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와 참회의 건강학

현대인의 정신건강/불교의 건강원리

2009-05-11     관리자
박희준

서라벌예대에서 소설 전공.

좌선명상의 실용화문제에 관심을 두고 [禪의 이해를 위하여] [우주에서 돌아오다] [만트라 명상의 힘] [윤회와 전생]등 번역에 종사해왔다.

 

  건강한 심신을 유지하면서 행복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적어도 두 가지 대상에 대해 지은보은(知恩報恩)의 심적 태도를 갖는 것이 필요하다. 하나는 사회에 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우주∙자연에 대한 것이다. 사회에 대한 지은보은의 대상에는 불(佛)∙법(法)∙승(僧)의 삼보는 물론이고 부모와 도반 그리고 자기와 접촉하는 모든 사람들이 포함된다. 우주∙자연에 대한 지은보은의 감정은 바꿔 말하면 우주∙자연이 ‘나의 적이 아니라’ 사랑을 가득 품고 나를 먹여 키우는 아늑한 어머니의 젖가슴 같은 것으로 느껴지는 감정이다. 우리의 주위에는 이 같은 지은보은의 심적 자세가 잘 형성되지를 않아서 괴롭게 인생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불교를 포함하여 모든 건전한 종교의 교리나 계율 등의 신행체계에는 이 같은 지은보은의 정감을 함양시키기 위한 방법론이 마련되어 있다.

  지은보은은 감사하는 마음과 참회하는 죄책감이 그 구성요소의 하나이다. 사람에게는 원래 태내회귀원망(胎內回歸願望)이라는 심리적 요구가 있다. 사람이 일생동안에 가장 편안함을 느낀 때가 그때이다. 그것은 어머니의 태내에서 양수에 푹 잠겨서 무한한 포근함을 느끼고 있었던 때이다. 그런데 태내를 나온 뒤부터는 차갑고 모진 세파에 시달리느라고 아늑하고 포근한 맛을 거의 맛보지 못하면서 살게 된다. 하지만 모태내에서 느꼈던 아늑한 기억은 잠재의식 속에는 남아있다. 그래서 사람은 항상 무의식 적으로 태내회귀원망의 자극을 받게 된다.

  그러나 우리는 어머니의 태내로는 다시 돌아가지 못한다. 다시 돌아가지 못하기 때문에 그것을 대신할 포근한 안식처를 찾아서 방황을 한다. 다행스럽게도 우리에게는 또 하나의 아늑한 안식처가 있는 것이다. 그것은 우주∙자연이라고 하는 대생명의 태내이다. 그것은 불교에서는 부처님의 품, 비로자나불의 품이라고 한다. 부처님이라는 말이나 하나님이라는 말이나 모두가 우주대생명을 상징하는 말이다. 불교에서 삼보에 귀의한다는 것은 사실 우주대생명에 귀의한다는 추상적인 절차를 구상화한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나 삼보에 귀의한다는 형식적인 절차를 밟는다고 해서 인격적으로, 정신적으로 완전하게 귀의가 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내부에서는 우리가 세상에 태어나서 성장하는 동안에 잘못 조건화된 온갖 나쁜 습관, 나쁜 가치관, 나쁜 연상 작용, 나쁜 반응양식 같은 것이 참다운 삼보에 귀의를 은연중에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그것들이 깨끗하게 정화∙제거되지 않고는 진정한 삼보에의 귀의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인격적으로 한번 거듭 태어날 것이 필요하게 된다. 크게 한번 죽었다가 태어나야 한다. 입신수계식 한번으로 다 끝나는 일은 아니다. 그래서 단단하게 다질 필요가 있는 것이다. 단단하게 다지는 절차가 바로 참회법이다.

  단단하게 다지는 절차로서의 참회법은 석존시대부터 교단의 중요한 의식절차로서 거행되어 왔고 후세에 이르러서는 중국, 한국, 일본을 위시한 동남아 일대의 불교국가에서 저마다 민족적 뉘앙스가 가미된 독특한 참회법을 발전시켜 왔다.

  우리나라에서는 원효스님이 [대승육정참회(大乘六情懺悔)라는 저서도 저술하면서 형식위주의 사참의식(事懺儀式)속에 안주하려는 생각일랑 말고 끊임없는 자신의 참회를 통해 많은 사람들을 기쁘게 하고 구제할 것을 강조한 일이 있기도 한 가운데서 신라 경덕왕대의 진표(眞表)율사가 독특한 점찰참회(占察懺悔)의 계법을 확립하여 보살계율을 크게 일으킨 일이 있다. 진표율사의 참뜻을 그 점찰경(占察經)에서 보면,

  “…처음 발심하여 선정(禪定)과 지혜를 수습하려는 자는 반드시 숙세소작(宿世所作)의 악업(惡業)에 대한 다소와 경중을 먼저 관찰하여야 한다. 만약 악업이 많고 두터운 사람은 선정과 지혜를 수습할 수가 없으므로 마땅히 참회의 법을 먼저 닦아야 한다. 만약에 참회하여 청정해지지 않았는데 선정과 지혜를 수습하게 되면 많은 장애 때문에 목적을 이루지 못하여 도리어 실심착란(失心錯亂)하거나 혹은 외도사마(外道邪魔)의 괴롭힘을 당하거나 혹은 사법(邪法)을 받아드리게 되어 악견(惡見)을 증장(增長)하는 수가 있게 된다. 그러므로 마땅히 참회법을 닦아야 한다. 참회의 수행으로 계근(戒根)이 청정하게 된다면 숙세(宿世)의 중죄도 희박하게 되어서 곧 여러 장애로부터 멀어지게 된다.…날마다 게을리하지 않고 참회법을 하게 되면 어떤 사람은 7일만에도 청정을 얻어 모든 장애를 제거하게 된다. 그러나 중생들은 업이 두터운 사람과 엷은 사람이 있고 제근(諸根)이 날카롭고 둔한 차별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음으로 어떤 사람은 2∙7일 후에 청정을 얻고 혹은 3∙7일, 혹은 7∙7일 후에 청정을 얻게 된다. 그러나 과거와 현재에 갖가지 중죄가 있는 사람은 백일, 이백일 혹은 천일에 이르러서 청정을 얻게 된다.…이렇게 참회법을 닦아서 지심(至心)이 되게 하여 신(身)∙구(口)∙의(意)에 선상(善相)을 얻게 되면 곧 청정묘계(淸淨妙戒)를 받을 수 있다…”고 나온다.

  진표율사의 이런 견해는 오늘날의 정신의학이나 심리학의 원리에 비추어 보아도 손색이 없는 경험자의 견해이다. 재가자이거나 출가자이거나를 불문하고 많은 중생들에게 참회법을 실지 지도해본 지도자의 식견임을 일목요연하게 느끼게 하는 것이다.

  오늘날 일본에서 내관법(內觀法)이라는 이름으로 정신수양과 정신 심리치료의 기법으로 널리 활용되고 있는 참회법은 그 바탕을 이루고 있는 기본 철학이나 종교관이나 절차가 진표율사의 청정묘계를 지향하는 참회법과 여러모로 흡사한 점이 많이 있다. 우리도 이 같은 진표율사의 청정묘계의 참회법을 되살려서 절차나 내용을 다소 현대화한 뒤에 활용한다면 불자뿐만 아니라 일반인의 정신수양이나 인격적 성장 또는 치병에 많은 유익함이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래서 일본에서 현재 유익하게 활용되고 있는 앞에서 이야기한 내관법의 내용을 참고삼아 잠깐 살펴보기로 한다.

  내관법은 정신요법적 색채가 강하기 때문에 일면으로는 내관요법(內觀療法)이라고도 불리고 있다. 이 방법은 일본의 정토진종(淨土眞宗)의 일파에 전해지고 있는 ‘미시라베’라는 일종의 참회법적 구도법에서 발전되어 온 것인데 현재에는 일종일파에 치우친 종교적 색채를 제거하고 남녀노소 누구나 할 수 있도록 형식∙절차를 마련한 정신수양법이고 인격개선법이며 정신요양법으로도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

  내관이란 자기의 내부로 깊숙이 파고 들어가서 과거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대인관계 가운데에서 자기가 어떤 태도를 취해 왔던가 하는 것을 ‘남의 신세를 지고 은혜를 입는 일’ ‘그 신세나 은혜에 대하여 보답을 한 일’ ‘폐를 끼치기만 하고 갚지 않은 일’이라는 관점에서 구체적으로, 철저하게 빚진 것이 없는지 살펴보는 탐색작업이다. 지도자를 따르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자기 혼자서 내관을 한다. 그러나 자기의 추한 모습을 모두 다 드러내 놓게 되는데에는 거부감도 그만큼 강렬해서 쉽게 잘 되지를 않는다. 진표율사도 이런 점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어서 기간에 7일에서 3년 이상하는 차등을 두었던 것 같다. -계속-