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식이 필요한 자들이여, 수종사로 가라!

테마가 있는 사찰 기행-풍광(風光)이 아름다운 남양주 운길산 수종사(水鍾寺)

2007-04-29     관리자


양수리에서 북한강을 따라 대성리, 청평, 강촌, 춘천으로 이어지는 경춘가도는 젊음의 낭만과 추억, 아늑한 휴식이 숨쉬는 곳이다. 가깝고 자연환경이 아름다워, 서울 사람들에게 가장 친근한 나들이 장소이기도 하다. 혹 새봄을 맞아 북한강변으로 바람을 쐬러 갈 예정이라면, 꼭 수종사에 들러보기를 ‘강추(강력 추천)’한다.

‘동방 사찰 중 최고의 전망’
수종사 일출을 보기 위해 새벽같이 일어나 길을 나섰다. 공교롭게도 이날은 꽃샘추위가 한창 기승을 부리던 영하 7도의 기온이었다. 그동안 포근했던 겨울을 위안 삼아, 모처럼 오들오들 떨며 온 몸의 감각을 곧추 세운다.
수종사는 운길산(해발 610m) 7부능선 절벽에 걸터앉아 있다. 팔당을 지나 양수대교 앞에서 청평 방향으로 2㎞쯤 가면 왼편에 조안보건지소가 보이는데, 이 곳에서 수종사까지는 걸어서 40분쯤(2.3km) 걸린다. 오르는 산길은 웬만큼 정비되어 차로도 갈 수 있다. 그러나 산길이 가파르고 구불구불해, 운전에 자신이 없다면 아예 차를 놓고 걸어서 오르는 게 낫다. 매주 한두 번은 레커차가 출동한다니 참고할 사항이다.
절 마당에 들어서려는데, 커다란 삽살개 3마리가 앞을 가로막고 이른 아침 불쑥 찾아든 불청객을 향해 큰소리로 짖어댄다. 괜스레 산사의 고요함을 방해한 것 같아 무안해진다. 우리나라 토종견인 삽살개는 얼굴이 털로 덮여 해학적인 인상이지만, 대담하고 충직하다. 수종사를 지키는 삽살개 가족은 털색이 모두 다르다. 아빠는 까만색, 엄마는 누런색이며, 옅은 회색이 새끼다.
대웅전에 참배하고 어둑어둑한 경내를 둘러보는데, 멀리 북한강 너머 첩첩이 쌓인 산들 위로 시뻘건 태양이 솟아오른다. 아스라이 밝아오는 세상을 숨죽이며 바라본다. 비로소 눈앞에 선명하게 펼쳐지는 풍광(風光)에 호흡이 가빠진다. 과연 조선의 문호 서거정이 ‘동방 사찰 중 최고의 전망’이라고 격찬을 아끼지 않을 만하다.
▲ 부도와 탑이 세월을 머금고 다정하게 서있다
높고 낮은 산봉우리 사이로 유유히 흘러오던 남한강(394km)과 북한강(325km)의 두 물줄기가 몸을 섞는다. 하나의 강, 큰 강이 되어 ‘한강’을 이루는 양수리(두물머리)가 한눈에 쏙 들어온다. 눈이 번쩍 뜨인다. 서울 근교에 이렇게 멋진 풍경이 있을 줄이야, 눈을 의심케 한다. 마치 강원도의 높은 산 위에 올라있는 듯한 착각이 든다. 세상의 번뇌가 끼어들 틈이 없다.

물과 인연이 깊은 절
세조가 금강산을 유람하고(혹은 피부병 치료를 위해 오대산에서 요양하고) 환궁하던 길에 양수리에서 하룻밤을 머물고 있었는데, 한밤중에 어디선가 은은한 종소리가 들려왔다. 다음날 신하를 시켜 그 출처를 찾게 했더니, 18나한상이 모셔져있는 바위굴에서 울리는 소리였다. 굴속에 물방울이 떨어지면서 암벽을 울려, 청아한 종소리처럼 들렸던 것이다. 세조는 그것을 기이하게 여겨, 그곳에 절을 세워 수종사(水鐘寺)라 부르게 하였다.
이처럼 수종사는 물과 인연이 깊은 절이다. 바위굴로 떨어지던 그 맑은 석간수(石間水)는 차맛을 우리기에도 일품이었다. 인근 마현마을에서 나고 죽은 다산(茶山) 정약용은 이곳 샘물로 차를 즐겼다. 말년에는 수종사에서 해동명필 추사 김정희, 다성(茶聖) 초의 선사와 교류하며 차를 마셨다고 한다. 석간수는 지금도 산신각 아래 자물쇠로 잠근 철문 안에서 마르지 않고 흐르고 있다. 하지만 물량이 극히 적어 일반인들은 맛볼 수 없다. 다만 매일 세 차례 예불 때 부처님께 올려진다고 한다.

▲ 550여 년 된 늠름한 느티나무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수종사는 가파른 산비탈에 지어진 작은 절이다. 공간이 협소한 만큼 모든 전각이 아담하고 있어야 할 것만 있다. 특히 약사전과 산신각의 크기는 두어 평에 불과해, 한 사람만 들어가도 꽉 차는 듯한 느낌이다.
대웅보전 옆으로는 태종의 다섯 번째 딸인 정의옹주의 부도와 삼층석탑, 팔각오층석탑(수종사다보탑)이 간격을 좁힌 채 다정하게 서있다. 부도와 다보탑은 겉으로 보기에는 소박해보이지만, 각각 1939년과 1957년 중수할 때 소중한 문화재가 쏟아져나왔다. 부도에서는 고려시대 청자항아리, 금동구층소탑, 은제도금육각감 등 19점, 다보탑에서는 금동불감, 목조불상, 금동불보살상 등 24점이 발견되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몇 점을 도난당하기도 했지만,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었다가 지난해 불교중앙박물관에 이관되어 전시되고 있다.
대웅보전 앞마당을 지나 조그만 해탈문을 나서면, 세조가 절을 짓고 기념으로 심었다는 웅장한 두 그루 은행나무와 마주하게 된다. 550여 년간 깎아지른 벼랑 위에서 모진 풍파를 이겨내며, 사방으로 긴 가지를 뻗고 있는 기세가 위풍당당하다.
▲ 전망이 아름다운 수종사는 사진찍는 이들이 많이 찾는다
수종사에 사람들의 발길이 잦아진 데는 삼정헌(三鼎軒)이 한몫했다. 삼정헌은 선(禪), 시(詩), 차(茶)가 하나로 통하는 다실(茶室)의 뜻으로, 지난 2000년 주지 동산 스님이 지었다. “사찰을 찾는 모든 이들이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편히 쉬었다 가면 그만”이라며 찻값은 무료보시다. 삼정헌에 들어서면 넓은 통유리 너머로 양수리 일대가 훤히 내다보인다.
차를 우리는 법이나 마시는 법을 몰라도 된다. 벽면에 커다랗게 붙여져 있는 안내문을 보며 천천히 따라하면 문제없다. 삼정헌은 숱한 시인 묵객들이 다녀가며 자신의 시집을 내놓고 갔단다. 직접 우린 찻잔을 앞에 놓고, 책꽂이에서 시집 한 권 꺼내 읽노라면 신선이 부럽지 않다.
▲ 양수리 일대를 내려다보며 차와 시를 즐길 수 있는 삼정헌
문득 창 밖을 내다보니, 산수유나무가 꽃샘추위에 아랑곳없이 노란 꽃망울을 부풀리고 있다. 눈을 멀리 두니 아파트는 손톱만하고, 차들은 깨알 같다. 풍진 세상을 발아래 놓고 보니, 바쁠 것도 아쉬울 것도 없다. 여유만만이다.
내려오는 길, 뒤를 올려다보니 까마득한 절벽 위에 수종사가 앉혀 있다. 갑자기 그 옛날 수종사 스님들은 어떻게 쌀을 운반했을까, 궁금증이 인다. 가만 생각해보니 튼튼한 두 다리로 지게에 짊어지고 올라가면 될 것이다. 그것도 수행이었으리라. 기계문명 속에서 생각마저 편리에 길들여져, 조금의 수고로움도 고려치 않는 것 같아 반성을 해본다.


남양주 운길산 수종사 031)576-84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