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실록] 내가 죽던 날(완)

신앙 실록

2009-05-16     관리자

(10) 돌아오는 길

대왕님께선 또 말씀하시기를 [이 말도 전해주어라. 남의 것 탐내지 말고 없수이 여기거나 미워하지 말고 남을 욕하거나 부정한 생각 품지 말라고 일러 주어라. 너는 그만 가야 한다.

돌아가서 돈 벌어 살고 좋은 일 많이 하며 불도를 잘 닦도록 하여라. 너는 다시 이곳을 오지 않을 것이다. 더 좋은 세계가 있으니까. 잘 닦도록 하여라. 어서 나가거라……]하시며 간곡한 당부를 하셨습니다. 저는 지금껏 저 인자하신 할아버지, 그 착하신 목소리를 잊을 수 없습니다. 아마도 영영 잊어 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대왕님께 하직 인사를 드리고 총총히 발을 돌려 대궐을 나왔습니다. 그리고 온 길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대왕님의 대궐을 나설 때 저는 한 마리의 강아지를 안고 나왔었습니다.

강아지를 안고 집으로 돌아가라는 뜻으로 알았습니다.

저에게는 역시 나를 데리고 온 네 사람의 사자들이 길을 인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분들의 태도는 비록 생김새는 망칙스럽게 생겼지만 저에게는 친절했습니다. 무엇에 쫓기듯이 기차시간에 대어 가려는 듯이 걸음을 재촉하면서 함께 갔습니다. 그런데 오던 길과는 딴판인 새 길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앞에는 끝 모를 바다가 가로 막혔고, 거기에는 어디서 가져온 나무인지 바다 저 건너를 향한 외나무다리 저편 끝은 가물가물하여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다리목에 이르자 사자들은 빨리 외나무다리를 건너가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도저히 건너갈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무서워서 못가겠다고 하니 강아지만 꼭 붙들고 가면 된다고 하면서 서둘러댔습니다. 아무래도 그 바다에 걸린 외나무다리를 갈 자신이 없어 못가겠다고 머물러댔더니 사자들의 표정은 돌변했습니다. 뿔이 나고 송곳니가 뻗쳐나오고는 험상궂은 얼굴이 한층 더 우악스럽게 보이면서 들고 있던 방망이를 울러메며 금방이라도 내려칠 기세였습니다. 안가면 내려친다는 것입니다. 순간 저는 생각하기를 [좋다. 맞아 죽을 바에야 차라리 앞으로 가보자.]눈을 딱 감고 강아지를 꼭 껴안고 관세음보살을 일심으로 부르면서 외나무다리를 걷기 시작했습니다. 그 총중에도 지나간 일이 생각이 나며 한가락 위안이 되는 것도 있었습니다. 다른 게 아니다. [내가 물에 빠지면 용왕님이 도와주시겠지.]하는 생각이 났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 친정에서 논에서 잡았다는 자라를 머슴이 가지고 와서 고아먹으려 하는 것을 빼앗아서 살려주었던 일이 생각난 것입니다.

어쨌든 믿는 것이 관세음보살이었으므로 속으로 외치고 있었습니다. [부처님 나 죽습니다. 이제는 이숙이가 죽습니다. 살려주십시오.]하고 가슴 속에서 소리쳐 댔습니다. 얼마를 가다가 발밑이 기우뚱 하는가 싶더니 그만 강아지를 물에 떨어뜨렸습니다. 그때부터는 더욱 두 손을 부등켜 쥐고 관세음보살만 부르면서 눈을 딱 감고 앞으로만 갔습니다. 얼마를 갔었는지 끝이 없어 보이던 그 다리도 끝이 났는지 제 발은 땅을 밟고 있었습니다.

 

(11)최대의 소망

저는 눈을 떴습니다. 온 몸에서는 땀이 주르르 흐르고 있었습니다. 제 눈앞에는 남편이 눈물짓고 있었고 동네 사람들이 놀란 표정으로 저를 둘러싸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저는 큰 딸 세 살박이 어린 것이 울면서 저의 젖가슴에 매달려 있었습니다.

가족들과 이웃들도 제가 죽은 걸로 알고 있었습니다. 전날 저녁 7시에 호흡이 멎은 것이 이제 기나긴 밤이 가고 해는 솟아오르고 때는 10시가 다 되었으니 [불쌍하게 애기엄마가 죽었다]하고는 동네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었던 것도 당연합니다.

저의 몸은 굳어 있었는가 합니다. 혀가 굳어 말도 안 나왔고 수족과 온몸이 굳어가고 있었던 것을 느꼈습니다. 제가 의식을 돌이키니 모두들 울면서 웃으면서 떠들어 대면서 제 몸을 주물러 주었습니다.

저는 할 말이 있었습니다. 주변사람들에게 걱정 끼진 것이 미안하다는 말보다도 대왕님에게 부탁받은 이야기를 하여야 했습니다. 그래서 뻣뻣해진 혀를 굴려가며 죽던 날의 사건을 말하였습니다.

그때 이후 오늘까지 20여년동안 살아오면서 부처님 은혜 입은 일, 그리고 겪었던 여러 사건들을 통해서 언제나 저때의 대왕님의 말씀은 잊지 않고 지냈습니다.

지금 저의 소망은 가난해도 구태여 부를 바라지 않으며 고난을 당해도 구태여 낙을 취하고자 하는 생각이 없습니다. 어차피 지나가야 할 꿈과 같은 이 세상에서 곧고 깨끗하고 성실하게 마음 닦고 살아가는 것뿐이며 그리고 될 수만 있다면 부처님 법문책을 많이 만들어 방방곡곡에 흩어져 살면서 불도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부처님 법문을 알게 해주고 싶은 것이 저의 가슴속에 있는 최대의 소망입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