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도 정신과 시대정신의 만남

푸른 목소리

2009-05-24     관리자

   구도라는 정신과 문학하는 정신의 만남은 가히 천생연분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문학하는 이는 사회의 어떤 물음에도 응답할 수 있는 내용과 철학을 갖고 어느 집단, 어느 계급에도 충분한 해답과 이익을 주어야 하는데, 이는 모든 종교가 갖춰야 할 대사회적 태도와 맞닿는다.

 또한 문학은 종교의 사상으로하여 시야를 넓히고 스스로의 세계를 풍요하게도 하지만 종교의 모순과 부조리를 준열하게 꾸짖는 역할도 한다. 때문에 종교와 문학과의 관계는 영원성과 시대정신의 해후에서 더욱 돈독해지는 것일 게다.

 우리 역사의 어느 시점에서 불교는 이 민족의 정서와 문화를 관통하는 대간(大幹)으로서 민족의 정치이념이자 문화자체로서 다른 어느 사상보다도 실천적으로 작용했다. 역사의 어느 갈피에서든 불교가 시대고(時代苦)와 인생고(人生苦) 해결에 얼마나 능동적이었는가를 발견하기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종교문학이란 '문학적 메카니즘과 종교적 통찰, 구제의 제시 등이 폭넓은 공감을 유발해야 하는 것으로 종교적 교화와 문학적 감동이 별개가 되지 않는 것을 그 일반적 개념으로 할 터이다. 열 집에 여덟·아홉이 수계를 하고 불교를 신봉했던 신라대(代)에 향가와 같은 수준 높은 종교문학이 창작될 수 있었던 것도 불교가 구제와 희망의 제시 등에 인색하지 않았던 데에 그 까닭이 있을 것이다.

 길에서 또 길로, 인간의 무명을 타파하며 종횡무진하셨던 석가모니는 비유와 상징을 가장 완벽하게 구사한 '이야기꾼'으로서, 불교경전은 주지하다시피 철학, 과학, 사상의 성취이자 위대한 문학적 성취이기도 하다.

 불설(佛說)이 얼마나 많은 비유와 상상으로 점철돼 있는가. '불교문학이란 어떤 문학적 여과와 굴절을 거쳤든 위대한 교화자, 이야기꾼으로서 부처의 모습·의지를 문학적 변용으로 형상화하여 독자에게 전달'해야 하는 이중구조를 갖는다고도 하겠다.

 1990년대는 이른바 새 세계관을 모색하는 잠복기로서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등 여러 분야에서 전환기적 징후를 분명히 하고 있는 해이다. 아울러 문학계는 그 소재 셩셕의 확대와 더불어 다양한 모색을 거듭하는 시기로 평가된다. 그러나 불교문학은 이와 같은 시대상황을 담아내지 못함으로써 시대적 변별성을 기하지 못하기 때문에 더욱 변두리문학으로 밀려난 느낌을 주기도 한다.

 풍부한 문학적 자산을 갖고 있으면서도 여타의 문학작품에 비해 대중성획득에서 뒤지는 것은 대부분의 불교문학작품이 천착하고 있는 허무와 윤회사상이 당대의 시대정신을 관통하지 못하는 데에 그 이유가 있다. 결국 불교문학의 비약적 발전은 불교의 현실 비대응력에서 기인하는 여러 모순을 지양하는 것에 있다는 얘기가 되겠다. 90년도의 4대문학상을 비롯한 문학상 수상작은 대부분 운동권 이야기 혹은 산업사회 비판 등 정치, 사회, 경제의 제반 모순이 야기한 시대와 인생고(苦)에 주제를 두고 있다.

 앞서 지적했다시피 90년대의 문학계는 세계사적 변혁기 속에서 젊은 작가들의 모색이 실로 다양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제도와 개인의 관계에 대한 현실인즉, 민족 · 민중문학계열의 성과를 비롯, 포스트모더니즘이라 불리는 여러 전위적 시도들의 다양한 가능성들이 제시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도 여러 승려문인들의 시집 간행은 7~8권에 이르러 양에 있어서 위축된 감은 없으나 문단의 주목에 값할 만 한 성과는 없었다고 보여진다. 다만 민족 · 민중문학계열의 감지하, 황지우의 여러 글들에서 불교사상의 현대적 변용으로 이해될만한 성과는 오래 주목할 가치가 있어 보인다.

 이렇듯 비교적 척박한 문학활동의 풍토 속에서 지난해 4월에 개관한 불교문학포교원의 의미가 더욱 커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 포교원 내에 '큰수레 글모임'이라는 동인은 주부, 회사원, 대학생들로 구성된 20~30명의 회원들이 주지혜관 스님의 각별한 뒷바라지를 받으며 이끌어가는 동인 모임이다. 주부들의 활발한 창작의욕과 참여가 돋보이는 가운데 매월 2회의 합쳥회와 문인 초빙으로 회를 이끈다. 이는 불교권내의 바람직한 동인활동의 모범으로 평가되는 것으로 창작인구의 저변확대에도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다른 하나 불교문학의 발전을 위한 방안으로 '문학상'제정을 들 수 있겠는데, 70년대 중반 대한불청에서 제정한 '만해문학상'은 1,2회 수상자를 내고는 중단됐다가 지금은 '창비사'로 넘어가 불교계의 심사기준을 벗어났고, '88년 「불교문학사」에서 제정한 '불교문학신인상'과 '만해문학상', '불교문학상'은「불교문학」이 정간됨으로서 사실상 없어지고, 「현대시학」에서 주관하는 '녹원문학상', '일븡문학상'만이 남아있어서 교계에서는 내세울 만한 문학상이 없는 실정이다.

 교계의 신문 · 잡지의 공모로 등단한 여러 승려 문인들은 독서인구의 저변확대를 통해 불교의 대중화에도 큰 기여를 했으나 승려라는 특수한 신분 때문인지 '성역의 문학'이라는 선입견을 불식하기엔 어려움이 따르는 것 같다. 때문에 기존의 교계 신문 · 잡지들은 젊은 문인들에게 지면을 할애하는데 인색해서는 안되겠고 기왕에 있었던 '신춘문예'나 '문학상'을 복원하는 것으로 불자문인층을 두텁게 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필요가 있겠다.

 '문학상'이란 작가나 작품에 권위와 대중성을 부여하는 것으로 이상문학상, 동인문학상, 한국일보문학상, 현대문학상 등 이른바 4대 문학상과 어깨를 견줄 만한 권위있는 문학상 하나 키워내는 것은 이들 언론매체가 떠맡아야 할 과제가 아닐까 싶다.

 전환기의 불교문학이란 종교와 시대정신을 조화시켜 새로운 모랄을 향하게 하는 새로운 인간형, '보살'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하겠고, 세계사적 변혁 속에서 '문학의 역할과 종교의 역할은 무엇인가'에 대한 끊임없는 찬착이 있어야 할 것으로 믿는다. 그것은 또한 불교문학의 '탈변두리 문학'과 대중성획득을 가능케 하는 첩경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