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이를 찾는 파랑새

2009-05-25     관리자

 자신의 삶을 불사르며 하고자 하는 일이 무엇일까? 쉽게 대답할 수 있는 질문 같은데, 막상자기에게 그런 질문이 던져지면 당혹감이 앞선다. 물론 외골로 자신이 택한 삶의 길을 걸어가는 이들도 많다. 성직자, 장인(匠人), 그리고 훌륭한 예술가들이 그렇다. 아니, 그 밖에  직업을 일일이 댈 수 없는 더 많은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면 그저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은 자신의 삶에 지고한 의미를 부여하지 못한다는 말인가. 아닐것이다. 평범해 보이는 우리의 삶에도 그 나름대로 추구하는 철학이 있다. 이 한몸을 불사른다는 적극적 표현을 쓰지는 못하지만, 겉으로 표현되지 않고 생활속에 철학이 곰삭혀 있는 그런 평범한 삶이  더 빛나 보일지도 모른다.

 나는 소설을 쓰는 작가다. 그런데 이 한몸을 불사르며 소설을 쓰고 있느냐고 누가 물으면 먼저 당확감이 앞선다. 그렇다고 소일삼아 글을 쓰고 있다는 뜻은 아니다. 성직자나 장인들처럼 소설 쓰는 일이 삶의 전부를 내던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땅의 대부분의 작가들은 소설가라는 직업으로 살아갈수가 없다. 먹고 살기 위해서 소설과 무관한 직업을 또하나 가지고 있어야 한다. 소설만 쓰고 밥먹여주는 직장은 없다. 처음 소설가가 되겠다고 공부할 때에는 작가, 시인들이 마치 신선처럼 느껴졌었다. 나 자신도 보혜미안이 된것처럼 내삶을 온통 문학과 바꾸어 놓고 헤매기도 했다. 심지어는 십여년간 다니던 좋은 직장마저 팽개치고 고향에 칩거하며 오로지 소설가가 되려는 꿈에 부풀어 있었다.

 다행히 그 꿈을 이루었다.  구름이 아니라 창공을 나는 파랑새를 잡기는 했다. 그러나 그 새는 벌레를 잡으면서 노래를 해야 한다는 것을 비로소 알았다. 하루종일 나뭇가지에 앉아 노래만 부를 수는 없었다. 나이 서른 넘어 나는 새로운 직장을 찾아 이리저리 찬밥 신세를 져야했다. 그러면서 올빼미처럼 남들이 단잠을 잘 때 눈을 뜨고 소설을 써야했다. 내겐 소설을 쓸 시간이라고는 밤밖에 없었다. 그래도 처음에는 그러는 것도 즐거웠다. 내가 좋아하던 꿈을 이루었고, 그 꿈을 먹으며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자랑스러웠는지 모른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그것은 고통으로 다가왔다. 밥벌이를 따로해야 하는 고통과도 다른 것이었다. 좋은 작품을 써야한다는 의무에 쫒기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했다. 여행도 다녀야 하고 참고 서적을 읽으며 고부도 해야 했다. 그런 시간을 만들 수가 없었다. 시간이 생길 때마다 열심히 원고를 써도  일 년에 몇 작품 쓸까말까 한 판에 그런 시간을 낸다는 것은 어쩌면 사치인지도 모른다. 올해로 데뷔한 지 11년째 된다. 이 기간 동안 나는 대부분의 밤을 잃고 살았다. 그 결과 지난해에 창작집 1권과 장편소설 1권을 냈고, 올해에 장편소설 2권을 출간했다. 그리고 연초부터 쓰던 또 하나의 작품을 엊그제 탈고를 해서 4월 중에 출간할 예정으로 작업 중에 있다.

 그리고 하반기에 또 한 편의 장편을 쓸 것이다. 많이 쓰는 것이 자랑일수는 없다. 내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많이 쓴 것을 자랑하고 싶어서가 아니다. 글 쓸 시간이 없어 못 쓴다는 것은 이유가 되지 못한다. 그렇다고 다른 사람이 대신해 줄 수 있는 일도 아니다. 그런 이유를 입밖에 내는 것은 작가 활동을 폐업신고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 땅의 작가들은 벌레를 잡으면서 노래를 해야 하는 척박한 풍토에 살고 ㅇㅆ다. '이 한몸 불살라'하는 일은 못될지 몰라도, 자신이 하는 일에 미치기는 해야 하리라 생각된다. 그것은 자신의 삶에 충실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자기의 독자에게 예의를 갖추는 일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