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승과 스승

남지심 연작소설

2009-05-15     관리자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 .
해마다 봄이 되면 강 여사 머리 속에는 ‘고향의 봄’ 가사에 나오는 풍경, 그대로 펼쳐진다. 어느 집 돌담가에는 복숭아꽃이 피고 어느 집 뒷 뜰에는 살구꽃이 피고 앞산 어디 쯤에는 진달래꽃이 피어나는 ‧‧‧‧ 추억 속의 고향은 울긋불긋한 꽃대궐을 이루고 그리고 그 속에서 뛰놀던 어린시절이 그리워졌다. 그건 금년 봄도 마찬가지였다.
3월이 되면서부터 봄의 숨결은 곳곳에서 느껴졌다. 그러자 강 여사는 고향병을 앓기 시작했다. 아니 그건 고향병이라기보다 그냥 봄병이라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할런지도 모른다. 설레임과 아쉬움과 허전함이 한데 녹아있는 병.
며칠을 그렇게 보내던 강 여사는 동생한테 전화를 했다.
"꽃들 지기 전에 우리 절에 한번 갔다 오자.“
강 여사 전화를 받은 동생은 “나도 그러고 싶었는데 잘 됐어. 우리 그럼 조 선생 차 타고 갈까? 이왕이면 조금 먼 데로 가야지”했다.
조 선생은 동생과 같은 학교에서 근무했던 선생님이었는데 지금은 둘 다 학교를 그만두고 집에서 쉬고 있었다.
“그러면 좋지. 그런데 조 선생님이 같이 가려고 할까?”
“언니도 참. 조 선생은 자다가도 절에 가자고 하면 따라 나설 분이야.”
“알았어. 그러면 니가 그렇게 부탁해 봐.”
강 여사는 전화를 끊고 혼자 미소를 지었다. 조 선생은 자다가도 절에 가자고 하면 따라 나설 사람이라는 동생 말이 재미있어서였다.
강 여사는 조 선생과는 인사 정도를 나눈 사이에 불과하지만 그 사람에 대해서는 동생을 통해 얘기를 많이 들었기 때문에 꽤 상세히 알고 있는 편이었다.
조 선생은 중학교 3학년 때쯤부터 스님이 좋아져서 길에서 스님을 만나면 괜히 사오십 미터 정도 따라 갔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고등학교 졸업반 무렵서부터는 본인 자신이 스님이 되려고 머리 싸매고 누워서 부모님과 투쟁을 벌였는데 결국은 어머니한테 패배를 당해 인생의 길이 완전히 바뀌어졌다고 했다.
동생과 전화 통화를 한 것은 5일 전이었고 조 선생과 동행을 하게 됐다는 통보를 받은 것은 3일 전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사람들이 붐비지 않는 일선사로 가기로 약속을 했었다.
“극락에 가면 이렇겠죠?”
차에서 내린 조 선생이 주위를 둘러보며 감탄했다.
연분홍 벚꽃이 하늘을 가득 덮고 벚꽃보다 조금 더 진한 복숭아꽃, 살구꽃 꽃망울이 환성을 지르며 터져 나오고 있었다.
“그렇겠죠.”
강 여사도 미소를 지으며 주위를 둘러 봤다. 같은 마음으로.
“극락에 가면 길도 금과 은, 수정, 호박 같은 보석으로 깔려 있다하던데 그럼 이런 꽃들은 어떻게 피어나지?”
동생은 강 여사와 조 선생을 번갈아 보며 물었다.
“거기 가면 꽃이 이렇게 땅에서 피어나는 게 아니고 허공에서 그냥 생겨나겠지 뭐.”
강 여사가 웃으며 이렇게 대답하자
“나와라 참깨 하는 식으로 원하기만 하면 바로 그 자리에서 생겨난다 그 말이지?”
동생이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쳐다봤다.
“얘, 그렇게 정색을 하고 물으면 내가 정답을 대야 하잖니?”
“그럼 천상 극락갔다 온 사람한테 물어봐야겠네”
“그런 사람 만나거든 나도 좀 데려가라, 나는 정말 물어보고 싶은 게 따로 있으니까”
“그게 뭔데?”
“그거야 극락가본 사람한테 물어봐야지 너한테 물어보면 뭔 소용이 있니”
“그러고 보면 애들한테 공부 안 한다고 야단칠 것도 없어. 얼마나 공부를 안했으면 내 나이가 지구보다도 더 많다는 데 아직 극락구경 한번 못했을까.”
동생 말을 듣고 강 여사와 조 선생도 따라 웃었다.
세 사람은 함께 웃으며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산으로 오르는 길 양 옆에는 온갖 꽃들이 피어나 있었다.
향기가 있는 꽃, 향기가 없는 꽃, 큰 꽃, 작은 꽃, 노란 꽃, 빨간 꽃, 이름을 아는 꽃, 이름을 모르는 꽃, 그 중에서도 강 여사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것은 진달래였다. 진달래는 분홍 꽃잎을 활짝 피운 것도 있었고 진분홍 꽃잎을 돌돌 말아 막 꽃잎을 터트리려 하는 것도 있었다.
어린 시절을 시골에서 보낸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진달래꽃에 얽힌 추억 한두 가지씩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소꿉장난 친구들과 진달래꽃잎을 따 잎이 터지게 먹었다던가, 진달래 나무 밑에 문둥이가 앉아 있어 아이만 보면 간지럼을 태워 잡아먹는다고 해서 꽁지가 빠지게 산길을 뛰어 내려왔다던가 하는 식의.
그건 강 여사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강 여사 마음을 사로잡고 있는 추억은 바로 ‘화전놀이’였다. 강 여사가 자란 고향마을 처녀들과 새색시들은 봄이 돼서 산과 들에 꽃들이 피어나기 시작하면 꽃색깔과 같은 연분홍 치마저고리들을 해 입고 화전놀이를 갔었다. 강 여사가 지금껏 화전놀이에 대해 애틋한 향수를 느끼고 있는 것은 그들이 새 옷을 해 입고 꽃마중을 갔다는 바로 그 사실이었다.
나물 뜯고 불 때서 밥해먹고 들에 나가 김매고 길쌈하고 ⋯⋯. 소처럼 투박하게 살고 있는 그들 가슴 어디에 새 옷을 해 입고 꽃마중을 나가고 싶은 그런 낭만과 여유가 숨어 있었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향수에 젖으며 잡담을 하며 산길을 오르다보니 일선사 일주문 앞에 당도하게 되었다. 세 사람은 일주문 앞에 있는 옹달샘에 둘러앉아서 손을 씻고 입속을 가시고 그리고 물 한 모금 마신 후 절 안으로 들어갔다.
절 안으로 들어간 강 여사 일행은 먼저 대웅전으로 들어가 부처님께 참배를 하고 밖으로 나왔다. 법당 뜰은 봄날 오후의 나른함과 아늑함에 잠겨 있었다.
“산길을 올라왔더니 갈증이 나죠? 차를 한잔 마셨으면 좋겠는데 ⋯⋯”
조 선생이 일행을 둘러보며 말했다. 그건 강 여사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특별히 아는 스님이 계신 것도 아니고 해서 망설여졌다.
“무료해서 누군가하고 얘기를 나누고 싶은 스님이 계실지도 모르니 우리 안에 들어가서 스님들 동정을 좀 살펴 볼까요?”
동생이 제안을 했다. 동생 얘기를 듣고 보니 그럴 것도 같다. 노상 사람들 속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도 가끔은 누군가 하고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싶을 때가 있는데 산사에 계신 스님들이라면 더욱 그러하실 것 같아서였다.
의견일치를 본 세 사람은 장난기까지 약간 동해져서 스님들 동정을 살피기 위행 안으로 들어갔다. 어느 스님이 자신들한테 차 대접을 해 주실 만큼 한가하실까? 하고.
그들이 요사채 방을 기웃거리고 있을 때
“어머 선생님”하며 어떤 스님이 뛰어 나왔다.
스물 두서넛 돼 보이는 앳된 얼굴이었다. 세 사람은 모두 선생을 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서로 자신들을 부르나 하는 얼굴로 쳐다봤다.
그러던 조 선생이 먼저 앞으로 나갔다.
“아니!”
조 선생은 툇마루 위에 서 있는 스님을 쳐다보며 말을 잇지 못하고 있었다.
“선생님이 어떻게 여기를 오셨어요? 어서 제 방으로 들어오세요.”
툇마루에 서 있던 스님은 먼저 방으로 들어가며 조 선생을 위시한 일행이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네.”
조 선생이 먼저 들어갔다. 먼저 들어 간 조 선생은 스님을 향해 앉으시라고 손짓을 하더니 그 앞에 엎드려 3배를 했다. 조금 전 법당에서 부처님께 절을 할 때와 꼭 같이 공경하는 마음을 가득 담고,
강 여사는 속으로 약간의 충격을 느끼며 조 선생을 바라보았다. 조 선생은 동생과 같은 학교에서 근무를 했지만 동생보다 십여 년 위이기 때문에 그녀의 머리는 속까지 희끗 희끗해 있었다. 그뿐 아니라 등과 허리에도 나이 먹은 사람 특유의 군살이 붙어 있어서 그녀의 모습은 어디로 보나 초로(初老)의 노인이었다.
“언제 득도를 하셨습니까?”
인사를 마친 조 선생은 깍듯이 공댓말로 물었다.
“3년 됐습니다. 강원에 있다가 노스님 생신이라서 잠깐 나왔습니다.”
스님은 당황해 하는 빛을 감추지 못하며 대답했다.
“그러셨군요.”
조 선생은 감회가 서린 얼굴로 천천히 머리를 끄덕였다.
“잠깐만 계십시오. 제가 찻물을 좀 떠 오겠습니다.”
스님은 흰 유리병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보살님들도 안으로 들어오십시오.”
밖으로 나가려던 스님은 강 여사와 동생을 보며 미소를 짓더니 급히 샘터 쪽으로 돌아갔다.
“안으로 들어오세요. 정말 차를 마시게 됐군요.”
조 선생이 웃으며 안으로 들어오라고 권했다. 강 여사와 동생은 그녀의 권유에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경책이 몇 권 놓여있는 조금만 책상과 다반 그리고 벽에 걸려있는 장삼과 가사, 스님의 살림살이는 이것이 다였다.
“지금 생각하니까 경옥이군요, 그렇죠?”
같은 학교에서 근무했기 때문에 동생도 출가 전의 스님을 알고 있었다.
“네 맞아요.”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3배를 하세요. 부처님한테 하시듯이요.”
“스님이 부처님이죠. 스님이 안 계시면 부처님이 어떻게 계실 수 있겠어요.”
“선생님도 참. 스님이 안 계신다고 설마 부처님이 계시지 않겠어요?”
“그렇지가 않지요.”
조 선생은 잠시 말을 끊었다가
“물론 스님이 계시든 안 계시든, 신도가 있든 없든 부처님은 영원히 상주해 계시지요. 하지만 그건 법계의 얘기고 우리 중생들은 절이라고 하는 수도처가 있어야 거기에 의지해 공부를 하게 되죠. 그러니까 부처님을 모신 절은 우리들에게 있어선 없어서는 안 될 귀의천데 그 절을 지켜 주시는 분이 바로 스님들이잖아요. 그러니 우리들에게 있어선 스님들이 부처님만큼 귀한 분들이죠, 그분들이 계시지 않으면 절이라고 하는 수도처도 있을 수 없으니까요”
“⋯⋯”
“물론 스님들도 출가하실 때는 당신들 공부를 위해 출가하셨겠지만 우리들로서는 그렇게 생각하면 안되지요.”
모든 걸 다 버리고 우리들의 귀의처인 수도 도량을 지켜 주시는 그분들을 우리가 어떻게 존경하지 않을 수 있겠어요.“
“⋯⋯”
“선생님도 스님 들어오시면 3배를 하세요. 법계의 스승인데 절을 안 하면 되겠어요?”
조 선생이 조용히 타이르듯 말했다.
“스님 들어오시면 저도 3배를 올리겠어요”
옆에 있던 강 여사가 먼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법계의 스승인데 절을 안 하면 되겠어요? 하던 조 선생 말이 향기로운 차처럼 가슴 속을 적셔주었다. 佛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