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와 나의 생활

룸비니 동산

2009-05-13     관리자
*시골의 어린 생활
내가 자란 시골은 가로수가 길의 양변에 늘어 서 있고 늪에는 갈대가 철새를 부르며 계절 색을 짙게 한다. 수양버들 가로수가 끝나면 조그마한 마을과 산사(山寺)가 있다. 절은 인간 수련의 도장이요, 끝없는 자비로 인간에게 많은 교훈을 주는 스승인 것 같다. 마을 사람들은 그 산사에서 흘러나오는 부처님의 자비로, 어려울 때나 괴로운 때 마음을 달래며 안식을 찾곤 하였다.
우리 부모님은 특별히 절에 나가지는 않았지만 민족의 종교로서 우리 민족의 의식 속에 흘러오는 불교 신앙은 가지고 계셨다.
어려서 나는 산사의 포근하고 향긋한 향내를 아침 이슬과 함께 맡으며 수양버들 가지에 물이 오를 때면 껍질을 벗겨 버들피리를 불고, 여름이면 과일밭 서리로 매를 맞기도 하고, 겨울엔 썰매지치기로 옷이 흠뻑 젖기도 하였었다.
내가 개구쟁이 짓으로 나쁜 일을 저지를 때만다 어머님은 부처님에게 일러바친다는 말로서 나를 꾸중했다. 그래서 그때의 나의 부처님은, 인간과는 너무나 격리된 존재였으며 아주 무서운 존재이었기에 산사 출입은 도저히 생각도 하지 못하였다.

학생회 입회와 기도
70년대에 나는 도시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되었다.
부모를 떠난 하숙생활이 그렇게 쉬운 것만은 아니었다. 학교를 마치고 누구도 반겨 줄 이 없는 하숙방 문을 열면 어둠이 나를 제압하였다. 그때면 시골의 부모와 친구를 생각하며 그럭저럭 몇 주일을 보내고 있는데 하루는 선배들의 써클 소개가 있었다.
처음에는 어머님의 말씀이 생각나서 불교 학생회에 들지 못하고 문학 써클에 들어 문학 토론에 남달리 열을 올렸다. 그러나 하숙방에 돌아오면 여전히 어둠은 나의 어깨를 누르며 괴롭혔고, 시골 산사의 포근한 향내를 생각하며 고향을 동경하게 했다.
그래서 나는, 어머님이 심어준 부처님에 관한 모든 위협을 무릅쓰고 불교 학생회를 찾았다.
선배들은 자비의 정신으로 나를 포용해 주었으며 스님의 법문이 기다려졌기에 일요일마다 가던 시골집에도 발걸음을 멀리하고, 학업성적도 향상 되어갔다.
학년이 진급되고 신앙심도 두터워 질 무렵 나의 환경에는 큰 변화가 일어났다.
하숙집 주인이 타종교의 간부인 지라 내가 일요일마다 절에 가고 어려울 때 혼자 앉아 기도하는 것을 보고 『젊은 사람이 별 쑥스럽다』느니, 『미치광이라서 산속을 헤맨다』느니 직접 간접으로 나쁜 인상을 주기 시작했다.
그때 아주 충실한 그 종교 신자인 친구가 하숙집에 자주 놀러왔었다. 주인아주머니는 이유 없이 그 친구를 격찬했으며 내가 그 종교를 믿도록 온갖 방법으로 이끌었다.
「불자여, 너희들은 3대행을 잘 수행하라. 첫째는 대 신심, 둘째는 대정진, 셋째는 대지혜니라.」<우라리정행법문경>
불법의 진리를 수행하고 배우고자 노력하던 나에게는 부처님 말씀이외는 어느 누구의 말도 무용지언이었다.
결국 하숙집을 옮기게 되었으며 나의 신앙심은 더욱 돈독해져서 모든 것이 부처님의 자비 안에서 조화로우며 평온하기를 기도했다.

기도와 부처님의 힘
그러던 중, 건강하시던 아버님이 별안간 중병에 걸리게 되었다. 너무나 걱정한 너머지 난 모든 것이 보이지 않았으며 병원 출입이 수업외의 일과가 되었다. 그러나 병원에 왕래하는 것이 마음의 위안은 될지언정 궁극적인 해결책은 도지 못하였다. 나는 부처님에 의지했다. 아버님께, 스님들이 염불한 녹음을 들려 드리며 매일 새벽이면 운동복을 입고 절까지 뛰어가서 아버님의 회복과 평온을 기도한 후에 나의 일과는 시작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부처님의 마음은 우리의 마음이 되어 하루 속히 일어나시도록 보살펴 주셨다. 불가능하다는 의사의 예상을 뒤엎고 아버님은 아주 건강하게 회복되었으며, 요즘은 병원생활을 기억 못할 정도로 건강하시다.
난 요즈음도 항상 자식들을 위해 흙과 싸우는 아버님을 보면 대자대비 하신 부처님의 위신력에 감사할 따름이다.
그 후 스님의 법문과 불경에서 읽은 내용을 실천하며 주위에 전하겠다는 마음이 봄의 새싹처럼 나의 마음 한 구석에 싹텄다.
봉사 써클 회장으로 일할 때에는 친구들 사이에 조스님이란 별명이 붙을 정도로 모든 회원들에게 부처님의 말씀을 전하는데 열성이었다. 친구들과 미팅을 하면 의례히 별명이 대두되며, 마지막 선물은「불광」으로, 여학생들의 무사한 귀가 길을 밝혀주었다.
몇몇 회원은 불교에 많은 관심을 가져 써클 멤버로서 뿐만 아니라 불자로서 더 친하게 되었으며, 때때로 세상이 어지러울 때는,
「세상 사물은 모두 파괴되어 간다. 그대들은 태만함이 없이 진리를 향해 노력 정진하라.」는 부처님의 마지막 말씀을 되새기며 그를 극복해 나갔다……
능력도 없고 나 자신도 수양하지 못하면서 대자 대비하신 부처님의 말씀을 전하기엔 너무나 부족했고 죄를 범하는 느낌도 들었으나, 불교교양대학의 과정에서 좀 더 자신을 가다듬었으며 특히 여러 스님과의 만남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워갔다.
이제 부처님 전에 감사기도 올리며, 티끌보다 못한 존재로 순응하며 살더라고, 「살아 있다」의 소극적 주체로 사는니 보다, 착한 마음과 바른 지혜로 가정과 국가를 위하여 「산다」의 주체가 되어, 야망을 가지며 마음껏 날아가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