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용어해설] 공 空

*불교용어 해설

2009-05-20     관리자

  범어로는 '슈냐'인데 한문으로 순약다(舜若)라 적고 공성(空性)인 야는 舜者多라 한다. 공이란 한 마디로 어떤 사물이 가지는 성질이란 없다는 것이 원래의 의미이다.

  공은 불교의 중심사상이다. 대승불교는 공을 근간으로 하여 성립된다. 그 이유는, 소승불교가 현상적 존재와 그가 지닌 성격을 인정하고 거기서 오는 불행과 고난을 인정하며 그런 고난에서 벗어날 것을 가르친다. 그래서 현실적 인생과 존재의 여실한 모습을 해명하며 그 원인을 규명한다. 말하자면 인생현상에 대한 진단이다. 그 다음에 그런 결과를 가져 온 원인을 단절하고 그에 이르는 방법을 제시하는 것이 소승 불교의 기본성격이다. 이러한 가르침은 부처님의 깨달음의 지혜가 아닌 것은 아니지만 그 전부가 온전히 드러난 것은 아니다. 어디까지나 범부편에 서서 범부적 감각을 토대로 하여 고로부터 벗어나도록 가르치는 것이다. 이에 비해 대승의 가르침은 부처님의 깨달음의 지혜를 정면 노출시킨다. 범부들이 보는 사물에 대한 인식이 다양하고 확정적인 듯 하여도 깨달음의 눈에는 원래로 한 물건도 없는 것인데 중생들이 망견으로 그렇게 분별하는 것이다. 이 '깨달음의 전면노출', 이것이 참 불법이고 그 첫째의 특징이 공의 사상이다. 공은 반야라고 하는 깨달음의 지혜로서 보아진 인간과 일체 사물과 진리의 근본적 상태인 것이다.

  대개 불교는 무아(無我)를 근본 입장으로 삼는다. 무아라는 것은, 우리들이 일상 자기의 본질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자아가 망상에 집착한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밝힘으로써 자아를 부정하는 것이다. 그래서 불교의 기본이라고 하는 삼법인(三法印)의 하나로 제법무아(諸法無我)가 있게 된다. 이 무(無)의 사상을 보다 깊이 추궁하여 그 본질적 의미를 공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대승불교이다.

  대개 우리들은 자신의 독자적 존재성을 생각하고 자기 본질을 실체화하고 또는 절대화한다. 이런 실체로서의 존재를 자아라고 부르고 있다. 그런데 이런 자아와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일체 사물이 독자적 본체를 가지고 있는 것인가 물어볼 때 반야의 눈에서는 공이라고 대답한다. 그에는 몇가지 관찰이 있다.

  쳣째는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온갖 경계란 망심에 의하여 집착한 결과로써 나타난 경계이다. 실로는 없는 것을, 마치 허공에 한 물건도 없는 것을 헛꽃이 있다고 집착하는 것과 같다. 또 일체 사물이란 인연 따라 생하고 멸하는 연속적 인연관계인 것이다. 실로 확정적인 사물이라는 존재성은 없는 것이다. 이러한 입장은 하나의 사물을 분석해 봐도 명백해진다. 가령 자동차를 들어 말하면 거기에는 온갖 부속이 결합된 것이고 그 부속들은 물질이며 물질의 근원은 다수 소립자로 구성되고 소립자는 전자의 운동상태라고 하는 것이 오늘의 물리학이 밝혀 준 결론이다. 여기에서 보면 물질이란 필경 힘이며 관계이지 자동차라는 고유의 독자성이란 어디에도 없는 것이다. 뿐만이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 형언할 수 없는 힘이다. 전자다 하지만 그것을 포함하고 있는 입자는 보다 큰 공간을 가지고 있다.  이 공간의 바탕을 무어라 부를 것이며 더 나아가 이러한 공간성을 인식하고 인식 속에 포용하는 인간 주체를 무엇이라 규정할 것인가. 이 곳에 이르러서는 말과 형용과 논리가 미칠 수 없는 것이다. 근원적인 진리성의 무한성을 한계적 표현으로 말할 수 없듯이 일체 사물 또한 그와 같다. 이것을 공이라고 한다.

  공은 현상적 성질의 무(無)를 말한다. 현상적 감각이나 경계나 그 인식되어진 바가 실로 무임을 밝힐 뿐 공 자체에 대하여 어떤 의미규정을 하는 것이 아니다. 만약 공을 무의 의미로 확정한다면 그것은 공이 아니다. 공은 불공(不空)을 포함하고 있으므로 불공을 모르는 공이란 이것은 완공(頑空)이다.

  공의 본질을 실체화하려는 위혐을 극히 경계한다.

  이런 입장에서 보면 인간도 우주도 일체 존재도 그 근원은 공이다. 공은 무규정성이며 무한성이며 원만성이며 무한의 힘을 그 자신에 내포한다. 인식이라는 한계적 규정으로 잡을 수 없는 것이로되 인간과 만유의 실상이 공인 것이다. 여기에서 비로소 인간과 세계의 존재 의미가 드러난다. 끝없이 막힘없는 무한의 가치가 무진장인 채 전개되어 있는 인간과 세계를 본다. 인간의 가치도, 세계의 가치도, 다시 더 말할 수 없는 절대적 진실로 충만되어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일체 존재는 이런 존재성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것이 해명되므로써 진실한 인간의 길과 진실한 역사의 의미가 밝혀지는 것이다. 대승불교는 이와 같이 실존 규명을 통하여 인간과 역사의 의미를 열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