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여 인간

특집 · 꿈을 가꾼다

2009-05-13     관리자

 잉여인간。서글펐던 얘기지만 한 동안 우리나라에는 인구과잉도 아닌데 별 볼 일없이 남아 도는 무리들이 수두룩 했던 시대가 있었다。벌써 20년 전 일이지만 나는 그때 그 비극을 영상화(映像化)하여 만인과 더불어 연구하고 싶어 『잉여인간』이라는 제목의 영화를 만들었다。영화의 주인공인 잉여 인간은 풍채도 장관감이요, 머리 속에 든 것도 굉장하여 세계 정세도 제법 조리정연하게 논할 줄 알고 국가관도 뚜렷하고 애국심도 대단하다。더구나 그의 정의 감이란 송죽(松竹)같았다。그런데 그는 미국의 잉여 농산물보다 가치가 없는 잉여 인간으로 전락되어 온통 비극이란 비극은 혼자 뒤집어 쓰고 살고 있는 것이다。그런 준수한 인물이 잉여 인간이 되어야만 했던 그 당시의 부패된 세상을 원작자는 꼬집기 위해서 그런 인물을 등장시켰지만 나의 견해는 약간 달랐다。그에게도 무언가 허점(虛點)이 있지 않나 하는 것이 나의 견해였다。

 그 당시 내게는 꽤 막역한 친구가 하나 있었다。나이도 나와 동년배로 키는 육척이요 얼굴도 준수했다。이북에서 부호의 아들로 태어나 일류대학까지 나와서 권세가 대단했던 모 청년단에 간부를 지내기도 하였다。

 그랬는데 세상이 바뀌어서 청년단도 해체되고 그 친구도 날개를 잃었다。그 후 수 년이 흐르는 동안 그 친구의 소식은 알 길이 없었고 궁금하기 짝이 없었다。

 녀석이 엉뚱한 얼굴을 하고 큰소리치며 언제고 나타나겠지 했는데 아닌게 아니라 다방 문을 힘차게 밀어 제치며 나타났는데 여전히 쾌남아요 풍운아였다。 몇 마디 지난 얘기가 오고 간다음 대뜸 이 만원만 빌려 달라는 거다。부산에 가서 한탕 할 게 있는데 여비가 모자란다는 것이다。이렇게 시작된 여비 조달은 액수가 오 천원까지 내려 가는 것이었다。그 때 내가 한 마디했다。

 『너! 잉여 인간 아냐?』 그랬더니 『너 요즘신문에 오르내리더니 허파가 부었냐? 내가 그렇게 밖에 안 보여? 현재는 네 신세를 지고 있지만 이제 보라구ㅡ』

 그런지 일년 후 별안간 나타난 그 친구의 몰골은 분명 영양실조였다。저녁꺼리가 없으니 삼 천원만 달라는 것이었다。보기에 민망할 정도로 딱했다。그는 자기의 허점을 돌파 못 하고 있는 것이었다。

 『야! 리야카라도 끌라구。그 패기는 다 어데가구 이대로 그냥 쓰러지겠다는 거냐?』

 나는 그날 밤 그에게 『리야카』를 구입할 돈도 주었고, 눈물을 흘리며 『화이팅』을 외치기도 했다。그러나 그 친구는 어두운 밤거리에서 나를 기다리며 천원 한 장을 받아 들고 쓸쓸히 돌아서기를 수 십번 끝내른 길거리에 쓰러져 죽고 말았다。

 그는 왜 그렇게 비참한 최후를 마쳐야 했던가? 여기엔 여러 가지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었겠지만 그는 자기의 꿈을 키워 가는 방법이 틀렸고 노력이 부족했던 것만은 부인할 여지가 없는 것이다。꿈을 이루는 길은 직선만 있는 것이 아니다。직선을 따라 가다가 장애물이 있으면 치워야하고 길이 끊어졌으면 길을 이어야 한다。그것도 불가능하면 가시밭길이라도 헤치고 목적지까지 쟁취하는 집념과 노력이 없이는 꿈은 나의 것이 될 수 없는 것이다。『잉여인간』을 발표한 지 20년이 흐른  오늘, 위 에서 서술한 두 가지 형(型)의 잉여 인간은 없어졌지만 또 다른 잉여 인간이 창궐하고 있다는 점을 우리는 주시(注視)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남아 도는 개념을 뛰어 넘어서 요즘은 『세상에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은 인간형』『있으나마나 한 인간형』『있어서는 절대 안 될 인간형』등이 등장하고 있는데 우리는 이 세 가지 인간형에 속하지 않나 깊이 반성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