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당시의 의욕을 인재양성으로

특별기획 / 8.15와 오늘

2009-05-13     관리자
  내가 해방을 맞이한 29살 때였는데 그 당시 나는 일제 말기의 탄압을 피해서 고향인 충정도 공주에 있는 「갑사」에 숨어 살사시피 하고 있었다. 라디오로 광복의 소식은 들었으나 궁금한 것이 많아 서울로 올라왔다. 물론 큰 변화에 따른 일시적 혼란이 있었다.
  그러나 그 당시 우리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희망에 넘쳐 있었고 조국 건설에 대한 의욕이 충만하였었다.
사실 일제하의 불교의 상황이란 것도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식민지 정치에 의한 소위 「황민화(皇民化)」 정책의 테두리를 벗어날 수 없었다. 그리하여 순수한 의미에서의 학문의 발전이라든가 포교의 진흥을 꾀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정말 진정한 우리의 일을 해야겠다는 결의를 서로가 합쳤던 것이다. 그리하여 여러 스님이 중심이 되어 「전국승려대회」를 열었고 새로운 종헌을 제정하고 새 종헌에 의한 간부를 선출하였다. 그리고는 지금까지도 우리 불교인의 숙제로 남아있는 3대 사업인 역경·교육·포교에 대한 계획을 세우고 새 출발을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국내외 여건이 워낙 험난했고 불교계 자체에서도 비구·대처의 대립이 심해져 원만한 출범을 하지 못하고 1954년에야 새로 「조계종」 이라고 종단의 이름도 바꾸고 새로운 종헌과 계획을 세웠으나 이번 역시 계획대로 원만히 실행하였다고 볼 수는 없을 것 같다.
  나는 우리 불교계에서의 제일 먼저 선행되어야 할 것은 승려 자질향상이라고 생각한다. 요즘의 현실을 보면 스님들의 법문에 일관성이 없고 각기 달라서 신도들의 어리둥절하게 한다. 비록 표현방식은 다양하더라도 근본적인 면에서는 공통된 사상이 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은 우리 불교계의 교육부재에 그 원인이 있다고 본다. 교육문제뿐만 아니라 역경사업도 문제가 있다. 지금도 역경사업은 하고는 있지만 과연 누가 얼마나 읽어 주느냐는 문제에선 그만 할 말이 없어진다. 물론 안 하는 것보다는 낫겠지만 읽지 않는 역경은 해서 뭐하느냐는 반문이 나올 법도 한 것이다. 그나마도 역경사를 양성시켜 놓지 못하였으니 몇 분 안남은 분들이 돌아가시면 더 이상 하기도 곤란한 실정이다. 나아가 포교문제에 이르면 한층 문제가 크다. 근래에 불교 신도수가 많이 늘고 특히 젊은 불교인의 수가 무척 늘었는데 지도해 줄 법사의 수는 공급에 비해 그 수요가 그야말로 형편없이 부족하여 무어라 말 하루 수 없는 실정이다. 광복당시의 그 뜨거웠던 의욕에 비해 우리는 과연 얼마의 성과를 거두었는가? 당시의 전문학교인 「혜화전문」을 종합대학교인 오늘날의 「동국대학교」로 발전시킨 것이 그래도 애초의 계획을 조금이나마 실현한 것이라 할 수 있을까? 다른 것은 거의 큰 진보를 못 했다고 할 수 있겠다. 물론 근래에 들어 사찰 건물의 중수라든가 범종불사 등 외형적인 면은 대단히 큰 변화를 가져왔지만 내용적으로는 아직도 우리는 광복 당시의 의욕을 실현하지 못한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 도제양성이든 역경사업이든 포교든 결국 사람이 중심이고 따라서 제일 시급한 문제가 인재양성이라고 생각한다. 훌륭한 인격과 지식을 겸비한 젊은 인재들만이 우리불교계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어 무엇보다 교육에 힘쓸 것을 광복 33주년을 맞는 오늘 새롭게 다짐한다. (問責記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