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문과 아들의 죽음

법구경 이야기

2009-05-13     관리자

한 바라문이 있었다. 일찍이 출가하여 도를 배웠으나 나이 육십이 되어도 도를 얻을 수 없었다. 결국 그는 육십이 되어도 득도하지 못하면 환속해야 하는 바라문의 율법에 따라 마을로 돌아왔다.
그리하여 늦게 둔 외아들에 정을 쏟으며 세월을 보냈다. 몹시도 총명하고 기특한 아들이었다. 나이 불과 일곱 살 적부터 말솜씨와 글이 빼어나 어른이 당하지를 못했다. 그러던 아들이 문득 병을 얻더니 별안간 죽었다.
바라문은 황당한 놀라움을 이기지 못해 주검을 부둥켜안은 채 기절하고 말았다. 친족들의 노력으로 그는 겨우 소생하게 되고 아들의 시신은 빼앗기다시피 하여 성 밖으로 내어다 매장할 수 있었다.
애달픈 눈물마저 말라버린 그는 생각했다.
통곡을 해도 소용없는 일이 아닌가 차라리 염라대왕을 만날 수 있다면 아들의 생명을 돌려 달라고 하소연이라도 할 텐데 -
그러던 어느 날 끝내 제 정신이 아닌 듯 그는, 염라대왕을 만나겠다며 목욕재계하고 꽃과 향을 들고 집을 나섰다.
그리고는 만나는 사람마다에게 염라대왕의 처소를 묻고 다녔다. 옛날에 수도하던 깊은 산속에까지 갔다. 그곳에서 그는 득도한 옛 도반들을 만났다. 그들은 의아하다 못해 장남삼아 물었다.
『염라대왕을 찾아 무얼 하려나?』
『나에게 아들이 있었다네. 총명하여 말재간이 어른보다 나았었지. 그런데 그 애가 죽었어. 비통한 감회를 이길 수가 없어요. 그래서 염라대왕에게 돌려 달라고 간청할 참이야. 애나 키우며 늙음을 보내게 하여 달라고.』
바라문들은 돌아버린 옛 친우를 답답해하여 말했다.
『염라왕국이 어디 산목숨이 갈 수 있는 곳이던가. 정신 좀 차리게.』
그래도 억지스런 그에게 저들은 예부터 전해오는 말을 들려주었다.
『여기에서 서쪽으로 4백 리쯤에 있는 큰 강 가운데에 한 성채가 있다네, 여러 천신들이 세상을 순시할 때 묵고 가는 곳이지. 염라대왕은 매달 여드렛날이면 그곳을 지난다고 하니 한번 가 보려나. 자네 같은 정성이면 만날지도 몰라.』
바라문은 기뻐하며 길을 떠났다. 과연 강 복판에는 도리천 내원궁 같은 훌륭한 성이 있지 아니한가. 그는 성문 앞에서 향을 사루며 주문을 외워 염라대왕을 만나고자 간원하였다. 그때 수문장이 나타나 사연을 묻는 게 아닌가.
그리하여 그는 염라대왕을 만나 이렇게 말했다.
『늦게사 자식 하나를 두었기에 그 재미로 세월을 보내고 있는데, 불과 나이 일곱으로 며칠 전에 죽고 말았습니다. 오로지 원하오니 대왕께서 은혜를 내리시어 자식을 돌려주옵소서.』
염라대왕이 껄껄 웃으며 대답했다.
『그 참 좋은 일이오이다. 그대의 아들이 마침 동편 마당에서 놀고 있으니 가서 데리고 가도록 하십시오.』
바라문이 달려 가보니 녀석이 같은 또래의 벗들과 어울려 놀고 있다. 달려가 껴안고 흐느끼며 말했다.
『밤낮 네 생각으로 잠도 설치고 밥도 걸렀거늘 어린 네가 부모 생각에 오죽이나 가슴이 쓰리고 메었을까?』
그리고는 껴안고 볼을 부볐다. 그러나 이게 웬일인가, 녀석은 놀라 펄펄 뛰며 콘 소리로 악을 쓰는 게 아닌가.
『어리석은 늙은이라 도리를 모르는군요. 잠시 의탁하였다고 자식이라 하다니요. 말씀을 거두시고 물러감이 좋을 거요, 여기에는 지금 나의 부모가 있으니 우리의 만남을 알게 되면 문득 늙은이를 포박하고 말 거요. 』
이에 바라문은 창연한 기분으로 비탄의 흐느낌을 속으로 삼키며 돌아오고 말았다.
그러면서 혼자 생각하며 중얼거렸다.
듣자하니 고타마 불타께서는 사람의 생사윤전을 아신다고 하니 가서 물어보리라.
바라문이 부처님의 처소를 물어 찾아가니 마침 기원정사에서 대중들에게 설법 중이었다. 연후에 공경히 예배하고 전말을 사뢰었다.
『…실로 저의 아들은 저를 보기는커녕 도리어 바보스런 늙은이라고 질책하고, 늙은이가 잠시 같이 있었다고 해서 마냥 자식이라 부른다며 힐난하니 이같이도 어려운 부자의 정의는 도대체 무슨 인연의 갚음인지 망연할 뿐입니다.』
말씀을 다 들으신 부처님께서 입을 여시었다.
『바라문이여, 실로 어리석도다. 사람이 죽게 되면 혼백은 떠나 새 몸을 받게 되나니, 부모요처자요 가족이라 하여 잠시 모여 산다는 것은 길손들이 하룻밤을 객사의 한 지붕 아래에서 함께 묵는 것과 같다 할 것이오. 새 날이 밝으면 뿔뿔이 제 갈 길로 흩어져 갈 일이 아니겠소. 어둠에 갇히어 헤아리고 짚으며 자기네들이라 집착할 뿐이라오. 히노애락, 우비고뇌는 근본을 모르는 탓이요, 만나고 헤어지는 생사의 길에 바쁘게 탐닉하여 쉴 줄을 모르고 있다오.
오직 지혜 있는 자들은 은혜와 애착을 탐하지 아니하고, 고(苦)를 깨닫고 습기를 사리하여 청정한 계법을 닦고 익히는 것이라오. 그리하여 망상을 쓸어내고 생사를 끝낸다오.』
설법을 마치신 세존께서는 다시 한 번 게송으로 서 마감하여 다음과 같이 설해 주시었다.

가을에 백합을 손으로 꺾듯이
스스로 애락을 끊어 없애고
애락의 사슬 대신 열반을 구하라.
<법구경 제258송>

추울 때는 이렇게 더울 때는 저렇게
죽음이 오는 줄도 알지 못하고
어리석게 이래저래 애를 태운다.
< 법구경 제286송>

사람이 처자식에 쏠려 있을때
죽음은 문득 와서 그들을 앗아간다.
잠든 마을을 홍수가 쓸어가듯.
<법구경 제287송>

역시 세존께서 기원정사에 계실 때이다. 외톨박이로 애지중지하게 자란 바라문 청년이 있었다. 부모가 애써 가르치려 해도, 가업을 맡기려 해도, 태만하고 방종하여 낭패하기만 했다.
드디어 가정형편도 기울어 곤궁하여졌다. 몰골이 비릿하고 하는 짓은 더러워 나라사람이 누구하나 말조차 거들려고 아니했다. 그는 부모를 탓하고 스승을 욕하며 비실거리다 의지할 데 없게 되자 세존을 찾아 왔다. 불타의 관용과 은혜를 구하기 위해서였다.
그때 세존께서는,
『도를 구하려면 청정해야 하거늘 너는 세속의 때를 지고 도를 구하다니, 집으로 돌아가서 오욕(汚辱)을 씻고 부모에 효도하고 스승을 섬겨라. 이 같은 일들도 도인 줄 알아라.』
고 말씀하시며 게송을 설하셨다.

대장장이 쇠 달구어 두드려 녹을 털 듯
지혜로운 이들은 자신을 달구어서
한 겹 두 겹 마음의 때를 벗겨 나간다.
<법구경 제239송>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