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을 읽는 사람들의 착각

선가귀감 강설 16

2007-04-30     관리자

제48장
若無忍行, 萬行不成. 만약 인욕행이 없다면 만 가지 행을 이루지 못하니라.
수행하는 문이 한량없지만 자비와 인욕이 원 뿌리이기에,
고덕이 이르셨느니라.
“(아상을 버려 고통을 받는 내가 없기 때문에) 인욕하는 마음은
환상의 꿈과 같고, 굴욕을 받는 현실은 거북의 털과 같느니라.”

강설
실제 없는 고통을 인욕한다고 하는 것이 착각이듯이, 실제 없는 깨달음을 깨닫는 것 역시 착각이다. 우리 중생은 착각 아닌 것이 없는데, 다음 유머에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첫째, 왕들의 착각은 힘이면 다 되는 줄 안다. 둘째, 여자들의 착각은 다이어트하면 다 미인이 되는 줄 안다. 셋째, 거짓말하는 사람들의 착각은 달콤한 말이면 다 되는 줄 안다. 넷째, 아기들의 착각은 울면 다 되는 줄 안다. 다섯째, 수행자들의 착각은 산에서 안 내려오면 다 되는 줄 안다. 여섯째, 도인들의 착각은 기가 팔팔하게 소리치면 다 되는 줄 안다. 마지막,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의 착각은 자기는 안 그러는 줄 안다.
인욕(忍辱): 부처님의 본생담에는 인욕과 육신 보시의 내용이 주로 많다. 수행은 인욕행과 육신의 보시행이 바탕이 된다는 교훈이다. 요즘 우리 주위에 부부의 이혼율이 높아가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부부가 서로 인욕하는 마음이 부족한 데서 생긴 것이다. 스님들도 산중 안거 중에 수행 장애가 오는 것은 인욕하지 못한 데서 오는 일이 많다. 안거에 들어가기 전에 어른 스님은 말한다. “만일 안거 석 달을 참지 못하고 산문 밖에 나가는 사람은 병아리가 21일간의 부화 기간을 채우지 못하고 썩어서 버려지는 것과 같습니다.”
내가 출가하려고 마음먹었을 때의 일이다. 기차 안에서 한 비구니 노스님을 만난 자리인데 노스님이 내게 당부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참고 또 참도록 하십시오. 참아야 중노릇을 잘 할 수가 있습니다. 관세음보살!”
이후 출가하여 해인 강원 학인 시절에 노스님을 극적으로 만나, 이야기를 잠깐 나눈 게 마지막이었다. 노스님이 열반에 들어 가야산 다비장에 새로 연기가 피어오르는 날, “참고 또 참도록 하십시오.” 하는 법문이 홀연 내 머리에 떠올랐다. 인의자실(忍衣慈室)은 치문(緇門)에 나오는 말로, 인욕의 옷과 자비의 방이라는 뜻이다. 자신을 위해서는 수치심을 가리는 옷이 필요하고, 남을 위해서는 따뜻한 방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자기 자신에게 인욕의 옷이 없으면 수치스러움을 드러내게 되고, 남에게 자비의 따뜻한 방이 없으면 그들을 노숙자로 만들기 때문이다. 인의자실은 수행인의 금과옥조이다.

제49장
守本眞心, 第一精進. 본래 천진한 마음 그대로를 지키는 것이 정진제일이니라.
만약 정진한다는 마음을 일으키면 이것은 망상이지 정진이 아니니라. 그러므로 이르셨느니라.

“막망상(莫妄想), 막망상(莫妄想), 망상을 피우지 말라!
망상을 피우지 말라!” 게으른 사람은 (앞을 보지 않고 이미 이뤄 놓은 성과를 보기 위해) 항상 뒤만 쳐다보나니, 이것은 자신을 포기한 사람이니라.

강설
유위법에서는 정진을 해야 정진이나, 무위법에서는 정진함이 없어야 정진이다. 본래 천진함을 등지고 정진하는 마음을 일으키는 것은 오염에 불과하다. 대지(大智) 스님의 이득한인송(羸得閑人頌)을 옮겨본다.
행작복전 의하신(幸作福田 衣下身) 다행스레 가사를 몸에 수하고
건곤리득 일한인(乾坤羸得 一閑人) 천지간에 파리한 일없는 사람
유연즉주 무연거(有緣卽住 無緣去) 인연 따라 머물다 훌훌 떠나서
일임청풍 송백운(一任淸風 送白雲) 맑은 바람 따라서 백운 가는 듯

막망상(莫妄想): 분양 무업(汾陽無業, 762~823) 스님은 평생 동안 ‘막망상! 막망상!’ 이 말 한 마디로 후학을 가르쳤다고 한다.

제50장
持呪者, 現業 易制, 自行可違. 宿業 難除, 必借神力.
진언을 외우는 행자는, 금생의 업은 다스리기가 쉬워 자기 힘으로 바꿀 수 있으나,
전생의 업은 지우기 어려워 신통력을 써야 하느니라.
마등 여인이 (진언 기도로) 과(果)를 얻었다 함은 실로 속이는 말이 아니니라.
이런 까닭에 진언을 외지 않고 마장을 멀리 보내는 일은 없느니라.

진언(眞言): ‘옴 마니 반메 훔’ 하는 진언은 글의 내용보다는 발음 울림에 중점을 둔다. 그리하여 진언의 뜻은 알려고 하지 말고, 다만 불보살님의 가피로 모든 일이 잘되기를 발원하며 열심히 암송하기만을 권장한다. 힌두교를 근거로 발생한 인도 불교의 진언은 대략 8세기경에 티벳 성자 파드마 삼바바(蓮華座) 스님과 산티 락시타(寂護) 스님이 전해서 밀교 수행의 주요한 내용이 되었다. 중국은 당나라 때 선무외(善無畏) 삼장(三藏)이 밀종론을 번역한 데서 중국의 진언종이 시작되었고, 우리나라는 신라 문무왕 때에 혜통(惠通) 스님이 선무외 스님 문하에 들어가 높은 경지에 올라 인결(印訣)을 받고 전한 데서 시작되었다.
전체를 진언이라고 하나 두 가지로 나누어서, 긴 문장을 다라니라고 하고 짧은 것을 진언이라고 한다. 이것을 나누는 기준은 명확하지 않으나 대개 한 호흡에 할 수 있는 짧은 것을 진언이라고 한다. 여기서 참선의 자력(自力)과 기도의 타력(他力)에 의문이 생긴다. 서산 스님은 모두를 수용하여 참선자가 염불과 진언의 기도를 하도록 하였으니, 자력(自力)과 타력(他力)을 묻지 않고 자각(自覺)이면 충분하다는 주장이다. 아주 쉽게 고양이 비유로 말해보겠다. “검은 고양이냐, 흰 고양이냐를 물을 것 없이, 쥐만 잘 잡으면 된다.”
참고로 성철 스님의 말씀을 인용한다.
“마음의 거울을 잘 닦아 자기를 바로 보면 자기 속이 금광이요, 자신이 순금임을 발견하게 된다. 자기 안에 금광을 놔두고 바깥에서 찾으려 하는 것은 마치 황금으로 된 집안에 있으면서 돈이 없다고 하는 것과 같다. 행복은 받거나 주는 것이 아니라 짓는 것이다. 내 안에서 스스로 지어내는 것이다. 그러니 스스로 있는 힘껏 복 짓기를 하라. 자력(自力)을 다했을 때에야 타력(他力)이 나타나는 법이다.”

마등가(摩登伽): 마등가는 악작업(惡作業)이라고 번역한다. 능엄경의 일화이다. 얼굴이 잘생긴 아난 존자가 탁발 나갔다가, 마등가녀가 외우는 진언 유혹의 힘에 이끌려 마등가녀 방에 들어갔을 때, 이 극적 순간에 부처님이 아난 존자를 구해냈다는 내용이다. 마등가녀는 마음을 바꾸어 출가를 하여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아라한(阿羅漢)과를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