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오늘

시뜨락

2007-04-30     관리자


다른 시간은 없다, 언제나 오늘,
나는 꽃봉오리와 끝없이 활짝 핀 꽃과
축 늘어진 머리를 한 땅바닥 위의 주검을 바라본다.
언제나 오늘, 산맥은 수백만 주기의 끝없는 시간 동안
벗어나려 애썼던 강물 아래 잠겨있다.
언제나 오늘.

과거는 없다, 과거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기에.
다가올 미래도 없다, 지금 존재하지 않기에.
그러니 어떤 여행도, 어떤 여행객도, 어떤 목표도,
어리석게 영혼의 벽돌을 갈아 빛나게 하려는 어떤 일도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오늘뿐,
언제나 지금 여기인 나날
아무런 서원 없이도 성취에 이르는 노고,
그 자체로 최선책인 삶,
언제나 오늘.


Always Today

Always today, that knows no different hour,
I see the bud, the full unbounded flower,
The drooping head and death upon the ground.
Always today the mountain range is drowned
Beneath the waters whence it strove to climb
In many-millioned cycle of no time.
Always today.

There is no past; the past has ceased to be.
No days to come; they are not presently.
No journey hence, no traveller, no Goal,
No polishing the foolish brick of soul.

Only today,
The day that is for ever here and now
Of labour in fulfillment of no vow,
Of Life that is itself the only Way,
Always today.


불교의 영향을 받아 쓴 서양 시들은 상당 부분 일일호호(日日好好, 날마다 좋은 날)를 노래한다. 위의 시도 역시 과거, 미래가 아닌 지금 이 순간이 곧 영원이며 극락이라고 말한다.
시인은 ‘언제나 오늘에’ 꽃을 바라보며 꽃의 과거, 현재, 미래를 동시에 본다. 『금강경』에서도 “과거의 마음도, 현재의 마음도, 미래의 마음도 구할 수 없다.”라고 하였다. 이 구절은 우리의 현재 시간 개념을 초월하여 ‘순간이 곧 영원’이며 ‘영원이 곧 지금 이 순간’이라는 즉, 길고 짧다는 상대적인 시간 개념에서 벗어나 절대 시간개념으로 인식을 바꾸라는 가르침이다.
의상 조사의 「법성게」에서도 “무량겁이 일념이요, 일념이 곧 무량겁이다(無量遠劫卽一念 一念卽是無量劫).”라고 하였다. 이도 역시 시간의 상대성에서 벗어나 절대적인 시간으로 살아가라고 가르치고 있다.
이 시인도 역시 지금 이 순간이 과거 현재 미래 모두를 아우르는 절대적 상태이며, 이 순간을 직시하고 체득하는 것이 곧 영원이며 극락이라 노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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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험프뤼즈(Christmas Humphreys)|『불교학도 입문서』,『영국불교 60년』,『불교사전』,『불교』(수천 권이 팔린 인기있는 불교입문서)를 비롯한 15권의 불교서적을 출판한 영국 시인. 서양의 주요한 불교작가 중 한 사람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험프뤼즈는 세계2차대전 동안 3권의 시집을 출판했다. 그는 여러 불교국가를 방문했으며 1924년에 불교학회(The Buddhist Society)를 창설했고 세계 불자회(The World Fellowship of Buddhists)의 부회장이었다.

정영희|University of Massachusetts at Amherst의 영어과 visiting profess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