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선작법

선의 실천

2009-05-20     관리자
 
(7) 조기(調氣) - 호흡을 고르게 하여야한다
선에는 원래로 좌법도 호흡법도 필요 없지만 좌선하는 데는 반드시 좌선의 기초법을 따라야 한다.
그렇지 아니할 때 상기 기타 신체상의 장애가 생겨 공부에 지장을 받을 때가 많다.
좌선의 기초법이란 바른 자세와 호흡법이다.

호흡은 수식관을 하는 것이 좋다.
먼저 몸을 3, 4회 전후좌우로 흔들어 자세를 바르게 한다.  처음에 호흡을 한 두 번 크게 내쉰다.  다음에 서서히 호흡을 들이 쉽다.  이때 생각으로 호흡이 코에서 가슴을 거쳐 배로, 다시 아랫배 배꼽 아래 단전으로 모아지게 한다.  이때에 너무 단전에로 힘을 모으려고 무리하게 힘쓸 것은 없다.
또한 길고 깊은 호흡을 하려고 너무 무리할 것도 없다.  다만 요긴한 것은 호흡이 단전에 으르는 과정
 
에서 떠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호흡이 단전에 이르러서는 잠시 머문다.  그리고는 다시 서서히 밖으로 내쉰다  역시 생각은 빈틈없이 호흡을 추적하되 단전에서 가슴으로 다시 코로 내쉬는 것을 관하여야 한다.  이렇게 한번 호흡하였을 때 [하나!]하고 생각으로 센다.  한 호흡이 끝나면 다시 반복하여 열까지 세고, 그 다음에는 다시 하나부터 반복한다.
호흡은 항상 코로 한다.  속도는 평상시보다 천천히 그리고 깊게 하되 무리하지 않도록 한다.  호흡이 순숙해지면 자연히 미세하고 깊은 호흡이 되는 법이다.  호흡은 거칠면 안 된다.  서두르면 안 된다.  모든 생각을 놓아버리고 하여야 한다.  몸에서 기운을 풀고 바른 자세(특히 허리를 펼 것)와 편안한 마음으로 정성스럽게 하여야 한다.
이상이 수식관의 기본 요령이다.  시식관이 익숙해지면 수는 헤아리지 말고 다만 호흡과정만을 관하도록 한다.  호흡 기초가 다져지면 공부에 큰 조도(助道)가 된다.  몸에서 병을 물리치고 수면이 단축되고 신신이 경쾌하여지며 정신집중력이 강해지고 의지에 의한 심신 통제력이 강화된다.  그리고 삼매력을 키우는 터전이 굳어진다.
수식관은 반드시 참선한 선각자의 지도 하에서 행하여야 할 것을 거듭 말해둔다.  좌선기초가 익어지면 반드시 화두를 배워야 하므로 더욱 그렇다.

※ 호흡하는 데 주의할 몇 가지

ㄱ. 호흡하는 속도
호흡 속도를 처음부터 느리게 하려고 힘쓸 것 없다.  처음에는 다만 자연스러운 호흡에서 의식적 호흡을 하면서 평상시보다 약간 깊고 느리고 미세하게 하면 된다.  호흡이 익어감에 따라 더욱 미세하여지고 깊어지며 속도는 느려지게 마련이다.  참선 이외의 호흡법에서는 느리고 미세한 호흡을 심히 강조하나 참선호흡에서는 그보다 자연스러운 호흡에서 서서히 미세한 호흡으로 향하도록 하고 성급하게 느린 호흡을 요구하지 않는다.
속도는 사람마다 다르게 된다.

ㄴ. 호흡을 들이 쉬고 머무는 정도
호흡을 들이 쉬고 잠시 머무는데 이 머무는 시간을 오래 하려고 힘쓰는 사람이 흔히 있다.  또한 그런 호흡법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도 무리하지 않도록 짧은 시간에서 시작하여 자연스럽게 서서히 시간이 늘어가게 하는 것이 좋다.
무리하게 긴 시간 머무르면 호흡이 도리어 거칠어지기 쉽다.  오래 머무는 것을 주장하는 호흡법은 좌선에서는 취하지 않는다.

ㄷ. 무리하게 배에 힘주지 마라
호흡을 하복부 단전으로 하려고 하면 저절로 호흡을 시작하는 순간부터 아랫배에 힘이 가게 마련이다.  생각이 호흡을 추적하면서 단전으로 진행함을 따라 배의 힘도 서서히 더해간다.  호흡이 단전에 이르러서 호흡을 잠시 동안 멈추게 되면 배에 힘이 가중된다.  이와 같이 자연스러운 호흡에서 배에 모아지는 힘은 좋은 것이다.  그러나 호흡을 무리하게 오래 머물게 하고자 하여 배에 힘을 주거나 또는 단전의 힘을 기른다 하여 의식적으로 과할 정도의 힘을 주게 되면 여러 가지 위험이 따른다.  참선에서는 무리하게 배에 힘주는 것을 취하지 않는다.

ㄹ. 호흡은 앉아서만 하는가?
호흡은 앉아서 시작한다.  앉아서 하여야 힘을 얻기 쉽다.  그러나 차차 익어감에 따라 일어섯 하기도 하고 좀 더 익숙해지면 걸어 다니면서도 하고 누워서도 할 수 있게 된다.
호흡은 앉아서 시작하여 서고 걷고 눕고 하는 어느 동작에서도 한결같이 되도록 확충하여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ㅁ. 삼매가 현전하기를 기다리지 마라
좌선에 있어 호흡법은 이것이 선을 하는데 조도로서 하는 것뿐이다.  그런데 개중에는 호흡으로 어떤 삼매의 힘이나 신기한 현상을 바라는 사람이 있다.  삼매에 들고 망념이 끊어져 의식차원이 높아지는 것은 공부에 따른 자연적 결과이다.
그런데 호흡하면서 이러한 현상을 기다린다는 것은 도리어 호흡의 근본을 망각한 것이 되고 망념을 일으키거나 속효심을 내고 치구심을 내어 참선하는 사람의 기본자세와 어긋나게 된다.  주의할 일이다.
참선에 있어 호흡은 어디까지나 조도방편이다.  호흡을 목적으로 삼고 다시 구하는 것이 있다면 외도의 소견인 것이다.

ㅂ. 호흡하는 마음상태
앞서 말하여 온 바에 따라 여법하게 자세를 바로 하고 호흡을 바로 하여 나아가면 저절로 마음이 고루어 진다.  번뇌가 쉬고, 마음이 밝고, 경쾌하게 된다.  수식관을 하는 중 호흡하는 수효를 세는 것을 멈추고 오직 생각으로 호흡을 함께 하여가는 경우에 이르러서는 그 마음은 사뭇 맑고 담담해 간다.  이런 때 담담하다는 생각이나, 맑다하는 생각이거나, 고요하다는 생각이 든다면 이것은 바로 망념이다.  오직 호흡을 정밀히 관하여 망념이 쉬게 하여야 한다.  고요하고 말끔한 정신이 있는 마음상태 이것이 좌선하는 마음상태다.
좌선규식이 자리가 잡히면 반드시 선지식의 지도를 받아야 한다.  화두를 들어 마음을 잡두리해 나아가면 자성을 깨치게 될 것이며, 설사 화두가 아니더라도 선지식의 바른 지도를 받아 말끔한 정신끼(성)와 고요(적)를 함께 닦아가면(등지) 대도의 문이 열리게 된다.

ㅅ. 좌선에서 일어날 때
작가선사의 좌선에서 이르기를 [만약 좌선하다 일어나고자 하면 몸을 천천히 움직여서 평온하게 일어나라.  결코 급작스레 움직이지 마라.  정에서 나온 뒤에는 항상 방편을 지어서 정력을 호지하기를 어린 아기를 다루듯이 하라.  그러면 정력을 쉽게 이룰 것이다.]하였는데 이것을 올바로 행하자면 무엇보다 호흡을 정밀히 하는 기본적 작법이 몸에 배어야 하는 것이다.
좌선에서 일어날 때는 먼저 수인을 풀어 무릎 위에 놓고 호흡을 크게 3,4회 토한 다음 몸을 좌우로 서서히 움직인다.  그리고 가부좌한 다리를 이르켜 세워 몸 자세를 편안하게 하고 조용히 일어선다.

(8) 조심(調心) - 마음을 고른다
이미 몸이 안정되고 호흡이 고르어지면 저절로 번뇌가 끊어져 맑은 마음이 드러나게 된다.  이때에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일체 생각을 하면 안 된다.  도 깨치기를 바란다거나 성현이 감응하기를 기다린다거나 또는 이것이 좋은 공부다 하는 분별심을 내어서는 안 된다.  도무지 일체 생각을 말고 오직 공부를 지어 갈줄만 알아야 한다.  이것이 좌선의에 있어 마지막 과정이다.
마땅히 선지식의 지시를 받아 공부를 지어 가되 결코 그 밖에 생각이 있어서는 안 된다.  자각선사는 말하기를 [이와 같이 오래오래 지어가 모든 반연을 잊으면 저절로 한쪽을 이룰 것이니 이것이 좌선이 요긴한 기술이다.  생각건대 좌선은 이것이 안락법문(安樂法門)인데 사람들이 도리어 병을 얻는 것을 흔히 보니, 그 원인은 대개가 마을을 잘못 쓰는 탓이다.]라 하였다.
마음을 고르는 법과 다시 나아가 화두공부하는 법에 대하여는 별도 선지식의 법문에 미루고 여기서는 언급하지 않겠다.

(9) 변마(辨魔) - 공부하는데 마군의 장난이나 공부가 바로 되고 잘못 됨을 가릴
                     줄 알아야 한다.
도가 높아지면 마가 성한다.  마음이 맑아지고 삼매를 이루게 되면 스스로 가지가지 경계가 나타난다.  경계는 대체로 두 가지다. 
하나는 공부를 방해하고 마음을 흔들리게 하는 마군의 장난과 삼매력에 상응하는 기이한 경계가 나타나는 것이고, 또 하나는 경계를 당하여 마음에서 희한한 생각을 갖거나 그 경계를 인정하고 추구하고자 하는 생각이다.  밖으로 마의 장난이 온다든가, 정력(定力)에 상응하는 기이하고 수승한 경계가 나타나는 데에 관하여는 능엄경에 상세하다.  이러한 경계를 집착하면 공부가 퇴실한다.  경계가 나타나는 이유를 알아야 그에 대한 분명한 대책도 서는 것이니 공부인은 마(魔)를 분별하고 대책하는 방법을 잘 알고 있어야 한다.
선경계 악경계 순경계 역경계는 그 원인이 마음에 있다.  정을 이루었을 때 정의 핵심인 공부가(예, 화두) 분명치 않고 초점을 잃었을 때 경계가 벌어지는 것이므로 오로지 공부만 면밀하게 지어가면 일체 경계가 나타날 틈이 없는 것이다.
둘째는 공부인이 마음에 구하는 것이 있거나 망념이 있으면 경계가 벌어진다.  그러므로 공부인은 일체 구하는 생각이 없어야 한다.  도 깨치기를 구하거나 불조 만나기를 바라거나 도가 현전하기를 기다리거나 하는 마음이 마를 부르는 추청장인 줄을 알아야 한다.
셋째는 마음이 본래로 형상이 없는 것을 요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만법은 마음에서 일어남이요 경계는 일심의 나타남이라면 일심이 본래로 형상이 없거늘 도문에 어찌 가히 취할 경계가 있을 것인가] 하는 이 도리를 잘 알아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공부에 경계가 나타났다는 자는 궁부인의 마음자세에 허점이 있었거나 공부에 대한 바른 이해가 없기 때문이라는 것을 일단 알아 두어야 한다.
경계가 벌어지거든 공부가 곁길로 나간 것을 곧 깨닫고 오직 본참 공부를 향하여 마음을 돌려 면밀하게 지어가야 한다.  그러면 온갖 경계는 제하려 하지 않아도 저절로 없어지고 공부는 더욱 깊게 나아가게 된다.  공부는 오직 지어갈 줄만 아는 이것이 요긴한 것이다.  대체로 공부를 방해하는 선악 경계는 세 통로로 나타난다.
그 하나는 눈에 보이는 것이요, 둘째는 귀에 들리는 것이요, 셋째는 마음에 알려오는 것이다.  공부인이 이런 경계를 만나거든 모두가 다 아니라고 관하여야 한다.  아무리 경계가 수승하고 미묘법문을 설해 오더라도 모두가 마경계인 것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이러한 경계가 벌어지는 원인이 자신의 마음에 구하는 생각이나, 마음에 샘(漏) 즉 망념의 뿌리가 남아 있어서 그런 줄을 알고 마음을 크게 돌이켜 오직 공부에만 면밀하고 힘있게 파고들어야 한다.  이런 때가 가히 지혜와 용맹심을 시험해 볼만한 호시절이다.

(10) 호지(護持) - 좌선할 때의 마음 상태를 일체시에 끊임이 없도록 잘 지켜가야
                      한다.
좌선에서 일어서 포행할 때와 같이 선실에서 나와 밖을 거닐더다도 항상 좌선하는 마음 상태를 지켜가야 하는 것이다.  좌선에서 일어서 나올 때는 조용히 몸을 움직이도록 하고 갑작스레 일어서면 안 된다.  지각선사는 [어린 아기를 다루듯이 하라]고 하였다.  또 자각선사는 정력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원각경에도 [걸림이 없는 청정한 지혜는 모두가 선정(禪定)에서 생긴다] 하였다.  그런데 여기 정력이라 한 것에 대하여 한갓 마음을 움직이지 아니하고 생각을 끊은 상태로 알아서는 큰 잘못이다.  여기의 정력은 좌선시의 고요하고도 말끔하고 또렷한 마음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한 마음 상태에서 지혜의 눈이 열리고 자성의 도를 보게 된다.  월래 참선 법문은 습정(習定)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고 견성(見性)을 말하고 철견(徹見)을 요구한다.  여기에는 원래로 좌법이나 호흡법이라는 것이 붙을 여지가 없는 것이다.  다만 말끔한 바른 눈초리에서 비로소 자성을 매(昧)하지 않는 것이므로 초참자에게 바른 눈을 열도록 조선의의 문을 열어 논 것이다.
좌선시에는 공부하다가 선실에서 나오면 곧 망상과 잡사에 내맡기고 또 잠시 좌선하다가 다시 혼침 산란에 빠져 든다면 이런 공부로는 횃불을 눈에 들이대도 마침내 불을 못 볼 것이다.  옛 조사가 이르기를 참선은 [날카로운 칼날을 빼어 세운 듯 닭이 알을 품듯 고양이가 쥐굴을 노리 듯 늙은 쥐가 궤짝을 썰듯이 하라]고 하였으니 미루어 호지의 뜻을 알아야 한다.

4. 뒷말
여기에서 말한 좌선의는 참선의 초참학도를 위한 것이다.  우리 한국선방에 전하여 내려오는 관례와 필자의 체험을 통하여 일반화 할 수 있는 범위를 기록하였다.  그러므로 이미 참선에 힘을 얻은 구참들이 이에 걸림없이 방편을 베푸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고 선이 앉는데 있다기보다 오히려 일상의 동용중에 있는 것이므로 선을 뜻하는 분은 동태선 또는 선의 활용에서 선의 진미를 체득하고 공부를 증진시키기를 바란다.
동태선 또는 선의 활용이 어떤 것인가는 힘차게 스스로 정진한 데서 저절로 알아지는 것이므로 여기서는 말하지 않겠다.
그리고 여기의 좌선의가 절대적이 아닌 것도 말해둔다.  천마와 같은 장부아(丈夫兒)에게 무슨 굴레가 당하겠는가!
끝으로 공부인은 반드시 선지식에 의지하라고 권한다.  선지식의 가르침을 몸소 행하므로써 그 뜻을 해득하도록 권하겠다.  원래 없는 불조의 말씀은 귀로 알아들을 수는 없는 것이다.
또한 여기서는 좌선의식만 말한 것이므로 화두(화두 • 공안)에 대하여는 선지식에다 묻기를 바란다.
<앞 부분에 복사 한 것이 잘려져서 그 부분은 비워두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