 배롱나무이다.

▲ 연흥사 앞마당에 다정히 서 있는 동백나무 할아범과 배롱나무 할멈. 수령 500년이 넘었다.

변방은   탕아를   거부하지   않는다

짐작컨대 그 두 분은 전생부터 필시 부부였을 터다. 그리하여 지금은 서로 등 간지러울 때 바람결에 서로 등 긁어주는 다정다감한 할아범과 할멈일 터이다.
그럼 그 두 분 가운데 누가 할멈이고 어느 분이 영감일까. 서 있는 모양새로 보면 배롱나무가 할멈임에 틀림없다. 허리 아래로 젊은 날 다산(多産)의 애기집을 완전히 들어내고 없기 때문이다.
그 배롱나무 할멈 앞에 서면 마대 같은 늙은 가죽부대로 허공에 간신히 버티고 서 있는 그 모습이 자못 애처롭다. 그러나 그 애처로움은 어떤 세월과 비바람에도 넘어지지 않을 엄정한 애처로움이다.
무릇 늙어간다는 것은 그만큼 진리에 가까워진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하늘로 새빨간 절정의 꽃망울을 밀어올린 채 허리를 잔뜩 구부리고 있는 동백나무 할아범과 다산의 애기집을 통째로 들어내고 없는 배롱나무 할멈의 가죽부대에선 삶의 처연성을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외롭고 낮고 단호하게 서 있는 그 모습엔 오히려 상락아정의 여백과 신산의 세월을 맨살로 견뎌낸 삶의 염결성이 더 짙게 배어있다.
그러므로 처연한 건 외려 그 앞에 선 나다. 중심으로의 편입을 위해 죽어라 할퀴고 상처 내고 움켜쥐었으나 끝내 중심으로의 편입을 거부당한 채 삶의 진정성과 염결성을 탕진하고 방기한 내 삶의 껍데기다.
이제 비로소 고백하거니와 이곳은 바로 내 고향 군남 땅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내 고향 땅 부처님 앞에 선 나는, 중심으로의 편입을 위해 그렇게 아등바등 할퀴고 상처냈던 내 삶이 결코 용서받지 못할 죄였음을 안 것이다.
그러나 연흥사 배롱나무 할멈과 동백나무 할아범은 진즉부터 그런 탕아의 귀향을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철 따라 피고 지는 꽃과 새들의 노래 속에 철 늦은 나의 귀거래사를 기다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늦은 것이 가장 빠른 것이고 때늦은 후회가 가장 뼈아픈 시작이 될 수 있으므로.
변방의 땅 연흥사 터를 찾아 처음 절을 세운 각진국사(覺眞國師, 1270~1348)도 어쩌면 나 같은 심사로 이 절터를 잡은 것은 아니었을까 상상해본다.
송광사 16국사 가운데 한 분이자 13세 국사인 각진국사는 말년 10년을 군남 땅에서 가까운 불갑사에서 보내던 중 연흥사 터를 잡고 절을 일으켰다. 그리고 물 위에 떠 있는 한 송이 연꽃처럼(蓮花浮水形) 둥글고 소박하면서도 아늑하고 맑은 느낌을 주는 이곳에서 중심이 아닌 변방의 극락을 발견했을지도 모른다. 국사라는 그의 지위가 중심의 광기와 폭력의 집단성과 작위성을 뼈저리게 맛보았을 터이므로.
그래서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절 연흥사를 자락에 껴안고 있는 서운산 깃대봉은 두 분의 마애불(磨崖佛, 암벽에 새긴 불상)을 하늘 높이 새겼는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남쪽 바위면의 마애불은 연흥사의 수호불(守護佛)로, 90도 꺾인 서쪽 바위면의 마애불은 서해바다 뱃길의 수호불로 앉혔는지 모른다(서쪽 바위면의 마애불이 서해바다 뱃길을 굽어보고 있는 까닭에, 장보고가 서해의 뱃길 루트와 뱃사람들의 안전을 보호하기 위해 이 마애불을 조성했다는 설이 큰 설득력을 갖고 있기도 하다).
어쨌든 몇 십년 만에 고향 땅을 밟은 21C의 탕아 한 명이 무엄하게도 그 마애불의 정수리에 올라탔다. 그리고 반가부좌를 한 뒤, 입아아정, 내 안의 나를 들여다보았다.

▲ 연흥사 대웅전 목조삼세여래불좌상. 지방 유형문화재다.
▲ 대웅전 앞뜰 손바닥만한 연못에 수련과 올챙이가 살고 있다. 이 수련과 올챙이는 무슨 인연으로 이곳에 태어났을까.













삶의   중심으로의   편입을   위해


그러고 보니 내 안엔 또 다른 무수한 내가 들어있었다. 어떤 때는 눈처럼 때 묻지 않은 순진무구한 동심의 나로, 또 어떤 때는 온갖 세파와 곤궁을 타고 넘은 지극히 어른스러운 나로, 또 어떤 때는 카인과 사탄 같은 나로, 또 어떤 때는 숲속의 백설 공주와 천사 같은 나로 한 천장 아래 공존하고 있었다.
그러기에 중심에선 비켜 서 있지만 나는 내 속에 살고 있는 이 모든 나를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부정해도 그들은 모두 나의 나이고, 나의 내면에 뚜렷이 살고 있는 나의 실체들이므로.
그렇기 때문에 나는 내가 살아오는 동안 나는 이들과 동행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과 사물들과 내가 살아가는 모든 변방의 세상을 나의 중심으로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
마애 부처님 정수리에 앉아 한 숨 두 숨 호흡을 재는 동안 시원한 서해 갯바람이 나의 온몸에 숭숭 구멍을 뚫고 지나갔다. 그러고 보니 고향 땅을 밟는 동안 내 마음은 돌덩어리처럼 굳어져 있었다. 그런데 마애불 위에 앉아 내 마음의 나를 바라보고 있는 동안, 돌덩어리 같았던 마음이 돌이되 돌이 아닌 마애 부처님의 마음처럼 말랑말랑 녹아들고 있었던 것이다.
마애 부처님의 육계(정수리 부근의 상투처럼 솟은 모양의 머리) 위에 똬리를 틀고 앉자마자 찾아드는 이 안온함과 충만성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솔직히 동행한 일행들만 아니라면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마애 부처님의 정수리에 입정하고 앉아, 서해 갯바람에 나의 온몸을 관통당하고 싶었다. 그리하여 인간이되 돌덩어리였던 내 마음을, 돌이되 돌이 아닌 마애 부처님의 지극히 인간적인 마음으로 바꾸고 싶었다.
동백나무 할아범의 붉은 꽃기침과 배롱나무 할멈의 아름다운 호곡(號哭) 소리를 다시 듣기 위해 하산하는 길, 마애 부처님의 기를 받아서인지 돌덩어리 같았던 마음이 비로소 서해 갯벌이 되었다. 아웃사이더로만 살아왔던 내 변방의 삶이 드디어 세상의 중심으로 인사이드 하는 순간이었다.

▲ 연흥사 대웅전. 절정의 붉은 꽃망울을 하늘로 힘껏 밀어올리고 있는 동백나무 꽃기운을 제대로 받고 있다.
▲ 마애불 가는 길 정상에 정자가 한 채 있다. 이곳에 서면 서해안 뱃길이 한눈에 다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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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영  _  1986년 서울신문에 시와 2007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동시가 각각 당선되었다. 시집으로 『수렵도』, 『퍽 환한 하늘』 ,『아무도 너의 깊이를 모른다』 등과 동화책으로 『아름다운 철도원 김행균』 ,『발가락이 꼬물꼬물』 등이 있다.

서운산 깃대봉에 하늘 높이 새겨진 두 분의 마애불. 한 분은 연흥사를 수호하고, 다른 한 분은 서해안 뱃길 루트를 수호하고 있다.

↓연흥사 대웅전 목조삼세여래불좌상. 지방 유형문화재다.
↓↓대웅전 앞뜰 손바닥만한 연못에 수련과 올챙이가 살고 있다. 이 수련과 올챙이는 무슨 인연으로 이곳에 태어났을까.

연흥사 앞마당에 다정히 서 있는 동백나무 할아범과 배롱나무 할멈. 수령 500년이 넘었다.

↑↑연흥사 대웅전. 절정의 붉은 꽃망울을 하늘로 힘껏 밀어올리고 있는 동백나무 꽃기운을 제대로 받고 있다.
↑마애불 가는 길 정상에 정자가 한 채 있다. 이곳에 서면 서해안 뱃길이 한눈에 다 들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