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苦海인가

청소년 불교강좌

2009-05-17     관리자

  o 참 기쁨 어디 있나

[문] 선생님, 네 가지 거룩한 진리[四聖諦-사성제]의 첫째가 고통의 진리[苦諦]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고제(苦諦)란 곧, 우리들의 이 인생이 고통 그 자체라는 말씀입니까?

[답] 부처님께서는 우리들의 삶을 고통이라고 인식하는 것으로부터 법륜(法輪), 곧 진리의 말씀을 시작하고 계십니다. 경(經)에서 우리는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고통의 기본 형태로서 여덟 가지[八苦]를 예시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수행자들아, 이것이 고(苦)의 성제(聖諦)이다. 마땅히 알라, 태어남[生]은 고통이다. 늙음[老]은 고통이다. 병[病]은 고통이다. 죽음[死]은 고통이다. 미운 자와 만나는 것도 고통이요[怨憎會苦]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것도 고통이며[愛別離苦], 구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것도 고통이니[求不得苦], 통틀어 이 몸뚱이 전체가 고통이니라[五陰盛苦]."  <잡아함경 15, 17>

[문] 부처님께서는 너무 우리 인생을 비극적으로 보고 계시지 않습니까? 우리 인생에는, 특히 저희들 젊은 세대들의 삶 속에는 얼마든지 기쁘고 희망찬 일도 많지 않습니까?

[답] 물론입니다. 젊은이들은 마땅히 그들의 삶을 즐겨야 하고, 그 속에서 기쁨을 누리고, 미래에 대한 벅찬 희망을 가질 것입니다. 이 점에 있어서는 부처님 자신이 누구보다도 깊은 이해를 갖고 계십니다.

  선재, 부처님께서는 지금 선재와 같이, 그렇게 정상적이고 행복한 젊은 시절을 몸소 사셨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출가 전의 싯다르타는 한 평화로운 왕국의 젊은 왕자로서, 젊은이가 누릴 수 있는 가장 복되고 기쁨에 찬 인생을 체험하고 있었습니다. 육신의 건강과 남성다운 기상, 스승들을 놀라게 할 정도의 뛰어난 학문적 성과, 많은 아름다운 소녀들로부터의 가슴 설레이는 사랑, ....... 그는 참으로 누구보다 행복하고, 그의 하루하루는 사랑과 환희로 넘치고 있었습니다.

[문] 그런 부처님께서 어찌 해서, 우리 인생을 그토록 고통의 덩어리라고 이해하셨을까요?

[답] 선재에게 묻겠는데, 선재가 그렇게 주장하는 행복, 삶의 기쁨이란 대체 무엇을 두고 하는 말입니까? 오늘 누리던 것이 내일 문득 허물어져 버릴 때, 우리는 그것을 참된 행복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오늘의 밝은 기쁨이 내일 슬픔의 눈물로 종말지을 때, 우리는 그것을 일러서 삶의 기쁨이라고 주장할 수 있겠습니까?

[문] 결코 그렇게 말할 수는 없습니다. 내일 곧 무너져 내리고 말 것을 어찌 행복이니 기쁨이니 할 수 있겠습니까.

[답] 옳습니다. 그럼 다시 묻겠습니다. 선재가 지금 한창 인생의 황금기인 젊은이로서 누리는 삶의 기쁨 가운데 내일에 결코 무너지지 아니할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문] ........

[답] 싯다르타는 뒷 날 이렇게 회고하고 있습니다.

  "수행자들아, 나는 이와 같이 복되고 자상한 주변 사람들의 은혜를 입으면서도, 늘 이와 같이 생각하였다.

  '세상의 어리석은 사람들은 자기 자신이 늙고 병들고 죽으며, 또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을 피할 수 없는 몸인 줄을 깨닫지 못하고, 남의 늙음과 병듬과 죽음을 보고서 비웃는다. 나 자신도 늙고 병들고 죽는 몸인데, 남의 늙음과 병듬과 죽음을 보고서 비웃어야 옳은가? 이것은 옳지 않다.'

  나는 이와 같이 생각하고서, 덧없는 젊음에 대한 자랑과 건강에 대한 덧없는 자부심과, 삶에 대한 덧없는 긍지를 모두 버렸다."  <숫타니파타>

  o 불타는 집을 뛰쳐 나와

[문] 싯다르타의 고백에 저희도 동감입니다. 얼마전 저희 반에서도 급우 한 명이 사흘 결석하더니 그만 죽고 말았습니다. 병원의 해부 결과로는 급성 간염이라고 했습니다만, 그 친구의 빈 자리에 놓인 쓸쓸한 국화를 바라 보면서 산다는 것의 허무를 절감하였습니다.

  선생님, 그러나 저희들이 부닥친 이 삶을 허무하다고 해서 결코 회피하거나 타협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답] 그렇습니다. 우리가 이 삶을 버리고 어디로 가겠습니까? 살아도 여기서, 죽어도 여기서 결판을 내야 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이 몸뚱이 전체가 고통이라'고 선언한 것입니다.

[문] 무슨 말씀이십니까? '인생은 고통이다'라고 선언하신 것은 이 삶의 현장을 포기하려는 말씀이 아니신가요?

[답] 결코 그것이 아닙니다. 만일 그렇다면, 사성제(四聖諦)는 한갓 체념이거나 염세의 변명에 불과할 뿐입니다. 부처님께서 고제를 선포하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 자신의 인생을 끝까지 사랑하도록 격려하기 위함이고, 우리로 하여금 불타는 집[火宅]에서 뛰쳐 나오도록 인도하기 위함입니다.

  싯다르타의 고백을 다시 경청해 봅시다.

  "수행자들아,  나 역시 진실로 부처가 되기 이전, 깨달음을 얻기 전 보살이었을 때에는, 나 자신이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사람이었고, 슬픔이 있고 번뇌가 있는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오직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그러한 것만을 구하였고, 마찬가지로 슬픔이 있고, 번뇌가 있는 그러한 것만을 구하였다.

  그러한 나에게 이러한 생각이 생겼다.

  '왜 나는 자신이 나고 늙고 병들고 죽으며 슬픔이 있고 번뇌가 있는 사람인데, 그러한 것만을 구하는가? 나고 늙고 병들고 슬퍼하고 번뇌하는 그러한 성질 가운데 불행이 있음을 알고서, 나지 않고 늙지 않고 병들지 않고 죽지 않고 슬픔이 없고, 번뇌가 없는, 평화의 니르바나를 찾아야 하지 않겠는가?'"  <숫타니파타>

[문] 그러시다면, 부처님께서 '인생은 고통이다'라고 선언하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영원한 행복, 영원한 기쁨으로 인도하시려는 크나큰 사랑때문이신가요?

[답] 선재, 잘 보았습니다. 지금 우리가 매달려 있는 행복이나 기쁨은 불타는 집 속의 장난감에 불과한 것입니다. 한 때 기쁘다 하여도, 이 기쁨은 거센 불길에 휘말려 어느 새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둔감해서 가까이 다가오고 있는 불길의 뜨거움마저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불길이 우리 자신을 태우고, 우리 가정을 휩쓸고, 우리 국가를 쓸어간 다음에야, 괴로와하고 슬퍼하고 있지 않습니까. 진학에 실패한 다음에야 탄식하고, 친구를 잃은 다음에야 원망하고, 병이 깊이 든 다음에야 괴로와하고 있지 않습니까.

  '인생은 고통이다. 인생은 고해(苦海)이다.'

  이제 우리는 부처님의 간절하신 경고를 경청하고, 불타는 집에서 놀라 뛰쳐 나와야 합니다. 그리해서, 어떤 불에도 타지 아니하는 영원한 평화의 집을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부처님께서 사성제의 첫 머리에서, '이것은 고의 진리이니라'하고 선언하신 깊은 속 마음이십니다.

[선재]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저희는 이제 다시 우리 삶의 내면을 통찰해 보고 있습니다. 무엇이 참된 행복, 영원한 행복인가를 명상해 보고 있습니다. 고통의 말씀이 실로는 진실한 기쁨의 말씀인 진실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